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 홈피의 날린 자료 복구 겸 출장의 기억들을 살려 기록을 남겨두려고 합니다.

요새 기아의 최희섭이 그동안의 부진을 씻고 거포타자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 있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뒤론 국내야구에 목표의식을 잃었던지 아니면 메이저리그 투수들 못지않은 우리 투수들의 실력에 적응 못해서였던지 실망스러운 성적이었죠.

지난 2002년 당시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 등장한 첫 한국인타자로 한창 이름을 올리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당시 저도 스포츠취재부에 온지 몇달 안 돼 첫 해외출장으로 바로 이 최희섭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Windy City라는 시카고의 멋진 풍광과 메이저리그 구장의 아우라에 흠뻣 젖었지만  첫 해외출장이다 보니 실수도 많았던 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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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호 주위로 늘어선 마천루들의 시카고의 첫인상이었습니다. 뉴욕을 라이벌 도시로 생각한다는 시카고인들의 자존심 만큼이나 높게 솟은 건물들은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높은 것들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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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상으론 잘 안 보이지만 외야담장에 담쟁이 덩쿨이 가득한 시카고의 명물이자 시카고 커브스의 홈구장인 'Wrigley Filed'입니다. 무려 1914년에 개장한 건물인데 안에 들어서면 관중석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야구장을 둘러싼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Arcade구조인데 각종 야구 기념품 상점과 무엇보다 핫도그를 포함한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죠. 그리고 관중석으로 들어서면 이 같이 큰 규모의 구장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워낙 오래됐다보니 정말 낡은 구장이기도 합니다. 1년뒤 다시 출장 갔을 땐 야간경기중에 조명시설이 꺼지기 까지 하더군요.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전통과 질서가 깃든 곳이죠. 그물망조차 없이 바로 선수들 옆에서 시작되는 관중석의 구조, 선수들의 호흡이 바로 전달돼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선수들의 열기와 관중들의 함성 그리고 자부심 강한 스탭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묘한 흥분상태를 제게 던져줬죠.
  한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곳의 기자실과 기자들의 문화였죠. 사실 저는 선진국에선 기자실이래 봤자 기자들이 서로에게 신경쓰지 않고 개인플레이 할 것이고, 구단직원들도 기자들에게 별로 신경안쓰는 선진문화(?)를 가지고 있겠지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곳 기자실은 우리 기자실 저리가라 할 정도로 규율이 엄격하더군요. 시카고 트리뷴지의 고참 기자가 기자회장이었던데 기자회장의 권한은 개별기자의 출입을 바로 정지시킬 정도로 대단했고 - 실제 KBS 특파원께서 상당히 결례를 저지르다 출입정지를 당했습니다 - ,기자들이 앉는 자리가 지정돼 있고 취재시엔 각종 규칙과 제약조건이 상당했습니다. 반면 기자실 좌석에 앉은 기자들이 그 자리에서 손만 까닥하면 구단의 여직원들이 달려와 어떤 걸 드실래요하고는 바로 음료수를 갖다주는 걸 보고 저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죠. 한국기자실에선 그랬다간 인터넷신문에 기사날 일이니까요.
  그리고 1달러만 내면 - 상징적으로 받는 돈이었죠 - 선수들과 동일하게 부페식으로 먹을 수 있었던 식당의 음식도 참 먹음직스러웠습니다. 두텀한 스테이크를 집어와 썰어먹고 있는데 식당종업원이 오더니 '너희 동양에서 왔지, 미리 말하지 그랬냐'하면서 초밥도시락을 하나씩 주고 가더군요. 도저히 배터질 것 같아서 먹지 못하고 들고 숙소에 와서 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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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입니다. 최희섭과 김선우입니다.
최희섭이야 흔치않은 동양인 거포로 주목받던 때 였고,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있던 김선우는 좀 힘겹게 주전경쟁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 때 몬트리올의 감독이자 왕년의 전설적인 타자 프랭크 로빈슨을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저는 로빈슨 감독에게 나름 비싼 자개보석함을 선물하면서 조금은 비굴하게 '김선우가 경기 나오는 것 좀 볼 수 있나, 볼 수 있으면 우린 참 좋은데...'하면서 질문을 했죠. 그러자 로빈슨 감독은 터털 웃더니 다음 경기엔 내보겠다고 하곤 약속을 지켰습니다. 김선우로서나 저로서나 기분 좋은 일이었죠. 하지만 그 이후 로빈슨 감독은 어떤 이유에선지 김선우를 눈밖에 내치게 됐고 김선우는 고난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경기전 선수들을 취재한 경험도 색달랐죠. 역시 우리와는 차이가 좀 많았습니다. 경기 시작전 구장에서 몸풀때 자유롭게 취재하는 것이야 우리랑 비슷했지만 차이가 나는 건 클럽하우스 즉 선수들의 생활공간에서의 취재였죠. 일단 우리 야구장은 클럽하우스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없다시피 합니다. 그리고 취재는 거의 불가능하죠. 선수들도 싫어하고요.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선 경기시작전 1시간 정도까진 클럽하우스 취재가 자유롭고 오히려 선수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인터뷰를 거부해선 안됩니다. 프로선수의 의무이죠.
  각 구장의 클럽하우스는 위의 사진 처럼 선수들의 사물함이 모인 곳이 주공간인데 이곳은 사물함외에도 식사나 심지어 카드놀이를 할 수 있는 큰 탁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엔 간단한 웨이트 트레이닝 등을 할 수 있는 룸과 샤워실이 있죠. 참으로 특이하고 역시 문화적으로 다른 건 샤워를 마친 선수들이 제대로 수건도 안 걸치고 돌아다니고 그걸 보면서 여기자들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점이었죠. (미드 섹스앤더시티에도 그런 에피소드가 하나있었죠. 양키즈구장에 주인공과 친구들이 놀러갔다가 잘못해서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바로 그런 '좋은'장면을 보고 정신 못차리는 씬이었죠.)
   그런데 당시 시카고 커브스 클럽하우스엔 왕이 있었으니 바로 새미소사였습니다. 제가 갔을 때 클럽하우스 가운데 탁자에 시디플레이어가 하나 있었고 레게음악이 크게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인터뷰하기도 힘들정도로 볼륨이 컸는데 아무도 줄이지 않더군요. 이유는 단 하나 새미소사가 틀어놨기 때문입니다. 새미가 하는 건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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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보이는 건 텍사스레인저스의 홈구장인 알링턴볼파크와 레인저스 클럽하우스입니다.
비싼 돈 주고 간 출장답게 시카고 취재를 마치고는 바로 텍사스로 가서 박찬호의 선발등판 경기를 취재했습니다. 알링턴볼파크는 조지부시가 구단주이던 시절 대대적인 투자로 지어진 곳 답게 현대적인 구장이었습니다. 심지어 외야석 가운데에 분수대가 있고 거기서 야구보던 아이들이 뛰어들어 놀 수 있을 정도였죠.
   클럽 하우스도 보시다시피 현대적이고, 기자석도 쾌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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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재라고 뉴스제작이 국내와 다를 건 없습니다. 경기 장면 찍고 경기가 끝난뒤 선수와 감독 인터뷰하고 때로 필요하면 관중석의 열기나 반응도 취재하고 스탠드업(기자가 현장에 있는 모습으로 멘트를 하는 것)을 하는 거죠. 그리곤 1분 20초짜리 기사를 쓰고 인터뷰한 것 중에서 필요한 말을 한 10초 정도씩 골라냅니다. 물론 마지막 편집작업은 하지 않고 영상과 인터뷰내용만 서울로 송출하는 겁니다. 해외출장에선 가장 중요한게 바로 이 송출입니다. 요사이는 영상자체가 디지털로 촬영되고 인터넷망이 발달하다보니 파일로 변환시켜 인터넷으로 업로드하지만 이때까진 위성송출시설을 갖춘 방송국에 찾아가 촬영테입을 걸고 송출해야 했습니다. 해외의 송출국에서 위성으로 전파를 쏘면 그 방송위성이 다시 한국의 KT위성기지국에 쏘고 다시 KT기지국에서 서울의 MBC본사로 마이크로 웨이브로 송출하는 방식이었죠. 중요한 건 미리 방송위성을 관리하는 송출사와 위성송출이 가능한 방송국을 찾아 컨텍하고 예약을 해두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또 우리의 카메라와 방송국의 위성송출시설이 호환이 안 되는 일도 발생할 수 있기에 미리 점검도 해야 하고 일이 많았죠.

  그러나 어쨌든 고생스러웠어도 모든게 새로와서 즐거웠던 첫 출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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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00:17 2009/05/1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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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하면 격리?

Inside newsroom 2009/05/07 01:47 주인장
요사이는 줄창 신종 인플루엔자 혹은 인플루엔자 A로 부르는 이 새로운 독감에 치여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 기사는 다음과 같았는데 이 기사도 몇가지 우려곡절이 있었죠.
--------------------------------------------------

'신종플루' 美 여성 첫 사망‥멕시코 정상화

◀ANC▶

그러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계적 감염추세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세계보건기구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첫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전봉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VCR▶

미국 텍사스 보건당국은
멕시코와의 접경지역에 사는
33살의 여교사가
어제 신종 인플루엔자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주 멕시코 아기가
미국으로 건너와 치료를 받던 중
숨진 것과는 달리,
미국 거주자가 처음으로 사망한 겁니다.

◀SYN▶ 스미스 박사/미국 텍사스 보건국
"환자는 만성적인 건강문제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종 인플루엔자 외에 사망에)
영향을 줄 만한 다른 요인들도 있습니다."

이 교사는 입원기간 중 아기를 출산했고
숨지기 직전에야 인플루엔자 A형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필리핀에선 오늘 입국한 한국 어린이 3명이
감염 의심증세를 보여
마닐라의 병원에 격리됐습니다.

격리된 한국인은 12살과 8살 남자 어린이와
11살 여자 어린이로,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을 출발해 필리핀에 도착했다가
기침을 심하게 해 격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YN▶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
"3명으로 파악이 되는데,
아직 추정이기 때문에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습니다. 보호자들과 지인들과
함께 있는 것 같고..."

이 어린이들의 감염여부를 알 수 있는
검사결과는 오늘밤 늦게 나올 것이라고
우리 외교부는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공식집계 된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는 1516명이고,
닷새간의 휴업을 끝내고
오늘부터 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한
멕시코의 사망자는 29명입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2차감염의 확산추세를 감안해
신종인플루엔자에 대한 경계수준을
최고단계인 6단계로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MBC 뉴스 전봉기입니다.

---------------------------

미국의 첫 사망자야 아침부터 나온 기사였으니 별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후 3시쯤
DPA통신이 필리핀 당국이 10명의 외국인을 감염여부를 가리기 위해 격리시켰고 그 가운데
한국인 2명이 포함됐다는 기사를 내면서 부터였습니다.

나온 팩트는 단지 한국인 2명이 격리됐다는 것 뿐. 이들이 어떤 증상을 보여서 격리됐고
이들이 교민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필리핀에 간 여행객인지 혹 도중에 멕시코를 갔다온 사람은
아닌지 등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검색과 여러번의 국제전화를 통해
겨우 필리핀 한국대사관의 영사와 연결돼 취재를 해 봤지만 영사의 반응은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저희는 그런게 벌어진 지도 몰랐어요'라는 것.

해서 역시나 훌륭하신 우리의 외교관님들에게 '중요한 사건이니 좀 필리핀 당국과 연락해 보라'고
부탁드린 끝에 알아낸 건 그저 외신에 나온 것과는 달리 3명이고 감염여부는 1,2일 뒤에 나온다는
것 뿐이었죠. 결국 외교부 출입하는 동기기자에게 외교부 영사국을 통해 다시 좀 취재해보라고
부탁해놨죠.

그리고는 3명이 격리됐는데 한국에서 출발했는지 외국에서 출발한 건지는 모른다는 좀 아쉬운
기사를 써야했죠. 그러던 8시 30분 결국은 외교부쪽에서 위 기사와 같이 어학연수를 갔던
어린이들이 격리됐다는 사실을 알려왔죠. 그리곤 5분만에 기사쓰고 다시 고쳐서 읽고 편집도
다시하는 초인적인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학연수를 간 어린이들이 단지 기침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 물론 거기에 더 덧붙여지는 건
확증환자가 발생한 한국에서 왔다는 것이 더 붙겠지만요 - 격리됐다는 건 우리에겐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이었죠. 시간만 충분하다면 미국인 첫 사망자소식은 뒤로 돌리고
이걸 앞에 내세웠을 겁니다. 앞으론 감기 걸린 채로 비행기 탔다간 외국에서 격리되버리는 수도
있다는 것이나 우리에게 신경쓰이는 사건이죠.

위 기사에 대한 댓글 중엔 다음과 같이 저를 질책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필리핀 공항에서 증상을 보였다는 한국 어린이 3명이 국내에서 감기가 걸려서 간 상태였는지
필리핀 현지나 기내에서 옮았는지의 여부가 꽤 중요한 듯한데, 기사에서는 그 점을 짚어주지
않아 궁금증이 채 풀리지 않은 느낌입니다. 우리나라는 다소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환자가 늘었고 멕시코에서는 4명의 사망자가 더 생겼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수치의 변화를 그래프로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듯합니다.

맞는 지적이고 그래서 이 건을 나름대로 계속 취재했던 것이지만 뉴스 시작 30분전에야
겨우 이런 사실을 전달받은 처지에선 불가능한 일이죠.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요. 기자들의 능력과 현실의 한계라는 것도 있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건 앵커멘트였습니다. 뉴스기사의 의미가 나갈 길을 잡는 말그대로
Anchor의 역할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한데요.

원래 제가 쓴 앵커멘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ANC▶
미국에서 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한
미국인 첫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필리핀에선 한국인 3명이 감염증세를
보여 격리됐습니다.

전봉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이것이 아래와 같이 바뀌어서 방송으로 나갔습니다.

◀ANC▶

그러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계적 감염추세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세계보건기구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첫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전봉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결국 우리에겐 더 가깝게 와닿는 부분인 어학연수생 격리는 사라져버리고 말았죠. 물론 앵커로선 미국의 첫사망자와 필리핀건을 한 문장씩 쓰는 것보단 앞에 내용인 '미국 첫 사망자'에 집중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년 필리핀에 수만명이 어학연수를 가는 우리 입장에선 감기 걸린채로 어학연수 갔다간 병원에 갇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사건이 더 직접적으로 와 닿을 수 있을 겁니다. 더구나 다른 방송사들은 이 사건을 취재하지 못해 기사가 나가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요...

어쨌건 짧은 리포트하나였지만 나름 몇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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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7 01:47 2009/05/07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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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북한에 억류된지 20일이 넘었습니다.

이유도 제대로 안 밝히고 구금하고 있는 북한, 그리고 이에 대해 별뾰족한 수 없이 골머리만 앓고 있는 우리 정부. 참 답답한 일이지만 이러다 점점 장기화되고 아예 잊혀지는 건 아닌지, 당사자의 가족은 아니지만 저도 참 관심이 갑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경우를 당할 뻔 했습니다. 정확히는 아니 그때는 그렇게 까진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단지 그때는 지금과는 여러모로 다른 '시기'였다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이죠.

2006년 3월 1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취재하러 공동취재단의 일원으로 금강산에 갔을 때였습니다. 상봉한 이산가족 중에 20여년전에 서해에서 고기잡이하다가 북한경비정에 납북됐던 어부가 남쪽의 어머니를 만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어부가족의 만남도 한 사례로 넣어서 기사를 썼죠. 원래 납북자가족의 만남은 기사가치가 있어서 꼭 쓰는 편이었고 그때 같이 온 다른 방송사기자들 모두가 다 기사화했습니다. 그리고 그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납북된 어부' 혹은 '납치됐던 어부' 등의 단어를 넣어서 기사를 완성하고 녹음을 해서 남쪽의 방송사로 기사녹음테입을 송출하기 위해 송출차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엔 북측의 관리 2명이 나와 있더군요. 그리고 송출기 앞에 둔 테입을 가져가더니 송출하기 전에 보겠다며 돌려봤습니다. 그리고는 그랬죠.

"납북, 납치라니 공화국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아요. 빨리 기사 고치시오!"

그리고 하필 제가 방송기자 대표로 항의하게 되면서 - 당시 KBS기자는 똑같은 표현을 썼지만 녹음을 늦게해서 현장에 없었고 같이 온 SBS, YTN기자는 저보다 연차가 낮아 제가 결국 총대를 맺죠. - 사흘간의 악몽은 시작됐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납북'이란 표현을 쓰진 않고 '20여년전 서해에서 고기잡이 나갔다 북측에 나포(영해를 침범하거나 위법을 저지른 배를 정지시키고 선원을 조사하는 것)됐던 어부...'라는 식으로 보다 중립적인 '나포'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그래서 더 억울한 거였죠.

어쨌든 저는 북측관리들에게 "당신들은 지금 검열을 하고 있는 것이고 더구나 데스크만이 고칠 수 있는 기사를 고치라는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기사와 방송은 남측으로 송출돼 남측에 방송되는 것이지 북측인민들이 보는게 아니다, 그런데 왜 북측의 법을 우리에게 강요하느냐'는 식으로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북측관리들의 입장은 확고했죠. 금강산은 북한땅이나 무조건 우리 법에 따라야 하고 공화국엔 납북이란 말은 없고 의거월북은 있다는 거였죠. 그렇게 언쟁을 하다 결국은 '당이 시키면 시킨대로 쓰는게 기자지 뭔데 시끄럽게 하느냐'는 식의 남측기자에겐 엄청난 모욕을 가했고 (물론 공산주의 언론관에 따르면 지극히 정상적인 말입니다만...) 서로 고성만 오가게 됐죠.

그리고 나서 다음날 저에겐 다음과 같은 통지가 날아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취재기간(3일)간 절대 방밖으로 나오지 말 것. 어기고 취재활동을 하면 공화국 법으로 처리하겠다."라는 거였습니다.

가장 무서운 말은 바로 이 '공화국법으로 처리한다'는 말입니다. 북한 형법은 범죄를 중대범죄와 일반범죄로 나누는데 우리 상식과는 달리 연쇄살인도 중대범죄가 아닌 일반 범죕니다. 중대범죄는 바로 제가 저지른(?) 것과 같이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지요. 중대범죄에 대한 처벌은 바로 가끔 뉴스로 나오는 것과 같은 뭐 무시무시한 것들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취재왔다가 내가 이산가족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지만 그래도 그 당시론 북측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느껴서 마지막날 상봉장에 취재를 나갔습니다. 물론 동료기자들이 옆에서 도와주기로 했고. 그리고 그날 저는 북측 참사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몸싸움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촬영돼서 그 뒤 몇번이나 방송을 탔습니다.

그러나 사실 북측도 이렇게 몸싸움을 하고 말만 심하게 했지, 실제로 '행동'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북측으로선 앞으로 있을 납북자문제에 대한 남측과의 대화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도였지, 괜히 불쌍한 기자를 억류하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죠. 그때는 남북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단지 얻을 것을 좀더 얻겠다는 협상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고 싸움에서 이기기위한 방법으로 '가끔' 대화를 하는 상황입니다.

돌이켜보면 금강산에서의 3일간 그래도 '조금' 무서웠고 그보다 많이는 억울했습니다. 지금 억류된 유모씨는 그때 저와는 비교도 안되게 힘든 처지입니다. 무엇보다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싸우기만 하는 남북사이에 낀 공이 되버렸다는 거 큰 차이죠.

유씨의 조속한 귀환을 바랍니다.


** 저는 그 금강산 사건뒤로 북한 취재를 금지당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금지한게 아니라 북측이 금지시킨 거였습니다. 입북신청을 넣기만 하면 '거절'당했죠. 외교용어로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되 버린 거였는데 결국 1년 8개월만에 풀렸습니다. 그 풀리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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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0:04 2009/04/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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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의 노조위원장과 해직기자들이 체포됐습니다.

여러 이유를 대지만 결국은 파업을 이끌었다는게 죄고 긴급체포하게 된 건 주소지가 불분명해서랍니다. 옛날 90년대초반 대학신입생 시절에 '이전에 이런 탄압도 있었다'며 선배들로부터 70년대 동아일보 해직사태의 전말을 배우고 공부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시계는 참 빨리도 뒤로 돌아갑니다.

그 체포된 선배들... 몇몇은 출입처에도 있어봤지만 다른 기자들과 비교해서도 저런 얌전한 사람들이 있나 싶게 기자답지 않게 순진하고 선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뭔가 불합리한 일이 벌어질때 오히려 그 순진함때문에 물러서지 못했고 다른 사람대신 자신이 그 자리에 나갔을 것 같습니다.

사실 남의 일도 아닙니다. 우리회사도 몇몇 사람들은 출두요구를 받고 있고 8월이후론 많은 것이 바뀌 나갈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또 '색다른'뉴스로 군원로인 백선엽씨를 명예원수로 추대하자는 소식도 있더군요. 일제시대에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토벌대의 일원으로 일했던 분. 그리고 6.25 땐 혁혁한 전공을 세운 영웅이었지만 그 영웅적 작전 중 하나로 '백야작전'을 창시하고 실천했던 분.

빨치산이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도록 주변의 모든 것, 즉 마을이든 사람들이든 모두 청소해 버리는 백야전술. 결국 그분때문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 백야작전을 충실히 따랐던 부하지휘관들에 의해 많은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봐야했던 사실들...

역사의 시계가 워낙 빨리 뒤로 돌고 있어서 저도 정신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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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3 21:51 2009/03/2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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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를 바꿨습니다.

분류없음 2009/03/12 23:05 주인장

1년만에 2580팀을 떠나 보도국 국제부로 발령받았습니다.

매년 있는 부서이동이지만 역시 이동에도 일하는 사무실이 달라지고 그전과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분야를 취재해 다른 기사를 쓰는 고역의 기간을 겪게 됐습니다. 기자는 그런 점에서 보면 매년 있는 부서이동이 마치 회사를 옮기는 것 만큼이나 큰 일입니다.

그래도 내근직이라 적응이 쉬우리라 생각했는데 15분짜리 기사가 1분 20초로 바뀌니 참 변화가 큽니다. 10개 남짓한 2580때의 제작물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젠 다시 매일 매일 총맞는 삶으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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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2 23:05 2009/03/1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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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방송통신심의위에 있는 한 인사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먼저 자신의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고민은 즉슨 현재의 심의규정을 제대로 들이대면 방송3사의 거의 모든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이 불공정하고 편파방송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었죠. 결국 새로 위원회가 만들어진 만큼 의욕적으로 심의를 해야겠는데 어느 선까지 잣대를 들이대야 할 지 고민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분이 얘기한 방송통신심의위의 '방송심의에 대한 규정' 가운데 공정성에 대한 부분은 추상적이고 매우 이상적인 내용입니다.
   

  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여야 한다.

바로 이것이죠. 관건은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라는 것인데 이를 어떻게 적용하는가(사실은 적용해야 할 것이냐부터 문제지만....)에선 보수적인 학자들과 심의기관들은 사실상 기계적인 균형을 강조합니다.

대한민국 뉴스의 기본틀인 1분 20초짜리 리포트들은 이런 식이죠.
'A는 ~~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취재결과 A의 말엔 이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B도 A에 반대해 **라고 말합니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A는 다시 반론을 제기했지만 그래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입니다...'

결국 대립되는 양측의 의견이 나오긴 하되 취재결과 합당한 쪽의 주장이 더 많이 나와서 결론이 있는 완결성 있는 메시지가 되는 겁니다. 이런 보도들이 불공정하다고 본다는 것은 결국 양쪽의견을 똑같은 비중으로 제시하지 않았고  한쪽 편을 들었다는 점을 문제시하는 것이라고 봐야겠죠. 그렇게 치면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어느 것 하나 안 걸릴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아무튼 방송3사 모두 걸릴 수 밖에 없는 그 심의규정을 가진 심의위에 의해서 지난 한해부터 그리고 며칠전까지 MBC만 계속 걸리고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PD수첩의 광우병보도, 그리고 이번에 문제된 방송법보도. 모두 한쪽에 치우친 보도라는 걸 부정하긴 어렵겠죠. 정부의 쇠고기협상이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미디어법안이 졸속이라는 것, 다시 말해 결론을 가진 즉 비판적 내용입니다.
   대립되는 사안이므로 양쪽의 주장만 나열하고 결론을 내지 마는 게 '공정성'이냐고 반문하면 학자들은 다시 그렇게 기계적 균형을 맞추라는 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정작 공정성을 따질 땐 다시 양적 균형을 들이댑니다. 정말 답이 없죠. 사실은 공정성의 기준이란 건 계량화 할 수 없고 결국 말 그대로 그 사회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느끼는 그 정도가 바로 공정성이라는 동어반복밖에 할 수 없을 지 모릅니다.

  BBC의 제작가이드라인을 보면 '적절한 불편부당성원칙'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노사논쟁이나 정치적 논쟁의 보도에서 논쟁이 지속되는 기간 동안 사회안의 주요견해들에 적절한 비중을 두는 것'입니다. 일단 50데 50으로 하라는 건 아니죠. 또 BBC의 다른 규정을 보면 제작진이 특정견해를 취하는 것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다시 밝히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어쨌건 그렇다면 '적절한 비중'이 뭐냐는 문제가 남겠죠. 결국은 주요견해를 다 소개하되 지배적 의견과 소수의견은 구분해야 하고 그 구분에 맞춰 비중을 조정하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역시 실제 제작과정에서 판단해야 하는 주관적인 내용이죠.

  결국 저 개인적으론 이번 방송법보도건 광우병보도건 대립되는 두 의견을 모두 보여주고 그러나 어느쪽이 현재 사회에서 지배적인 의견이고 더 옳다고 판단되는지에 대한 논평을 했다면 불공정하다고 낙인찍긴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번 미디어법파문에서 방송통신심의위의 위원들은 미디어법에 대한 찬반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배적의견/소수의견의 판단자체를 막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MBC가 반대논리만 집중적으로 전개했다며 균형을 잃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심의에 안 걸리려면 결론없는 찬반 양론만 보여주는 보도만 해야 한다는 얘기아니야고 비판하면 심의위 쪽은 '다시 그건 아니다, 그러나 적절한 균형을 갖추라는 것이다'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그 적절한 균형이 어느정도를 말하는 것이냐고 다시 물으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겠죠.

  장황한 얘기였지만 결국 적절한 균형이란 계량화 할 수 없는 겁니다. 각자의 주관에 따라 적절할 수도 일방적일 수도 있는 것이죠. 그 모범이라는 BBC의 가이드라인도 '적절한 비중'이라는 선언적 말 밖에 할 수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다른 나라들 대부분이 방송뉴스나 시사보도의 내용을 심의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고 있는 겁니다. 다만 형식적인 부분, 예를 들어 선거보도에서 각 후보자들의 발언은 똑같은 시간으로 보도해야하는 '동등시간원칙'같이 계량화 가능한 것만 심의하는게 원칙이죠.

  보도에 대한 심의라는 건 그 자체가 사실 결코 중립적 행동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정치권력의 의지의 영역이라고 봐야겠죠. 불과 몇해전 탄핵사태 당시를 회상해 보시면 더 좋은 예가 될 겁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에 대한 방송보도를 놓고 불공정했다는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의 비판이 많았죠. 그러나 당시 심의를 담당하던 방송위원회는 탄핵방송보도를 심의해달라는 보수단체의 요구를 각하해 버렸습니다. 심의착수 2달만에 징계결정을 바로 내린 지금의 상황과는 대조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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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8 01:15 2009/03/08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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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냐 운이냐...

Inside newsroom 2009/02/19 00:42 주인장
   스포츠는 사실은 저널리즘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방송이나 신문에서 스포츠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죠. 게다가 사람과 사람의 대결이란 어찌보면 사회사의 가장 강렬한 축소판이고, 스포츠기사야말로 각 기자의 문체와 글솜씨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물론 반면 경기결과라는 나온 사실을 보도하고 정해진 장소에서 기자들을 맞이하는 선수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패턴이라 각 개인의 취재역량은 제한되는 면도 있죠.

  이번에 2580소재로 복싱신인왕전을 택하면서 저도 두가지 상반된 생각을 했죠. 한편으론 글솜씨와 구성의 묘미가 많이 필요하다는 부담감,  그러나 반면 이제까지의 취재와는 달리 인터뷰 섭외 쉽고 취재갈때마다 환영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죠.
  아니나다를까 스폰서도 제대로 못구해 가까스로 대회를 연 한국권투위원회로부턴 '취재해줘 고맙다'라는 감사인사를 들었고 - 매번 취재하러 나갈때마다 누구를 고발하러 왔냐며 도망가는 인터뷰대상자들을 쫓아가느라 바쁜 저에겐 참으로 감격스런 인사였습니다 - 또 선수와 체육관 관장들도 원하는 대로 찍으라며 전적으로 지원해줬죠.
 
  그러나 어려움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준결승전에 진출한 복서들 가운데 사연되는 선수들을 골라서 취재에 들어간 건 좋았는데 취재들어간지 이틀뒤가 바로 시합이었죠. 결국 취재를 계속하고 기사를 쓰려면 우리가 고른 선수들이 준결승전에서 이겨줘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제가 '패자의 눈물'이 아닌 한...

  워낙 당일의 컨디션에 좌우되는 면이 있는지라 저도 고심했죠. 그래서 헝그리복서 1명, 다른 직업과 프로복서를 병행하는 선수 1명 해서 2명의 사례가 필요했음에도 각기 1명씩의 사례를 더 취재해 4명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헝그리복서로 고른 첫 선수부터 바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권투위원회에서 우세한 선수라는 말을 듣고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정말 다크호스였죠.

  그리고는 직업인 복서 2명의 경기가 연이어 펼쳐졌습니다. 그 한명의 경기가 바로 아래 사진의 '싸움'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쌍용자동차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는 이진용 선수. 오른쪽선수입니다. 사진처럼 정말 피튀기는 혈투였습니다. 1라운드부터 상대 강펀치에 다운당한 이진용. 저는 바로 이선수도 취재수첩에서 지워야 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2라운드... 시작하자 마자 원투스트레이트로 바로 다시 다운을 뺐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응원하며 승리를 기원했죠.   역전승이 펼쳐진다면 기사는 그냥 나오는 거였습니다.
  '현실에서 가장 어려움을 맞고 있는 쌍용차의 직원이 권투라는 또다른 도전에선 역전승을 이뤄냈다'는 식으로요. 그러나... 그러나...
   역전은 없었습니다. 이 선수는 혈투끝에 졌습니다.

  그리고 직업인 복서 2번째 선수. 재활용센터에서 일하며 프로로 나선 복서로 자신의 도전과 신인왕이란 목표에 대해 가장 조리있게 잘 말해 준 선수였죠. 그리고 컨디션도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선수도 졌습니다.

  결국 4명의 취재대상자 중 3명이 진 상황. 남은건 18살의 소년 헝그리 복서 이종길 선수. 챔피언을 꿈꾸지만 다른 선수들처럼 체육특기자로 대학가진 싫다고 몇달간 운동 그만두고 수능봐서 대학간 굳은 의지를 가진 선수였죠. 그리고 무엇보다 기량이 출중해 권투위원회에선 '얘는 문제없으니 편하게 시합보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공이 울리자마자 상대선수는 시합을 지배하더군요. 이종길의 펀치는 여유있게 피하고 위기는 클러치로 헤치면서 착실히 펀치를 퍼부어댔습니다. 제 속은 타들어갔고, 머리속에선 갖가지 생각이 맴돌았죠.

  '패자의 눈물로 주제를 바꿔야 하나, 그러면 기사방향은 어떻게... 아니 그래도 기사자체가 되나? 신인왕전은 도전의 의미를 담아야하는데 패자의 처진 어깨가 어떻게 도전자의 패기와 연결되나...'
  그리고 마지막 4회 이종길의 제대로된 반격이 힘겹게 이어졌습니다. 그때 저절로 주먹을 쥐게 됐고 그 주먹을 휘두르며 저도 '때려눕혀'라고 외쳐댔습니다. 옆에선 카메라기자 선배와 오디오맨까지 취재진이 한데 뭉쳐 '이종길 이겨라'를 외치고 외쳤습니다. 정말 2002년 월드컵이후로 저 개인에겐 가장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판정결과 발표. 3명의 심판 중 첫심판은 이종길 우세, 다음 심판은 상대선수 우세...
마지막 심판의 발표때 정말 제 맥박이 2배로 빨라졌습니다. 결과는 1점차로 이종길 승리!

  사각의 링도 둥글다는 참으로 인상적인 진리를 느끼며 저는 헝그리복서 이종길에다 비록 패했지만 멋진 경기를 보여준 이진용선수도 주제를 조금 바꿔서 집어넣기로 하고 취재를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합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까지 취재한다는 것이 가지는 스릴를 느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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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00:42 2009/02/1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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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참 전에 끝났지만 우리회사의 신입사원 서류전형에 저도 심사위원으로 참가했습니다. 작년 8월의 일이죠. 전형이 진행중이던 시기에야 당연히 아무말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젠 최종합격자들이 연수까지 마치고 부서배치를 기다리고 있으니 당시 경험을 기록삼아 적어봐도 될 듯 합니다.

방송기자직의 지원자는 모두 17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류에서 뽑아낼 사람은 500명정도. 별거아니라면 별거 아닌 문턱이고 그래도 달리보면 상당히 많은 지원자를 걸러내야하는 그런 상황이었죠. 회사입장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필기시험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 많은 사람들의 시험장소도 없고 논술을 포함한 시험채점의 문제까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원자가 무려 1700명이고 이 천칠백명의 신상명세, 영어 및 어학성적, 학교, 특기, 자기소개서 등을 모두 봐야 한다는 것이었죠. 물론 전형위원은 저 혼자가 아니라 3명이었지만 문제는 공정함을 기하기 위해 3명이 지원자 모두의 서류를 보고 채점한 뒤 3명의 평균값으로 최종 점수를 매긴다는 거였죠.

결국 1700명 모두의 점수를 다 매기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린 대작업이었죠.

당연하게도 영어점수나 학점 등등을 계량화해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아니라 3명의 전형위원이 마치 입학사정관이 된 듯 처럼 서류에 나타난 지원자의 성향을 보며 기자직에 적합한 인물인지를 평가해 점수를 매기는 평가방법을 써야 했습니다. 물론 주관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서 3명이 중복해서 평가해서 평균을 내 보완한 것이죠. ( 여담이지만 이걸 한 번 해보니 요새 문제되는 고대 수시전형에서 고대측의 변명이 말이 안된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더군요. 수만명에 달하는 수험생의 내신과 비교과를 학교별, 과목별 가중치를 모두 계산해서 과학적으로 평가해 전형했다는 그 설명. 아마도 그 설명대로 제대로 하다간 올해 신입생을 내년에 뽑아야 할 겁니다.)

1700명 이나 되다보니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죠. 직업군인, 군 파일럿에 민항기 파일럿(그것도 한명이 아니었습니다...), 고교교사, 소설가, 경찰 등 다양한 직업군이 있었고, 학력제한이 없다보니 고교재학생들까지 있었습니다.

요새는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미인대회 입상자도 있었고, 어떤 나라의 영사까지 지낸 전직 외무공무원도 눈에 띄었고요.

그런데 정작 취업지망생들의 전형이라할 사람들은 오히려 가뭄에 콩나듯 했습니다. 학점 A에 토익은 900이상, 다양한 사회봉사경력을 가진 전형적인 취업지망생들 말입니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수십장의 서류를 넘겨가야 한 명씩 있더군요. 오히려 대부분은 저의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우선 토익점수... 믿기 힘들겠지만 토익 점수 6,700점들이 다수였습니다. 심지어 4,5백점도 수두룩하더군요. 저만 해도 우리 동기들 가운데 토익점수가 거의 꼴찌인데 저 정도 점수를 가진 지원자가 10명 가운데 1명 꼴도 안됐습니다.

학교의 경우 그야말로 편중됨 없이 오히려 서울보다 지방의 비율이 더 높았죠. 이러다보니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는 전형적인 취업준비생의 스펙, 소위말하는 SKY대학에 토익 고득점자는 상당히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고시를 준비하다 방향을 튼 지원자들의 비율이 상당했습니다. 남자지원자들의 경우는 거의 40퍼센트는 된 것 같았고, 여자지원자 가운데서도 상당수였죠. 지원자들도 고시생경험을 그다지 감추려들지도 않았고 자기소개서에 그런 내용을 많이 적어놓았습니다. 특히나 1차시험 통과경험은 플러스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크게들 강조해서 적기도 했고...(근데 별로 플러스는 안됐습니다. 1차 통과자는 너무 많아서... 그리고 2차 통과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아무튼 전형에 참가했던 저 같은 사람들은 예상과 많이 다른 지원자들의 모습에 조금은 놀랐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는 모습이었죠.

일단 우리회사의 지원조건에 학력제한이나 영어컷트라인이 없었으니 다양한 학교와 다양한(?) 토익점수대의 지원자들이 몰렸던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또 고시생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던 것도 같은 이유로 고시생들의 경우 일반회사는 영어점수나 전공에서 제한이 많아 지원이 어려웠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우리 회사로 몰리게 되었겠죠.

그러나 전형자들 입장에선 수년간 책상에 앉아서 법전 파던 이들이 사회현장의 목소리를 찾아다녀야 하는 기자를 하는데 적합한지 조금 신경쓰며 서류를 봐야했고...(그러나 그렇다고 고시생경험을 무조건 숨기라는 건 아닙니다. 숨겨봤자 재학중 장기간 휴학했거나 졸업후 경력없으면 어차피 고시생이라는 다 압니다.) 지원자의 토익이 삼, 사백점이더라도 토익점수를 그 정도에 머물게 하면서 그 대신 열심히 노력하고 경험을 쌓은 부분이 있다면 다 감안해 줬죠. (그러나 그런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은 일찌감치 기자나 피디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준비한 이들, 그러니까 남들만큼은 노력해서 적당히 따놓은 토익점수에 평상시 신문이나 TV를 유심히 보면서 기자나 피디직에 대한 개론수준의 소양은 갖춘 사람이라면 거의 통과할 수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갑자기 계획에 없이 지원한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대다수였으니까요.

직업의 선호도에서 언론직도 큰 부침을 겪고 있는 중이니 올해는 또 어떻게 변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그저 서류전형에 참가했던 경험을 기록삼아 끄적인 것이니 혹시 언론사 지망생들은 크게 의미를 두진 마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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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00:55 2009/02/0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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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온 설 선물

Diary 2009/01/21 01:28 주인장
  며칠전 '청와대에서 보내는 물건이 왔다'는 택배아저씨의 조금은 상기된 전화에 이어 봉황무늬 가득한 포장지로 싸인 설선물이 왔습니다.  이 대통령께서 엠비시기자에게 뭐가 예뻐서 선물을 보내주셨을까 의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아는 분의 상가에 조문을 한 덕에 일종의 답례로 저까지 설선물의 차례가 온 것이었죠.

  그래서 온 것은 표고버섯과 김. 집엔 별로 먹을 사람도 없어서 근처 사는 친척어른께 바로 갖다드렸더니 '대통령이 보내주셨다'며 좋아하시며 상자안에 있던 카드는 기념으로 가지라며 제게 돌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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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주는 선물'. 그야말로 사심없이 나라의 최고 어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좋아하시는 친척어른을 보니 새삼스럽고 당연한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국민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이렇게 뭔가 작게나마  베품 혹은 돌봄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는다면 모두가 감격하고 기뻐할 수 밖에 없으리나는 것 말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그래야 할 일인데...

  용산의 참사현장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어떤 이의 관점에서 보면 법질서의 파괴자들이고 어떤 구청의 관점에서 보면 '집단으로 몰려와서 생떼를 쓰는 민주시민 대우를 받기 힘든 사람들'일 것이고 또 어떤 점에서 보면 정당하게 받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일 수 있고 일면 그런 면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이 나라의 대통령에겐 자신이 지키고 섬겨야할 국민들이었습니다. 비록 대통령의 설선물을 받을 사람들 안엔 들어갈 수 없더라도 보호를 받을 자격은 가진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수단에 불과하는 '법질서'의 수호를 위해 희생된 셈이 돼 버렸습니다.

  '국민들을 섬기겠다'던 대통령의 다짐이 언제쯤 현실로 느껴지는 날이 올지... 앞으로 남은 4년안엔 올 수 있을지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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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1 01:28 2009/01/21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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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참여정부가 기자실 폐쇄를 감행하면서 내건 가장 큰 논리는 선진국 어디에도 기자실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진국 공관에 나가있는 외교관들을 총동원해서 해외사례를 조사하게 했고 그결과 선진국은 기자실이 없더라는 거였죠.
  그러나 해외 기자실 사례 조사라는 건 역시 엉터리였죠. 의원내각제라서 부처대신 의회에 기자실이 있는 국가들 - 사실 OECD국가 대부분이 의원내각제입니다 - 모두를 기자실 없는 국가로 쳤고, 미국도 연방정부의 부처들 가운데 기자실이 없는 곳이 많다고 기자실 없는 국가라고 선전했죠. 그러나 미국도 국무부와 국방부엔 기자실이 있었죠.
  가장 가관인 건 일본에 대한 설명으로 일본은 가장 우리와 흡사한 기자실 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바로 '일본은 언론제도에 있어선 후진국이므로 우리가 비교해선 안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일본 대사관 등에서 누가 누구보고 후진국 운운하냐며 비공식적으로 항의를 해서 일본사례는 '비공식적'으로 빠지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몇년전부터 정부가 대중이나 전문가 집단의 반발이 예상되는 정책을 쓸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것이 선진국사례이고, 그러면서 항상 '선진국 어디에도 우리같은 경우는 없으니 빨리 바꿔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지금은 공영방송의 민영화를 놓고 해외사례 운운하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선전이 이뤄지고 있는데 하나는 신문, 방송겸영 부분이고 하나는 공민영방송제도 부분입니다.

  OECD국가 어디에도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금지하는 국가는 없다라는 주장은 이미 여러군데서 완전 거짓말이라는 것을 밝혀줬으므로 저는 공민영부분에 대해 조금 언급해 볼 까 합니다. 이번에 방송법개정안을 발의한 주역인 정병국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1공영 다민영 즉 공영방송은 단 하나에 나머지는 민영방송인 지상파체계가 세계의 대세이고 공영방송의 민영화가 예외없는 추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세계적인 추세는 지상파는 공영성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하는 대신 뉴미디어시장은 민간주도로 개방과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 방송정책의 주된 골잡니다. 가장 폭넓은 접근성을 가지고 그 나라 언어와 문화의 중심매체인 지상파는 공영위주로 전체 미디어산업의 핵으로 유지하고 점점 시장의 규모의 커지는 위성과 디지털케이블, 그리고 IPTV는 철저히 민간기업의 진입과 그들끼리의 경쟁을 유도하는 겁니다.

  영국의 예를 들까요. 누구나 아는 대표적 공영방송 BBC가 있죠. BBC도 채널이 하나가 아닙니다. BBC1은 중심적인 종합편성채널, BBC2는 성인용 지식채널적 성격을 가미, BBC3는 어린이용 교육채널, BBC4는 예술채널로 운영됩니다. 여기에다 BBC World라는 해외용 채널까지 있죠. BBC하나로도 사실 충분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영국의 공영 지상파 방송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BBC만으론 충분한 다원성을 확보할 수 없다해서 다른 후발 공영방송들이 탄생햇죠.
  그것은 1982년에 탄생한 Channel 4입니다. 채널4는 BBC와 유일한 민영은 ITV의 양대구도를 깨고 다양한 여론과 방송산업의 혁신을 주기 위해 만든어진 채널로 역시 종합편성채널이고 공적인 소유구조의 공영방송이죠. Independent Broadcasting Authority (IBA)라는 공적기구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재원은 수신료가 아니라 광고등을 판매해서 얻어지는 상업적 재원입니다. MBC 문화방송도 광고를 재원으로 하고 있고 이 때문에 무늬만 공영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그래서 MBC를 공민영방송 아니냐며 '정명'을 찾으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지만... - 사실 세계적으론 상업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지상파 민영방송은 유일하게 ITV와 Channel 5가 있습니다. 그중 BBC의 독점체제를 깨고 생긴 최초의 민영이자 최대민영이 ITV입니다. 그러나 ITV야말로 최시중위원장의 말대로 공영인지 민영인지 알 수 있는 공민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TV는 각 지역방송사들의 연합체로 이들 지역방송사들과 광고대행사들이 분할해서 소유한 형태입니다. 이러다보니 사주가 너무 많아서 특정회사의 지배권이 제한받는 회사죠. 그런데 영국정부는 이것도 모자라서 ITC(Independent Television Commission)라는 독립된 민간방송 규제기구를 두고  ITV가 공공성을 띤 방송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공적책무를 수행하는 민영방송입니다. 방송시간의 상당량을 공적인 프로그램들을 하도록 돼 있죠.

  그런가하면 프랑스도 TF 2, 3, 5 등 절반정도가 공영방송입니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지금 대표적인 민영인 TF1도 공영이었지만요. 그리고 역시 우리로선 특이하게도 TF2와 3의 경우도 수신료외에 광고수입이 40퍼센트 정도를 차지합니다.
   
  독일의 경우도 ARD와 ZDF라는 양대 공영방송사가 지상파방송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민영방송들이 10개정도 있지만 이들은 RTL그룹과 Pro7이라는 그룹이 양분해서 가지고 있죠. 그런데 독일의 이 두 공영방송은 독일의 보수당인 기민당에겐 '좌파방송'이라고 계속해서 비난받아왔습니다. 기민당은 공영방송의 비판적인 보도가 자신들의 장기집권에 걸림돌이 된다며 민영화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결국 국민여론 등에 밀려서 민영화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여러모로 지금의 우리를 연상케 하지요.

  그외에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을 보면 다공영체제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또 공영방송의 재원이 단순히 수신료 뿐이던 시대도 이미 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공영방송이 여러개이고 광고를 재원으로 하는 공영방송이 존재하는게 이상하고 후진적인 형태는 아니라는 거죠. 다만 그렇게 몰고 가고 싶어하는 정치세력이 있을 뿐이고요.
   
   해외사례라는 항상 쓰던 그 무기를 이젠 정부는 물론이고 조중동 신문들도 공영방송의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번 대선의 결과가 나오던 날 "이제 MBC는 우리 것"이라며 좋아했다는 보수신문 경영진의 행태를 떠올려보면 그 보도들을 신뢰하긴 힘들겁니다. 거짓말을 통해 잘못된 길을 인도하는 이들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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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4 02:31 2009/01/04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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