주말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40만명 가까운 관객이 본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의 대표작이죠. 연출가는 그 유명한

김민기씨. 그러나 우리의 오여사는 김민기씨를 모른다고 한 것부터 시작해 '세대차이'를 드러내

더니 재미를 느끼는데 있어서도 상당한 '해석의 차이'를 드러내더군요.

  지하철1호선은 그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지금 우리 사회의 계층을 대표합니다. 조선족처녀

'선녀', 창녀 인 '걸레', 가짜 대학생 '안경', 막간을 이용해 굉장한 댄스를 선보이는 복부인

떼거리까지, 그 하나하나가 자신들이 대표하는 계층의 조그만 이야기를 펼쳐서 뮤지컬 전체의

내러티브안에서 우리사회의 전모를 드러내는 '큰 이야기'로 완성되죠.

  그러나 우리의 오여사는 이런 방식에 대해 평하길,

- 10년만 지나도 관객들 모두가 현실과의 괴리를 느낄 이야기이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전혀

이해 못할 결국 보편성이 부족한 내러티브라고 하더군요.

  물론 추가해서 노래안에 너무 많은 정보와 사회적 이야기를 담다보니 가사전달력도 떨어진다는

미학적 비평도 겸해서...

  그리고느 자신이 좋아하는 매튜 본 안무의 '백조의 호수'를 다시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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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학전그린소극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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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백조의호수' - 종전과는 달리 남성들의 군무가 일품이죠.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건 비평에 있어서의 미학적 비평과 현실(참여)적 비평./

  예술을 위한 예술과 사회를 위한 예술./ 리얼리즘과 형식주의의 차이랄까? 사소한 의견차이였지만다시 생각해보면 비평과 예술에 있어서의 가장 근본적인 이분법에 우리 부부는 서있더군요. ^-^


  하긴 매튜본의 백조의호수를 보면 비록 주인공 왕자의 모습에서 러시아 옛 왕조의 모순을

조금 느낄수 도 있지만, 그보다는 왕자의 무의식과 그 속에서 보이는 보편적 고뇌의 모습이

주제지요. 이건 확실히 뮤지컬 '지하철1호선'과는 대척점에 있는 의미의 발현입니다. 그리고

이건 백조의 호수류의 작품들 내부에서 느껴지는 집단적 무의식이나 역사적 상징에선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일종의 원형 'Archetype'가 있습니다. 왕자와 백조의 동성애적 욕망,

그에 대한 금기의 상징, 그것때문에 겪는 왕자의 고뇌 등등. 서구의 예술인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무식한 기자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백조의 호수'가 '지하철 1호선'

보다 더 위대한 예술작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의 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남기며 지은 지하철1호선이 왜 다른 선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왼쪽으로 진행되는 선인지, 조선족 처녀 선녀가 서울에서 만난 이들은 왜 하나같이

아픈 상처를  가지고 노래해야 하는지는 7,80년대 이후를 산 우리만이 알 수있는

강력한 메세지로 다가옵니다.

  '백조의호수'의 아름다운 무용을 보며 하품하는 저로서는 '지하철1호선'의 강력한 락음악이 더

생동감있게 다가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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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8:29 2003/06/2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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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기든스로 대표되는 일군의 사회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찰성이라는 화두로 현대사회를 분석하지요. 요컨대 전통과 압제에서 해방됐다는 현대사회는 자유를 줬지만, 개인의 삶은 언제나 선택과 결정의 혼란스런 연속으로 바꾸어놓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선택도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인 상업화에 의해 제한되고 왜곡돼 결국 힘겨운 선택의 연속을 헤쳐나가야하는 개인이 의지할 것은 그런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드는 과정 즉 성찰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논리죠.

  울리히 벡도 이 진영의 쌍벽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기든스와 비슷하지만 좀더 사적영역에 관심이 많고 그는 위험사회라는 말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죠. 좀 엉성하게 이해하면 논리자체는 기든스와 유사합니다만...

  최근에 벡의 저서 '사랑은 지독한 혼란'(원제 'Das ganz normale Chaos der Liebe')를 읽었습니다. 한 석달만에요. 책이 어려웠다기보다는 워낙 머리가 돌이 돼서리...

 벡은 여기서 사랑을 우리의 근대적 삶의 근본적인 위협으로 제시합니다. 이해가 안되는 일이죠.

하지만 앞서 제가 말한 기든스식의 논리, 즉 현대사회의 도래 -> 선택의 증대 -> 혼란과 위험사회 라는 사고로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근대성의 등장으로 개인은 미리 정해진 신분과 전통의 압박이라는 봉건적 잔재에서 자유로와졌지만  이것은 동시에 개인이 스스로 안정감을 느낄수 있는 토대들도 제거한 것입니다.각종의 유대와 자신을 보호해주던 전통적인 조직들이 해체된 것이죠. 그러자 개인들은 이런 불확실성의 세계를 항해해갈 안전판으로 사랑에 의존하게 됩니다. 바야흐로 사랑은 현대인의 종교가 된 겁니다.

  그러나 사랑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개인을 위한 감정입니다. 더구나 현대인의 사랑은 그 이전시대의 사랑이 의지했던 성서의 규범, 사회의 법에서 해방돼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주관성에만 의지해야  되고 연인들은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친밀성을 통해 서로를 무장해제 시키죠. 결국 상처주고 싶을때 두사람은 마음대로 서로를 상처주게 됩니다.

무슨 영화를 보아야 할까 극장에는 어떻게 갈까하는 사소한 선택부터, 가정은 어떻게 언제 꾸릴까하는 무수한 선택속에서 의견충돌이 일어나고  옛날과는 달리 서로가 따른 규범이 없는 가운데 갈등은 일상화됩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대상은 사랑하기에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고, 그래서 결국 가장 강력한 힘으로 아주 자주 서로를 상처주게 되죠.

  그리고 사랑하는 두 남녀가 처한 사회구조는 어떠한가?

사랑의 결실이라는 가정을 들여다보면 이곳은 직장을 잡아 일하는 직업인이어야 한다는 노동시장의 논리와 가장과 아내의 역할, 개인의 자아실현이 충돌하는 전장입니다. 남편은 가정을 지켜주는 아내를 믿고 그녀에게 의존하며 직장에서 일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아내의 희생에서 가능한 것이죠. 공적노동을 하는 남편과 그를 위해 가정잡사를 해야하는 여성이라는 성별분업, 그로 인해 남성과 여성은 서로 공유하는 체험이 극히 줄어들고 사랑하는 두 남녀의 삶은 갈등의 원천이 되고 맙니다.

  가정과 일상의 삶이라는 극히 가까운 곳에서 사회 전체의 논리를 이끌어내는 저자의 글은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책의 번역은 좀 아쉬워요... 한번 여러분도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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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25 18:26 2003/01/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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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과 김선우, 물론 김선우가 메이저리그 데뷔는 물론 대학선배이기도 하지만 둘다 아직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젊은 선수라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그런 둘이 이번 9월부터 최희섭은 처음으로 김선우는 다시금 메이저리그 출전기회를 가졌죠. 그래서인지 이번만큼은 감독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둘다 야구장에선 절대 인터뷰를 안하겠다며 고집부려 좀 재미난 취재를 원했던 저를 실망시켰죠. 하지만 둘다 야구에만 전념하기 위해 그런 거니 별 불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저는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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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 감독들은 물론 철저히 실력위주로 선수기용을 하지만 역시 프로인 만큼 또 하나의 다른 요인도 작용합니다. 바로 흥행성이죠. 언론의 관심은 그런 점에서 선수에게 플러스 요인이 됩니다. 한국취재진 특히 중계권 가진 방송사의 관심은 감독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거죠.

  첫째날 최희섭의 시카고 컵스 감독 브루스 킴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무언의 압력을 가했고 결국 셋째날 경기에선 선발등판 시키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써 주더군요....

  더 재밌는 건 김선우의 몬트리올 감독이었습니다. 왕년의 명타자였던 프랭크 로빈슨....

이 할아버지를 인터뷰하며 우리는 김선우를 언제쯤 볼 수 있겠냐며(당시 선우는 메이저리그 엔트리엔 들었지만 출장은 못하고 있었거든요.) 하소연했고 또 한국에서 사온 약간의 기념품을 뇌물(?)로 제공했습니다. 너털 웃던 감독, 그러더니 우리의 질문에 다시 망설이더니 다음 로테이션부터 선발로 기용하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마도 컨디션 점검 차원이었겠지만 바로 중간계투로 등판시켰습니다. 김선우는 2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냈죠. 물론 김선수는 이런 사실을 모르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약간의 노력으로 큰 성과를 얻었음에 만족했습니다.

  이들 젊은 루키들에 비하면 박찬호는 역시 거물, 그러나 나쁜 의미에서 너무 거물이었습니다.

현지교민들로부터 박찬호가 이제는 어린이들이 사인을 부탁해도 외면하며 심지어 눈길조차 주지않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반신반의했지만...

   경기가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박찬호는 그저 우물거리는 말로 몇가지 대답하곤 바로 돌아섰죠. 제가 한가지만 더 묻겠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고... 뭐 그 정도갖고 기분나쁘게 생각하는 제가 좀스러운 것 일 수 있겠지만,

 이번 출장에서 만난 더 위대한 선수들, 새미소사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었던 것만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이 두명의 슈퍼스타들은 언제나 이름을 부르는 팬이 있으면 항상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기자들이 일단 질문을 던지면 간단하게나마 답을 해주고 더 자세히 답을 못해줄텐 그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곤 했습니다.

  기량면에선 스타이고 특히나 우리 입장에선 유일하게 성공한 메이저리거인 그가 전혀 스타성을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은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 오해가 있을 수 있어 사족을 달자면 이글은 2002년 9월에 작성된 글임을 다시 밝힙니다. 현재의 박찬호 선수는 그 당시 제가 겪었던 모습과 다르게 팬들에게 자상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 이 글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제가 예전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들을 다시 이 블로그에 옮기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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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4 22:55 2002/09/1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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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9.8 - 9.15)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타자로선 최초로 메이저리거가 된 최희섭과 다시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투수 김선우의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최희섭의 시카고 컵스와 김선우의 팀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시카고에서 3연전을 가졌던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박찬호의 시즌 9승 경기도 추가로 취재했죠.

먼저 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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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스팀의 홈그라운드이자 미국 중부 최고의 대도시,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물에서부터 금세기 초반의 고전건축까지 갖가지 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더군요.

  그중 우리가 찾은 시카고의 홈구장 리글리 필드는 담쟁이 덩굴이 담장을 장식하고 있는 유서깊은 야구장이었습니다. 야구장 밖은 마치 아케이드 형식으로 기념품가게와 핫도그 등 푸드점들이 자리해 분위기가 독특했죠. 관중들은 먼저 외벽의 출입구로 입장해 아케이드를 지나며 야구공이나 유니폼을 산뒤 핫도그를 사서 내벽 입구를 통해 관중석에 들어서는 구조죠.

  사실 오래된 구장이라 안에 시설은 형편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보며 봉사한다는 즐거움이 가득한 이들이었고, 구장에는 묘한 축제 분위기가 넘쳤습니다. 또 관중석과 필드간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서 정말 안으로 떨어지는 파울볼을 잡아 챌 수 있더군요. 그라운드는 멀고 그나마 그물이 앞을 막아 치어리더나 구경해야 하는 우리하고는 구조자체가 달랐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김선우와 최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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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4 22:53 2002/09/14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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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상이란 제목을 보고 이 친구도 결국은 자기 자랑으로 시작하는군 하시겠지만...

'민원'이란 말 그대로 보도를 원하는 사안을 가진 사람들이 기자들에게 취재를 부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 그런 건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이익을 위한 거라 사회적 이슈가 되는 기사거리하고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죠. 그래서 기자들은 이런 사안의 경우 무시하는 일도 많고 취재하게 되더라도 열의없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제보들이라는게 정도 차이는 있지만 보도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에 제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당사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도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도 편협한 시각이긴 합니다. 때로는 당사자만의 이익 뿐 아니라 사회전체에 이익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라면 선입견없이 취재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부 온지 한 달도 안 된 지난 2002년 2월 저는 한 높은 선배의 아는 사람으로부터 민원을 받았습니다. 이 양반 말인즉 자기가 을지로의 한 지하상가 주차장을 법원 경매로 싸게 구입했는데 알고보니 주차장 한 구석에 엄청난 쓰레기가 있었고, 전 주인이나 상가주민들이 치워줄 생각을 안하므로 이것을 고발해 달라는 얘기였습니다.

  뭐 '방송보도로 쓰레기를 치워달라'는 말이었죠. 내가 쓰레기치는 청소원이냐 하며 신경질 내며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쓰레기가 많긴 많더군요. 주차장과 지상도로로 통하는 연결통로 세군데에 쓰레기 더미가 버티고 있었던 겁니다. 내용물을 보니 꽃과 인쇄물 등 그 위 상가에 입주한 가게의것이 맞더군요. 어쨌든 일진선배에게 보고를 하는데 처음엔 시큰둥하던 선배가 되려 왜 그런걸시큰둥하게 보고하냐며 열을 내더군요.   큰 고발은 아니지만 재밌는 기사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였죠.

  솔직히 나는 기사고 뭐고 쓰레기 치우러 취재간다는 것 때문에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구청 청소과 직원에 쓰레기 전문 처리회사 직원까지 불러모아 현장에 가니 나름대로 얘기가 나오더군요. 일단 처리회사 직원은 쓰레기 양이 무려 '100톤'임을 증명해 주었고, 구청직원들과 나는 쓰레기 산을 파헤치며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쓰레기는 뭐고 뭐고... 그래서 상가 주민들이 몰래 버린 것에 틀린 없습니다.'

 '쓰레기 속에서 카드 영수증이 나왔습니다. 주소는 이 상가의 한 가겝니다. 찾아가 봤습니다.'

 (상가 주민왈)' 내가 안 버렸어요. 지나가는 사람이 주워서 거기 버렸나 보죠' 등등...

그래서 어쨌든 지하의 쓰레기 백톤은 카메라출동으로 나갔고, 수년간 쓰레기를 몰래 버려 쓰레기산을 만든 상가주민들은 망신 톡톡히 당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다행히 쓰레기속을 잘 파헤친 덕에 현장성 좋은 아이템으로 잘 방송돼서좋은 평을 받아 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내입장에서 내가 취재해서 찾아낸 것도 아니고 누가 다른 목적으로 부탁한 것으로 상을 받아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지만, 더 잘하라고 준 것으로 생각하기로 었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보도에는 구청도 아주 적극적으로 협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구청도 주차장주인과 같은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죠. 구청이 치우는 일이 생기기 전에 방송보도로 주민들이 나서서 쓰레기를 치우기를 바랬던 겁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됐을까요? 

  아쉽게도 방송보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치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구청에서 세금을 들여서 치워야했습니다. 하긴 방송보도 하나로 십년이상 버려온 쓰레기들을 주민들이 수천만원 들여서 치우기 어려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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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9 22:47 2002/07/19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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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첫날의 기억-3

Being reporter 2000/08/16 23:01 주인장
○ What the hell I'm doing here?

  그 전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수습기자시절 나의 일상은 보통 이

랬습니다. 새벽 3시 첫 순찰(원래 2시 30분이었는데 일주일 지나니

까 요령이 생겨서 조금 뒤로 갔죠.) - 5시 30분 일차보고 - 7시 2차

보고 - 아침 취재 - 10시 30분 신문 기사 마감 - 보통 기획기사류

의 오후취재 - 6시 회사복귀 - 12시 라인별 경찰서로 복귀.

  여기서 보면 회사에 복귀한 뒤 다시 경찰서로 돌아가기까지의 시

간이 많이 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일지쓰고 취재한

내용으로 습작기사를 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회식 또는 야간의 스

페샬프로그램이 마련된 경우가 많죠. 보통 3일을 주기로 하루는 그

냥 회사에서 기사쓰며 보낸다면, 그 다음날은 폭탄주가 한 다섯 잔

이상 씩 도는 회식이 있고 그리고 다음날은 특별취재거리가 떨어지

곤 했습니다.


  그 특별 취재들... 새벽시장 취재, 총선과 맞물려 한참 진행 중이던

시민단체 취재 등도 있었지만, 제가 가장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따

로 있습니다.

  2주 째로 접어든 첫날이었을 겁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정겹게 온

갖 욕들을 천연스레 하기로 소문난 관악서의 일진이 우리를 소집했

습니다.

  "너와 너는 영등포역 뒷골목, 너와 너는 청량리, 너, 너는 천호동,

그리고 너와 전봉기는 미아리‚"


  우리는 생각했다. 이 지명들의 공통점을... ? -> ! -> -_-.

  선배는 말했다.


  "그래 맞았다. 오늘 너희는 사창가로 취재를 나간다. 일차 인터뷰

대상은 그 곳의 아가씨들이다. 시간되고 돈되면 취재끝내고 자유행

동(?)도 무방하다. 단 개인경비로 충당토록. 이상.‚"


  기억하는 분도 있겠지만 당시는 종암서 김강자서장의 취임이후 매

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던 때였다. 마침 김서장 취임 한 달이 지

난 때라 달라진 윤락가의 모습„ 정도의 기사를 위한 취재로 우리가

투입 결정된 것이다. 하필 나는 가장 중요한 바로 그 미아리 텍사스

를 맡게 된 것이다. 중요한 곳이라 나 외에도 둘이 더 가게 되었다.

  비록 거기서 가까운 동네에 살고 바로 그 골목 건너편에 있는 S

고교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내게 그 곳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

미 TV등에서 여러 번 비춘 곳이었지만 내게는 참으로 새롭고 난감

한 취재대상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우선 그 골목 입구에 있는 월곡파출소부터

들러 그곳의 분위기 등에 대한 사전취재를 시작했다. 대충 취재를

마치고 나서는 우리에게 파출소장이 말했다.

"경관 몇 명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오. 됐습니다. 그러면 취재가 잘 안 되죠.‚

 하지만... 후회하실 걸요.‚"


  소장은 나서는 우리에게 의미 모를 웃음을 보냈다. 어쨌든 우리는

보부도 당당하게 그 골목으로 들었다. 그러자 아줌마들이 달려와 우

리를 이끌었다.

  어서 오세요. 우리 집 아가씨들이 예뻐요.‚ 아니오 우리집이...‚

  저희는 기잔데요...‚


  그러면서 우리는 이 아줌마들부터 인터뷰할 생각으로 취재수첩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아줌마들...


  진짜 기자잖아... 그래 너희들 잘 만났다. 니들 땜에 우리모두 굶

어죽게 생겼다. 이 놈들아...‚      


  그 이후의 기억은 내게는 마치 파노라마의 장면들처럼 떠오른다.

우리 셋은 앙칼지게 소리지르며 덤비는 아줌마들의 손과 깍두기머리

아저씨들의 주먹을 피해 그 골목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했다.

  김서장의 취임과 그에 이은 단속과 심지어 단전, 단수 그리고 혐

오시설 운운하는 기사와 TV의 고발성 보도에 그 곳 사람들의 언론

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그 판에 병아리 기자들이

나타났으니 정말 그들에게 찾고 있던 화풀이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에게는 그 아줌마 아저씨들 이상으로 일진선배

들이 무서웠다. 나와 동료들은 때리는 그 손과 주먹을 붙잡고 말했

다.


  "여러분들 심정 이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 이곳이 가지는

나름의 사회적 역할(?)과 여러분의 고충을 기사화하려는 겁니다.‚"


  대충 이런 식으로 달랬다. 아무튼 그 순간 내 머리속에 떠오른 것

은 이런 말이었다.

  "What the hell I'm doing here?'

  그런 끝에 그래도 좀 나이든 아줌마, 아저씨들을 대상으로 대충

인터뷰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그 곳에서 장사하면서 아이들을 모

두 대학보냈다는 한 아줌마의 포장마차에서 오뎅국물로 추운 몸을

덥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아가씨들의 인터뷰는 할 수가

없었다. 그 투명한 유리벽너머로는 절대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았던

것이고 우리는 단지 유리벽 너머의 그녀들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터덜터덜 그 골목을 나오는데 동료 한 명이 말했다.


  확실히 변하긴 변했어‚, 뭐가?‚

  물이 옛날같지 않아, 차라리 내 단골집이 있는 청량리가 휠씬 나

은 것 같아.‚,  -_-‚


 종암서의 골방으로 돌아와 나는 생각해 보았다. 저 사람들을 이

곳에서 싹 쓸어낸다면 문제가 끝인가? 어차피 수요는 있고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공급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혐오스럽고 무

엇이 깨끗한 것인가? 골치만 아프다. 맨날 이런 것만 취재해오라고

하지는 않겠지...

  어쨌든 그로부터 2주 뒤 나는 이런 고민에서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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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6 23:01 2000/08/1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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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첫날의 기억-2

Being reporter 2000/08/16 22:19 주인장
연재(?) 두 번째 편입니다. 이번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일화 중심으로 얘기해 보렵니다. 그때는 고생스러웠던 일도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것이 시간의 힘이죠. 하지만 시간의 수레 바퀴는 돌고 돕니다. 일편에서 말한대로 저는 다시 수습기자가 됐고 두번째 수습때는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도 안나고 기억하기도 싫군요...

○ 종암서의 2진기자실

   나는 지금도 그 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종암경찰서의 종로라인 (종로경찰서, 성북서, 종암서 등의 경찰라인과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를 주요 취재처로 하는 서울 중심부의 영역) 2진 기자실에 처음 들어서던 때를...

수습생활 시작한 지 3일째. 비록 일진선배는 그 쪽으로 가라는 말은 안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형사계 쇼파가 아니라 기자실에서 잠다운 잠 좀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서던 그 때, 종암서 밤 12시 30분.  

문을 연 순간. 나는 공감각적 체험을 해야 했다. 방가운데에는 빨간 내복을 입은 한겨레 B기자가 자고 있었고, 그 옆에는 몇 시간 전 총선시민연대 사무실에서 보았던 카키색 사파리 잠바의 깃을 세우고 멋있게 담배를 피던 연합뉴스의 여기자 C씨가 역시 한 이불을 덮고 세상 모르고 뻗어 있었다.

문가쪽에는 한국일보의 L기자가 정말 불쌍하게 노숙자 자세로 쪼그리고 자고 있었다.  그리고 냄새들... 누군가의 발 냄새와 찌든 담배냄새의 묘한 배합은 삽시간에 내 코를 마비시켰다.

방안 여기저기에는 담배꽁초가 굴러다녔고, 각종 사건조서, 일지, 기사문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가끔 늦게까지 술 혹은 스타크를 즐기다 막차시간 지나면 찾아가던 내 친구 황가네 자취방도 이거에 비하면 특급호텔이었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C기자를 발로 대충 밀고 L기자를 좀더 문가 쪽으로 밀어붙인 뒤 나는 그 틈에 자리를 잡았다. 눕자마자 몇 개인가의 굴러 다니는 볼펜들이 등에 배겼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자고 있는 그 들을 남기고 나는 출입처 순찰을 돌러 출발했다. 한시간 후에는 연합뉴스 C기자가 역시 나처럼 기자실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 또 1시간 후에는 조간신문기자 B와 L이 그 뒤를 따를 것이다.

그러면 서장이 선물했다는 TV와 각자의 핸드폰 충전기, C기자의 헤어드라이기만이 텅 빈 기자실이라는 이름의 골방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밤 11시부터 다시 아까의 역순으로 기자라는 이름의 방주인들이 들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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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6 22:19 2000/08/1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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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첫날의 기억-1

Being reporter 2000/08/16 22:12 주인장
이건 2000년 여름엔가 어느 동호회에 심심풀이로 썼던 글이죠.   이때는 문화일보를 그만두고 석사논문을 쓰고 있던 땐데 논문쓰기에 지쳐 어느 동호회에 심심풀이로 썼던 회고담입니다. 이당시만 해도 이렇게 힘든 생활을 스트레이트로 한달했는데 이젠 뭘 못하겠나 이보다 더 힘들수는 없으리라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반년뒤 지금 제가 다니는 MBC은 이런 착각을 여지없이 '태양계 너머'로 날려보내더군요.

  첫 번째 이야기 : 형사계에서의 첫날밤

첫날, 드디어 우리 수습들은 각 라인별로 나눠져 본격적인 사건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편집기자 동료 한 명과 종로라인을 배당받았다.

( 사회부의 사건기자들은 서울시를 7개내지 9개로 나누어 각 지역을 각자의 취재책임영역으로 맡게 됩니다. 동대문, 중부, 종로, 마포, 영등포, 강남, 관악 등으로 이 명칭은 일진기자실이 있는 주요 경찰서의 이름과 같습니다. 각 라인별로 서너개의 경찰서와 법원, 대학, 대형병원 등의 주요출입처가 있게 되죠. 아 그리고 사건기자들은 서울시경에 주재하는 일명 시경캡을 우두머리로 각 라인별 일진과 이진기자로 구성됩니다. 마치 야쿠자조직같다구요? 네 맞습니다. 사실 라인이란 말보다는 나와바리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사건기자보다는 사츠마와리라고들 하지요. 사실 하는 행동도 거의 깡 패수준이죠...)

시간은 낮 12시 반. 1시쯤 종로경찰서와 도착해 드디어 일진선배와 대면. 첫 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1시간을 주겠다. 알아서 점심은 먹든지 말든지 하고, 너는 성북서,  너는 종암서로 가서 형사 3명 이상과 ...한 주제로 인터뷰를 해 오고 그곳 형사계의 인력구성을 알아와.”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인터뷰의 주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단지 훈련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나와 동료가 이 과제를 마치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5분. 그리고 나서 우리는 5분 늦은데 대해 약 5분간 육두문자로 구성된 선배의 연설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바로 공천부적격자 선정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던 총선시민연대 사무실로 투입되었다. 여기서 비로소 나는 다른 언론사의 수습들을 만난다. 이들의 모습은 조금은 충격이었다. 기껏해야 수습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였던 이들은 마침 항의하러 방문한 국회의원 등의 정치거물들을 마치 옆집 아저씨 대하듯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지고 필요한  정보를 캐내고 있었다. 한달 남짓의 수습기자생활은 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들을 능글맞은 사회인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서너명의 인사들을 인터뷰하고 근처의 집회현장을 취재한 후 6시까지 회사로 복귀했다. 비슷한 일들을 한 역시 지친 얼굴의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우리는 A4 한 장짜리 일지와 역시 한 두장 가량의 취재후기를 적어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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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6 22:12 2000/08/16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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