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검찰총장 후보자께서 여러가지 의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별다른 친분관계가 아니라는 사업가로부터 15억 5천만원을 빌리고 거기에 함께 골프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행당시 부인이 사들인 사치품까지도 도마위에 올랐습니다.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직생활 수십년에 저 정도가 의혹이냐 청렴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판단이 쉽지는 않네요.

이번 검찰총장 청문회를 보면서 옛날 기억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무려 2002년에 있었던 검사후원회의 폭로기자회견이었는데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논란은 있었지만 그당시 검사를 후원했다는 사업가들이 주장한 후원내역은 다채롭고 '구질구질'하고 재밌기 까지 했습니다.

뭐 물론 그당시 논란이 된 후원회와 지금의 문제되는 내용은 전혀 관련은 없습니다.

아래는 2002년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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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검사를 후원하는 모임이 꽤 늘고 있다고 합니다. 검사 월급으론 활동하기 쉽지 않으니 자신들이 도와서 검사들이 사회불의를 뿌리뽑는 걸 돕는다는 거죠. 그러나 모든 모임이 다 이런 거창한 정의의 대의명분으로 움직이는 걸까요?

 지난 3월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는 전 검찰총장과 현 서울 고검의 간부급 검사 이모씨의 비리건을 부방위의 최초 고발사례로 검찰에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고, 부방위는 이에 반발해 재정신청을 했지요.

 그리고 한달전 부방위에 검사들의 비리를 진정했던 김모씨 등 고발자들이 검찰수사가 불공정했다며 기자회견을 가졌고 아래는 제가 취재했지만 방송에는 못나갔던 그 사업가들의 고발내용입니다.

 - 이모 검사는 지난 92년부터 친구인 류모씨로부터 갖은 향응과 금품을 받아오다 95년 12월에는 류모씨를 통해 3천만원짜리 카펫을 검찰총장에게 전달했다는 겁니다. 물론 자신의 승진에도움을 받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죠.

  또 이 검사는 92년에 지방 지청장으로 부임하면서 부하직원들에게 주기 위한 가죽잠바 40벌을 류씨에게서 받았다는 겁니다.

  부방위에 진정한 김씨 등은 의류상가 사업을 위해 류씨와 동업한 상태였고 사업을 위해서는 검사의 뒤를 봐주어야 한다는 류씨의 말에 수십억원씩을 대주었지만 그 정도가 심해 결국은 고발을 결심하게 됐다는 그런 이야기 였습니다.

  이들의 고발에 대해 검찰은 카펫의 경우 3천만원 짜리가 아니라 사실은 2백만원짜리 중국산 카펫이고 뇌물이 아니라 취임선물로 준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김씨 등 진정인들은 검찰이 제시한 중국산 카펫은 자기들이 산 페르시아 카펫보다 훨씬 커서 한명이 운반할 수 없는데 검찰도 류씨의 운전사 한명이 카펫을 운반했다고 인정했으니 검찰말이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취임후 넉달이 지난 95년 12월에 선물한 것이 어떻게 취임 선물이 되며 운전사가 총장집에 갔을때 총장부인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당연하게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서 류씨 등이 베푼 향응에는 한강에서 제트스키 태워주는 것까지 있었다는 군요. 류씨가 검사님들이 힘드시니까 강바람도 쐬게 해 드려야 한다고 주장해 천 2백만원짜리 제트스키 3대를 구입해 이검사와 동료검사 두세명까지 함께 태워줬다는 겁니다.

 참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었죠. 물론 이것이 다 사실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부패방지위원회는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판단해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검찰은 불기소 했고 언론도 검찰을 상대로 하는 보도인지라 검찰쪽의 확인이 없어서 보도할 수가 없었죠.

  아무튼 검사후원회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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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22:47 2009/07/1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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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억수같이 퍼붓던 비가 개인 뒤 남산의 하늘입니다.

비가 갠 직후에 무지개도 떴다는데 단 10여분 차이로 무지개는 놓쳤습니다.

대신 해는 졌지만 아직 빛은 남은 이른바 '매직아워'의 끝자락을 좀 찍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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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유럽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정권 10년간의 대북지원금이 북한의 핵개발자금으로 유용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주장(?)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보수단체의 주장이 아닌 '대통령의 말'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오늘은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곡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로써 이 정부는 확실히 6.15정신은 끊어냈습니다. 자신들의 말을 다시 부정하는 일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금강산 관광도 재개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북한에 현금을 주는 사업이니까요. 당연히 개성공단도 현상유지 아니면 단계적 축소의 길을 걸을 듯 합니다. 역시 현금줄이니까요.

  그러나 저의 짧은 견해와 판단으론 10년간 우리가 북한에 건넨 돈이 핵무기가 됐다는 그 말에 동의하긴 어렵습니다. 굳은 머리와 귀차니즘으로 정교한 근거자료를 시간들여서 찾아내긴 싫지만 이 주장에 동의하기 힘든 몇가지 논거를 들 순 있습니다.

  첫째는 시간의 오류이고 둘째는 북한 '정권'의 성격과 북한 '국가'의 능력에 대한 몰이해입니다.

  우선 많은 이들은 북한의 핵무기가 지난 2006년 10월의 핵실험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건 틀린 겁니다. 사실 북한이 핵무기를 처음 개발한 건 노무현 정부때도 심지어 김대중 정부때도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아마도 김영삼정부로 그리고 근원은 더 위까지 올라 가야 합니다.

북한 핵문제가 처음 알려진 건 1989년 프랑스 상업위성이 영변의 핵시설을 공개함으로써 입니다. 그런데 영변핵시설은 무려 1986년부터 가동됐고 북한은 동시에 그 주변에서 핵기폭장치을 만들기 위한 고폭탄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이전에 연료봉을 재처리해 핵무기 2개는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10에서 12킬로그램을 추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핵문제에 열을 내는 보수단체나 그 문제에 있어선 가장 정통한 외교관들은 이상하게도 북한이 언제 처음으로 핵무기를 만들었을까에 대해선 침묵합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원자로는 물론 재처리시설까지 만들고 90년대 초반에 이미 플루토늄을 확보한 북한이 그뒤 20년간 넘게 플로토늄을 묵혔을까요? 아니면 1차 재처리 직후 바로 만들었을까요? 그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줬다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게 오히려 이치에 맞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보수진영이 오해하는 혹은 감추고 싶어하는 건 또 있습니다. 우리의 경제지원이 없었으면 북한은 무너졌을 거라는 게 군복입고 시청광장에 나와서 시위하는 분들의 레퍼토리입니다. 하지만 실제 북한이 가장 힘들었던 건 지금이 아니라 90년대 초중반입니다. 수십, 수백만이 굶어죽었고, 국가의 모든 생산활동은 중단됐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대입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 북한의 인민들은 상대적으로 아주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남측의 지원이 완전히 끊긴 지금도 평양은 오히려 전에 없이 활기가 넘치고 심지어 새로 휴대전화서비스가 시작되는 등 경제활동이 활발하기만 합니다.
  또 2006년이나 2007년 대홍수가 났을 때도 북한은 모자라는 식량의 상당부분은 중국에서 사와서 스스로 메꿨습니다. 네오콘들의 시각처럼 뒷골목의 깡패집단이 아니라 그래도 2천5백만의 인구를 가진 '국가'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 지원했다는 약 11억 달러 정도의 현금은 북한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됐을까요? 근데 이 11억달러과 비교할 건 올해 4월 장거리로켓 발사에 들어간 비용입니다. 우리 정부는 그 한번의 발사에 어림잡아 3억 5천만달러는 들어갔다며 그 돈이면 북한식량문제는 다 해결된다고 북한정권의 뻘짓을 규탄했습니다. 그런데 또 2차 핵실험을 했는데 여기엔 미사일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갔다고 봐야 합니다. 거기다 올해 쏴댄 수십발의 단, 중거리 미사일들... 아마도 이것만 합쳐도 11억달러는 넘어섭니다. 의외로 북한이 쓰는 돈은 많고 그에 비하면 10년에 걸친 우리의 지원금은 작은 비중이 됩니다.

  또 하나 간과해선 안 될 건 북한은 자력갱생의 나라라는 겁니다. 바세나르 협정 등 이전부터의 수출통제에 따라 북한은 일부 부품외엔 핵이건 미사일이건 자국기술과 부품으로 해결했습니다. 우리가 준 달러가지고 부품 수입해와서 만든 건 아니라는 겁니다. 어차피 핵이나 미사일이나 모두 대부분의 부품은 북한 자체 조달입니다.

  이렇게 보면 지난 10년간의 현금지원때문에 핵개발이 가능했다는 주장이 어느정도 의미를 갖고 있는 지 알 겁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건 북한정권이 주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와 다르다는 겁니다. 식량이 모자랄때 제일 먼저 굶게 되는 건 평양시민이 아니라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과 항경도 같은 소외된 지역의 충성심이 덜한 주민들입니다. 북한정권 입장에선 이런 사람들은 굶어죽건 말건 신경 안 씁니다. 오히려 잠재적인 위협세력이 줄었다고 좋아할 일이죠. 대신 중국에서 식량사와서 평양시민과 군대는 우선적으로 먹이고 그 정도의 여유는 있는게 북한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원을 끊어봤자 주민들만 힘들뿐 북한정권을 무너뜨리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내용으로 이전 남북대화 과정에서 북한의 당국자가 농담반으로 우리측에게 했다는 '위협'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북한 당국자가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 잘난 체 하는데, 우리가 한 2백만 정도만 남쪽으로 내려보내줄까? 그럼 한 백만명쯤은 지뢰밡고 죽겠지만 그래도 백만은 남쪽으로 내려갈텐데, 그럼 당신들은 어떻게 될까? 남한이 백만명 먹여살릴 수 있나?"   

아마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우리 경제는 파탄이 불보듯 뻔합니다. 더구나 그 백만명을 어떻게 어디에 수용할 것인지도 답이 안 나오는 거죠. 그러나 대량난민사태는 우리에게 치명타지만 북한으로선 그저 입을 덜고 불만세력을 줄이는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는 일입니다. 북한의 무서운 무기는 핵이 아니라 우리에겐 대량의 난민이 될 것입니다. 이또한 지원을 끊어서 북한을 무너뜨리자는 일부 주장이 가진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겁니다.

** 혹 이 글을 보고 저의 시각을 이상하게 볼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주인장은 '공화국의 적'이 됐던 적도 있는 사람입니다. 저로선 오히려 주민들의 인명을 경시하는 북한정권의 속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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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00:46 2009/07/09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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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주*
이 글은 원래 2004년에 작성된 글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블로그의 데이타를 날린 뒤 이전 글을 시간날때마다 복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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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와 신문기자의 차이, 이걸 질문하시는 분들이 꽤있으시더군요.

어떤이는 방송기자는 리포터지 기자가 아니다 역시 펜대를 굴리는 신문기자가 진짜 기자라고

하시는 이가 있는가 하면, 현장과 영상으로만 승부하고 취재원에 직접 렌즈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방송기자가 진정한 기자라고 하기도 하고...

  경험이 미천한 저보다 더 적절히 대답해 줄 분의 글을 하나 올립니다. 신문기자하다가 경력기자로 우리 회사에 입사한 이상현 선배가 기자지망생의 질문에 답한 짧은 글인데 그래도 핵심이 담겨있군요.


저는 일단 신문기자 3년했고, 방송기자는 1년이 다 되갑니다.
MBC로 올때 면접시 받은 많은 질문이기도 하지만,
신문과 방송의 가장 큰 차이는 현장감에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신문기자는 방송기자보다 깊이에 있어서 훨씬 뛰어납니다.
취재원과 사귀는 깊이고 그렇고, 기사의 깊이, 사고의 깊이 등등.
지면이 넓다보니 사고의 폭과 깊이가 그만큼 넓고 깊어지는것이겠죠.
또 일단 들은 얘기를 기사화할수 있는 장점이 있고, 술자리 등 그만큼 취재원을 만나는 바운더리가 넓어질수 있습니다.

반면 방송기자는 신문기자보다 깊이는 떨어지지만 현장을 많이 누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자하면 사건사고 현장과 역사의 현장에 선다는
인식이 강하죠. 그런면에서는 방송기자가 신문기자보다 훨씬 가깝죠.

요즘 신문기자들은 현장에 잘 가지 않습니다. 휴대폰, 인터넷 등이 발달되면서 앉아서 취재하는 습성이 일반화가 돼 있죠. 또 직접 만나서 취재하는 것보다 전화 등을 이용하는 것이 신속성 등에 있어서 더 효율적인 취재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송기자는 인터뷰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필히 취재원을 만나야 하고 또 사고현장의 그림을 담기 위해 현장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건사고의 정확성을 담기엔 직접 그것을 본 방송기자가 신문기자보다 앞선다 할 수 있겠죠.

선배들은 말합니다. 젊었을땐 방송기자, 늙었을땐 신문기자가 하고 싶다고. 맞습니다. 젊을땐 여러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방송기자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나이들었을땐 현장을 누비기보단 현상을 종합분석하는 기명칼럼이나 사설을 쓸 수 있는 신문쪽을 선호하게 돼 있죠. 사실 방송기자는 나이들면 별로 할 것이 없거든요. 후배들 기사 봐주는 것 외엔. 물론 일부 앵커나 토론진행자를 제외하곤 말이죠.

주저리주저리 제 생각을 늘어놓았군요. 어디까지나 제 경험에 비춘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이것이 모두 옳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다른 기자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몇가지 제가 더 덧붙이자면 일단 노동강도는 방송기자가 휠씬 셉니다. 역시 이상현선배와

비슷하게 한국일보에 계시다가 경력으로 오신 다른 선배의 표현에 따르면 정확히 '세배'가 더 힘들다고 말하더군요. 사실 신문기자라면 모든 상황 끝인 취재와 기사작성 이후에도 방송기자는 더많은 아니 사실 그때부터 본게임이라할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먼저 오디오 녹음. 사실 시청자에겐 그 기자의 개성과 전달력이 표현되는 대부분의 요인이죠. 별거아닌 것 같지만 기사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이건 방송기자의 숙명이에요.

 두번째로 영상제작. 방송기자는 들어가자 마자 한시간 정도는 찍어온 그림을 보고 필요한 인터뷰를 모니터해 쓴 부분을 취사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역시 필요한 자료그림과 음악을 찾고, 컴퓨터 그래픽이 필요하면 그림을 그려 의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그림과 오디오의 편집작업을 해야하죠. 물론 혼자다 하는 것은 아니고 편집자가 붙지만 영상편집 과정 외에 나머지 그리고 어떤 그림을 붙여야 하는지의 판단도 다 기자가 해야 합니다.

  일종의 post-production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보통 취재와 기사작성과 맞먹는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결국 방송기자는 기자 + 피디 + 리포터 입니다. 물론 방송이나 신문 어느쪽이 더 우월해서 생기는 차이라기 보다는 영상매체와 활자매체의 차이에서 생기는 매카니즘이랄까요. 어느쪽이 더 난이도가 높다고 비교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신문기자는 저녁약속을 쉽게 잡고 일찍부터 잡지만 방송기자는 저녁약속 잡기부터가 수월하지 않고 어떤 때는 다른 사람들이 2차술자리 가는 시간인 밤 10시부터 저녁먹기 시작하는게 보통입니다. 즉 근무시간의 길이에 있어선 방송기자가 KO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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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21:47 2009/07/0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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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의 공포와 비판

Diary 2009/06/21 15:02 주인장
  PD수첩에 대한 기소가 시끄럽습니다.  정부에선 미디어법 통과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전초전으로 사력을 다하는 것 같은데 사실 기소자체는 다들 예상했던 일입니다. 전직 대통령도 서거하게 만드는 검찰인데 그까짓 피디 나부랭이들 쯤이야 어떻게든 만들수 있는 작품 축에도 안 끼는 '범작'일 테니까요.  '방침'만 내려오면 어떻게든 수사작품 만드는 능력은 우리나라 검찰이 세계 최고일 것이고 그건 우리 국민들 모두가 자랑스러워해도 될 겁니다.

  그러나 저도 우리 검찰의 능력을 다 몰랐던 건 작가의 이메일까지 몇년치를 뒤져서 공개한 겁니다. 이건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기소한 검사는 대학의 헌법학시간에 졸았거나 아니면 아는 것보다 다른 것을 더 중시했나 봅니다.

  제가 들었던 헌법개론 강의에서 헌법분야에서 가장 권위를 갖고 있던 교수님이 즐겨들었던 예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학생 여러분 내가 일기를 쓰면서 '나 000은 황제가 되고 싶다, 세상을 바꿔서 내가 황제가 되겠다'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럼 민주공화정을 부인했으니 잡혀가야 할까요?"

우리는 정년퇴임 얼마 남지 않은 노교수의 썰렁한 유머정도로 생각했지만 이 교수님은 이 비유를 재차 강조하면서 황제가 되고 싶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건 아니면 일기를 쓰건 이건 모두 '양심의 자유'이고 헌법에서 가장 보호받을 자유라고 설명하셨죠.

우리가 흔히 보는 개인이 어떤 정치적 견해나 생각을 글이나 말로 공중에게 전파하는 경우는 사상의 자유로 보호받습니다. 그런데 개인이 사적인 편지나 일기 혹은 다른 친구에게 말하면서 나타난 정치적 견해나 태도는 바로 개인의 양심으로 이건 '사상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양심의 자유'로서 최고로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검찰은 바로 그 양심의 자유를 단번에 파괴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정부를 증오하건 이명박 대통령을 멸시하건 간에 그건 그 사람의 양심의 자유에 해당합니다. 그런 증오나 멸시를 공중이 보는 매체에 개시했다고 해도 사상의 자유 영역에 속해서 허위의 사실이 아닌한 보호받아야 하지만 개인의 E메일에 적힌 내용은 그게 아무리 강한 증오건 멸시건 간에 '양심'의 영역으로 검찰이 뭐라고 말할 것이 못 되는 겁니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이 헌법을 엿 바꿔먹는 상황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겁니다. 참 위기는 위기입니다.

사족이지만 물론 저라면 이메일에 그렇게 사적인 감정을 적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기소되고 메일이 공개된 사람이 작가라는 건 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피디를 돕는 assistant이지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닙니다. 신분자체가 비정규직에다, 작품이 상을 받을때도 혹은 명예훼손 문제로 법적 쟁송에 가더라도 모두 제외되는 사람입니다. 물론 한국의 피디저널리즘에선 작가들이 스크립트 작성에 깊이 관여하고 있고 이건 기자들의 정통 저널리즘과는 큰 차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품의 전체를 총괄하고 책임지는 건 피디입니다. 작가까지 기소하는 걸 보니 검찰이 참 급하긴 급한가 봅니다.

어쨌건 이런 상황에서 저 또한 블로그에 글 올리는 게 조심스러워 집니다. 사실 모든 글을 샅샅이 훝어서 걸고 넘어가려 한다면 불가능한 게 없겠죠. 그게 한국 검찰의 능력이니까요. 물론 저의 글은 별 문제는 없습니다. 기껏해야 아래 아래에 '전직' '이' 대통령을 비판한 글 정도인데 그거야 이미 역사적인 평가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거니까 큰 문제는 아닐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 쓸때마다 고민하고 할말을 피하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검찰이나 사정당국이 바라는 목표일 텐데 원하는 대로 제가 해줄 필요는 없겠죠.

또 하나 사족입니다.

이 글은 블로그 게시판 분류상 '일상 다이어리'에 올려져 있습니다. 즉 개인의 주관적 견해이자 개인의 기록일 뿐입니다. 다시말해 양심의 자유 영역에 속한 글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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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1 15:02 2009/06/2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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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방패에 관한 '아픈' 추억

Diary 2009/06/13 09:22 주인장
  6.10 기념집회에서 벌어진 경찰의 과잉진압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처음엔 일에 바빠서 뉴스에 보도된 영상을 보지 못하고 기사만 보고선 '뭐 매번 있는 일 아닌가'하면서 그렇게 큰 감흥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맞은 사람들의 조금 호들갑도 있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죠.

근데 그 영상을 보니 좀 심하더군요. 공권력이란건 원래 시민들의 폭력을 어느정도 용인되는 선까지는 받아주고 참아야 되는 건데 - 시민들이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세금내서 월급주고 보호장구 사주는 거니까요...- 사인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처럼 마구 때리더군요. 경찰의 변명으론 자신들의 간부가 시민들에게 둘러싸여서 보호하려고 그랬다는데, 그것도 변명이 안 됩니다. 경찰과 시민들은 서로 동일하게 치고 받고 싸우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경찰이 조금 억울하다고 바로 시민때리면 그건 경찰이 아니고...뒷 골목의 사람들이 되는 거죠.

아무튼 그 날으는 방패에 강타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저는 자연스럽게 제 턱을 쓰다듬게 되더군요. 그리고 머릿속으론 자그마치 15년전의 아픔이 떠올랐고요...

때는 제가 대학3학년이던 1994년 바로 이맘때 종로에서 집회가 있었고 저는 자연스럽게 선후배들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자연스럽게'라는 말을 좀 설명해야 할 텐데 저는 사실 운동권이라고 할 정도로 진취적이고 의식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옳다고 생각되던 당시 학생사회의 주류 분위기에 맞춰서 '성실히' 대부분의 시위에 개근하면서 그러나 마지막까지 있진 않고 대개 시위 막바지쯤 빠져서 과외알바 하러가는 그런 학생이었죠.

어쨌건 그날 시위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산재처리 촉구를 위한 집회였는데  대략 2만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겨우' 1개 공장 노동자들의 산재처리를 요구하는 집회였는데 대학생이 2만명 넘게 모였습니다. 취직준비와 데이트에 여념에 없는 지금의 20대 대학생들이 보기엔 미친 놈들로 보이겠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뭐든 모였다하면 만 단위였죠. 8.15 범민족대회나 전대협(이후 한총련으로 바꿨죠.) 출범식은 10만명씩 모였구요.

그런데 노동자들이 주인인 집회라 집회 분위기는 좀 살벌했죠. 경찰도 대규모 병력이 포진했죠. 결국 시위대의 안전을 위해 사수대가 조직됐고, 재수없게도 3학년이라는 이유로 저도 거기에 들어갔습니다. 사수대라고 해봤자 별개 없었습니다. 파이프 든 사람들 생각하기 쉬운데 대부분의 집회는 사수대라고 해도 비 무장이었습니다. 단지 사수대의 역할은 맨 앞에서 전경들이 밀어붙일때 같이 밀고 때론 맞아주면서 뒤에 있는 본대 사람들이 구호외치고 피켓팅하고 전단지 뿌릴 시간 벌어주는 일이었죠.

그 역할 충실히 전경대 앞에 나갔던 저는 더 재수없게도 맨 일렬로 전경과 마주서고 말았습니다. 제 기억엔 지금 보수신문의 기자하고 있는 동기놈이 나를 앞으로 밀었던 것 같기도 한데 15년 전이라 확실친 않네요.

그러나 그러나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하는건 바로 그때 내 앞에 섰던 전경녀석의 눈입니다. 약간은 겁먹은 그러나 그보다 조금은 더 분노의 기운이 셌던 눈.

드디어 시위가 시작되고 구호소리와 함께 외침이 커져갈무렵 전경대에서도 명령이 떨어지더군요. 그순간...

내앞의 그 전경녀석은 군화발로 내 발을 무자비하게 밟았습니다. 그리고 밟은채로 온 몸무게를 싣더군요. 발이 아파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놈의 몸무게에 발을 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허둥대는데 머리위로 해가 가려지더군요.

바로 그 놈아의 전경방패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 뒤는 그저 별 몇개가 하늘에서 왔다갔다 했던 기억뿐입니다. 어떻게 그놈의 군화발에서 빠져나왔는지 기억도 안나고 어찌어찌해서 같은 과 친구들과 후배들이 모여있던 곳으로 오긴 했는데 턱과 이마에 감각이 하나도 없더군요.  입이 잘 안 다물어졌고 말도 잘 안 나왔습니다. - 사실 그 때부터 제 발음이 이상해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다행인건 눈이나 입에 맞진 않은 거였죠. 물론 안경은 다 휘어지긴 했지만요.

그 전경녀석은 지금쯤 뭐 하며 살고 있을까요. 아무도 그 놈도 애아빠도 돼 있긴 할텐데, 자신이 때려줬던 얼빵한 대학생을 기억은 할지, 너무 때린 얘들이 많아서 아마 기억도 못할 것 같긴 합니다. 또 요새 강경진압 뉴스를 보면서 그 놈은 어떤 생각을 할지 조금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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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3 09:22 2009/06/1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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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맡고 있는 아침뉴스의 '이시각세계'란 코너는 원래는 '세상에 이런일'류의 황당하고 재밌는 해외영상들을 보여주는 코너에서 비롯됐습니다. 지금도 그런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각 나라의 사회구조나 갈등을 축약해 보여주는 사례가 있으면 되도록 챙기는 편이고 그러다 보면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연결되는 사례들을 접하곤 하죠.

  어제 2일 화요일에 전한 뉴스들의 경우도 그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아래의 기사인데요. 한번 보시죠.


------------------------------------------------------------

◀ANC▶

국제부입니다.

쿠르드 자치정부가 처음으로 원유수출을 시작했습니다.

자치주의 독자적인 수출을 반대했던 이라크 중앙정부와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이 지역에서 유전을 개발중인 우리 기업들에게도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VCR▶

쿠르드 자치주의 주도 아르빌의 기념식장,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과 쿠르드정부 수반이 함께 밸브를 돌립니다.

동시에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유전에서도 밸브가 열리고 쿠르드에서 생산된 원유의 첫 수출이
시작됩니다.

쿠르드자치정부는 하루평균 10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하고 2,3년내에 백만배럴로 늘릴 계획
입니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쿠르드의 원유수출을 반대해왔지만 일단 수입액을 국고에 귀속시키기로
하면서 극적으로 수출이 허가됐습니다.

쿠르드의 원유수출개시는 이 지역에서 유전을 개발중인 한국석유공사 등 우리 기업의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

도쿄의 한 거리, 줄지어선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은 바닥에 앉기도 했습니다.

프랑스계 보석업체가 기획한 다이아몬드를 무료로 나눠주는 행삽니다.

무료 다이아몬드는 무려 5천개, 행운을 잡은 사람들은 환호하며 기뻐했습니다.

무료다이아몬드는 0.1캐럿짜리로 우리돈으론 7만원정돕의 가격입니다.

그러나 이 업체는 무료 다이아몬드를 받은 고객들에게 반지를 만들라고 권했는데
어이없게도 반지세공비는 다이아몬드값의 열배가 넘어서 장사속이 보이는 행사가
됐습니다.

----------------------------------------------

유엔표시를 단 차량들이 올해 초 가자전쟁때 폭격당한 유엔학교 현장에 도착
했습니다.

이들 조사단은 이스라엘군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는지를 현장조사하게 됩니다.

유엔조사단은 원래 이스라엘을 통해 가자를 방문하기로 했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입국조차 막는 바람에 이집트를 통해 가자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정부는 조사단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조사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군의
범죄만 찾으려해 편파적이어서 입국을 막았다고 밝혔습니다.

팔레스타인인 천4백명이 숨진 일방적인 전쟁이었는데도 양쪽 다 똑같이 조사해야
공정하다는게 이스라엘의 주장인데요.

우리사회에서도 자주 논쟁이 벌어지는 공정성과 균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 줍니다.

-----------------------------------------------

◀ANC▶

철로에 누워 자살을 시도했던 한 여성이 기차가 지나갔는데도
무사히 살아난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체코에선 전직 총리가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난때문에
달걀세례를 받았습니다.

◀VCR▶

이스라엘 북부의 한 철도 건널목 철로로 한 여자가 다가서고 철도원이 피하라고 손짓을
하지만 여자는 끝내 철로위에 누워버립니다.

뒤이어 기차가 이 선로를 지나가버립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여자는 멀쩡하게 일어나서 걸어갑니다.

이스라엘경찰은 자살을 시도힌 것으로 보이는 이 여자를 일단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

2009년 MTV 무비 어워즈 시상식장, 사회자인 코미디언 앤디 샘버그가 유명스타들이
총집합한 시상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줄에 매달린 천사복장으로 스타들 위를 날아다닌 샘버그, 결국 팝스타 에미넴 위로 떨어
집니다.

악동 코미디언의 장난이었는데 그러나 힙합계의 악동인 에미넴은 참지 못하고
바로 퇴장해 버렸다고 합니다.

---------------------------------------

요즘 유럽에선 유럽의회선거가 한창인데 체코의 유세장에선 달걀이 최대이슈가
됐습니다.

유세장에 사회민주당의 대표이자 전직총리인 파로벡이 나오자 항의하는 유권자들이
달걀세례를 퍼붓습니다.

얼굴의 달걀을 연신 닦아내면서 파로벡은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지만 달걀세레는
계속됩니다.

파로벡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남발했지만 지키지 못한데다
지난 2005년엔 축제에 참여한 군중들에게 물대포와 최루탄을 사용한 경찰을 옹호한
전력도 있어 이런 수난을 당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시각세계였습니다.

--------------------------

1. 보시면 알겠지만 유엔조사단의 입국을 이스라엘이 막은 뉴스가 있는데 사실 그림은
그다지 재미없었지만 제겐 관심가는 뉴스였습니다.

국제사회가 파견한 조사단을 마음대로 거부하면서 이스라엘 외교부가 내세운 논리는
위에서처럼 유엔조사단은 팔레스타인측의 범죄는 찾지 않으면서 이스라엘군만
조사하니까 편파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측의 범죄도 똑같이 찾으라고
주장했는데...

아시겠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침공때 팔레스타인인은 천4백명이
죽었고 그 대부분은 민간인이었습니다. 특히 그 가운덴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이
폭격당해 죽은 민간인과 유엔직원들까지 포함돼 있죠.

이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수십명정도의 인명피해고 그 대부분은 군인입니다.

그런데도 기계적 균형을 들이대는 논리는 어딘가 낯익으실 겁니다. 그렇죠. 지난
탄핵정국때 그리고 작년 쇠고기파동 때 MBC뉴스와 PD수첩을 비판한 정치인들과
방송통신심의위 등의 논리였죠. 이들의 논란이 있는 사안은 양쪽을 다 균형있게 다뤄야
공정하다는 논리는 그 자체만 따로 떼서 그야말로 '진공'의 영역에서 보면 진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도와 미디어의 논리는 항상 그것이 반영하는 현실이 있다는 점을
두고 봐야 하고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현실에선 더 명확하게 그런 균형론의
헛점이 드러납니다.

2. 두번째론 경제를 살리지 못한 총리의 달걀세레도 와닿는 뉴스죠.

처음엔 그림만 보고 내용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아이템을 뉴스에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달걀껍질을 떼가며 연설을 하고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참 안스러우면서도
재밌는 영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통신사가 보내준 스크립트를 보면서 기사를 쓰는데 기사의 핵심부분일
'달걀을 맞은 이유'를 해석해보니 가관이더군요.

첫째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남발했지만 지키지 못했다는 것,
둘째는 축제때 모인 군중들 경찰이 강제로 해산시키면서 최루탄과 물대포를 쏜 일이
발생했을 때 경찰을 옹호하고 나선 게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는 것.

여러모로 우리나라의 상황과 연결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기사 말미에 그렇게
"우리나라의 어떤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대목입니다."라고 멘트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아마 앞으로 한 '1억 5천만년'정도는 방송출연을 정지를 당할 일이라
그럴 순 없었습니다.

혹 글을 읽으면서 오해하시는 분이 있을 까봐 밝히지만 제가 연상한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바로 이 대통령입니다.

이승만 전직 대통령이요. 6.25이후의 경제위기를 극복못했고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걸 묵인했죠. 여러모로 위의 달걀맞은 분과
연결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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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15:56 2009/06/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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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검찰의 중계방송식 수사내용 흘리기였습니다. 사소한 형사사건도 수사중인 내용은 피의사실 공표금지때문에 알려 줄 수 없다고 해오던 검찰이 이 사건에 있어선 '1억짜리 시계'같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언론에 흘리며 노 전 대통령을 망신주고 압박했던 것이죠.

영역은 다른데 요사이 또하나의 중계방송이 시작됐습니다. 바로 '북한의 위협'.

핵실험도 그렇지만 요새 다시 불거진 장거리 미사일 발사문제에 있어선 놀랍게도 우리 언론이 최첨단의 정보를 내놓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아침에 걸쳐 우리 언론은 북한의 대포동2호 미사일이 열차에 실려서 기존의 무수단리 기지가 아닌 평안북도 동창리로 이동하고 있다고 기사화 했고 심지어 이동이 완료됐다는 기사들도 오늘 나오고 있습니다.

- 동창리 이동시작 기사

- 동창리 이동완료 기사

반면 미사일 문제에 있어선 항상 발빠르게 그리고 한단계 사실보다 더 나가서 보도하기로 유명한 일본언론은 오늘 미사일이 동창리로 갈지 아니면 무수단리로 갈지 조차 아직 알 수 없는 단계라고 보도했습니다.

- 일본언론기사

심지어 CNN은 지난 토요일 북한의 미사일이 열차에 실렸다는 것도 아직은 불확실하다고 보도한 뒤 아직까지 동창리로의 이동 등에 대해선 보도하지 않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언론의 이런 '최첨단보도'는 아시겠지만 우리 정부의 고위당국자들의 흘려준 정보때문입니다. 청와대를 비롯해 국방부와 외교부의 당국자들은 '정보사항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이전까지의 불문률은 완전히 벗어버리고 거의 현장중계하듯 소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정보가 앞서고 있는 혹은 앞선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온 이유는 다음 2가지 중 하나일 겁니다.

1. 한국의 정보력이 미국, 일본과는 비교가 안되게 막강해서다.

2.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정보 중 아직 불확실한 정보까지 우리 당국자들이 입맛에 맞게 확대해석해서 우리 언론에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이 글을 읽는 분들 스스로의 상식에 맞춰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시점에 대해서도 오늘 우리 당국자들은 이달 중순에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의 전문가들은 최소한 이달 후반 내지 다음달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뭔가 우리 정부가 참 급하다는 건 확실한데 답답한 건 급한건 좋은데 국민들 긴장하게 만드는 것 말고 우리 정부의 대책이 뭐가 있는가 입니다. 사실 지난해부터 북한과의 긴장정국이 시작된 이래 이명박 대통령은 벌써 한 대여섯번 같은 내용의 담화를 내셨습니다.

"북한에 대해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응 하겠다!"

작년 금강산에서 박왕자씨가 총격으로 숨졌을 때도 개성공단의 출입이 제한됐을 때도 역시 '의연, 당당'이었고, 개성공단에서 우리 근로자가 억류됐을 때도, 그리고 미사일이 발사됐을 때도 '의연 당당', 그리고 이번 핵실험도 '의연 당당하게 대응'이었습니다.

이렇게 매번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응해왔는데도 왜 매번 같은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도 한 10번은 '의연 당당'을 말하실 것 같고 사실 그렇게 대통령이 '의연 당당'을 외치는게 우리 정부 대책의 전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우리 정부에게 북한을 제어할 수단이나 대책은 없습니다. 다만 북한이 조성하는 긴장을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것만 가능할 뿐이죠.

이런 우리 정부의 형태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근심스러운 건 북한도 우리 정부이상으로 대책없는 이들이라는 점입니다. 6자회담과 햇볕정책이 유지되던 시기엔 북한도 '국제적 역량을 키워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나름의 개혁정책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하에 펴나갔고 이 정책은 젊은 관료집단이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이 깡그리 숙청당했고 군부가 모든 정책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우리 이상으로 북한도 '잃어버린 10년' 즉 남한의 자본주의 바람에 오염된 시기를 정화하자는 바람이 불고 있는 겁니다. 결국 남이나 북이나 능력도 없으면서 전쟁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권력을 쥔 것인데 이건 지난 김영삼정부 때이후로 처음 맞이한 위기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심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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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7:49 2009/06/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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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는 서울광장의 봉쇄 입니다. 추모객들의 편의를 위해 시민을 위한 공간을 쓰겠다는 일면 당연한 요구는 경찰은 자신들의 특기인 '버스로 막기'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일선기자들이 만나는 남대문 경찰서장부터 서울지방경찰청장, 그리고 경찰청장의 입장은 정말 단호하고 집요합니다. 어떻게든 광장은 막을 것이고 추모건 뭐건 집회는 안된다는 겁니다. 왜 이정도로 집요할까요. 수만명의 분노를 느끼면서도 이렇게 철저히 막는 이유는 뭘까요?

  얼마전 청와대의 사정에 정통한 한 경찰간부와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다 1년전 촛불집회에 관한 얘기가 나왔고,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이나 청와대 간부들은 촛불집회가 극심했던 때도 어느 정도 위기감을 느꼈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부의 문제로 본 것 아니냐?"
 
    이 간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펄쩍 뛰더군요. 그야말로 자신들도 엄청난 위기로 알고 전전긍긍했다고 하더군요. 가장 대표적이었던 경우는 촛불 시민들이 경복궁 입구인 동십자각 앞에서 경찰과 대치했던 날이라고 했습니다.  동십자각 저지선이 뚫리면 바로 '청와대'로 이어지는 위기였고, 이때문에 이대통령 포함해 직원모두가 밤을 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청와대 외곽 경비를 맡은 수방사 예하의 30경비단 장병들이 출동태세를 갖추고 대기하는 초유의 상황이었고 게다가 .....
 
  이대통령의 전용차는 엔진을 걸어놓고 이대통령 숙소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더군요. 바로 청와대 벙커 - 요새 한참 경제관련 회의를 열던 장소요. -로 대통령을 모셔가기 위해서였던 거죠.

  그래서 이 만큼 엄청난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PD수첩방송의 편파문제를 그냥 두고 넘어갈 수가 없다는 게 이 간부의 말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론 이날 이후 정부가 촛불집회에 느낀 공포는 정말 엄청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대통령이 대피를 고려해야 할 지경이었으니 그날 기억은 이 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에겐 정말 악몽 그 자체였을 겁니다.

결국 그 엄청난 공포때문에 촛불집회, 혹은 시민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은 무조건 막아야하는 대상이 된거죠. 어찌보면 이명박 대통령도 가련한 것 같습니다. 하마트면 청와대가 침탈당할 뻔 했다는 공포의 기억,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을 지지하고 환호해 줘야할 국민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게 됐으니까요. 그러나 그보다 더 불쌍하고 안타까운 건 국가공권력으로부터 적대적인 대접을 받게 된 우리의 처지일 것이고 동시에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여줘야만 하는 우리나라의 손상된 '국격'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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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00:45 2009/05/2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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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침 'MB, 쥐새끼'

Diary 2009/05/23 23:00 주인장

  덕수궁 대한문에 시민들이 설치한 노 전대통령 분향소가 경찰들에 의해 봉쇄된 소식을 오늘 7시부터 특집으로 편성된 MBC뉴스에서도 전했습니다. 시민들은 모여들고 경찰은 막무가내로 막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어 당연히 중계차가 현장에 나가 생방송을 했죠.

 8시 20분쯤 이 덕수궁 현장 리포트가 생방송으로 시작되고 기자와 현장을 잡은 샷이 끝나갈 무렵 기자 근처에 있던 시민이 외친 것으로 보이는 고함소리 하나가 방송에 잡혔습니다. 바로...

"이명박 쥐새끼!"  

아마도 방송을 아는 시민이었던 것같습니다. 현장 생방송을 하는 기자들의 핸드마이크는 비교적 지향성이긴 하지만 스튜디오 마이크 처럼 완벽하게 다른 소리를 차단하진 못합니다. 방송중에 바로 옆에서 누가 소리치면 방송자체를 끊지 못하는 한 소리가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보고 있던 저는 한참 웃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제가 생방송할 땐 그런 일은 없으면 합니다. 심장 약한 저로선 만약 내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당황해서 낭독하던 원고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아마 더듬거렸을 겁니다. 오늘 방송한 후배기자 송양환기자는 정말 뻔뻔하더군요. 하나도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원고를 잘 읽었습니다. 평상시에 보기에도 좀 건방지고 담대해 보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계차의 재미는 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쥐새끼' 고함이 나간 8시대 방송이후 저는 9시대엔 또 어떤 시민이 뭐라고 외칠지 궁금해 계속 주시했고 9시 20분쯤 다시 덕수궁중계차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마이크를 줜 송양환 기자의 뒤를 전경들이 철통같이 에워쌌더군요.
  바로 아래기사죠.

--------------------------------------------------------------

덕수궁 분향소 설치 경찰-시민 충돌
● 앵커: 현재 서울 덕수궁에
마련된 임시분향소도 연결해
보겠습니다.

송양환 기자, 어떻습니까?
●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된 이곳 서울
덕수궁 앞에는 밤이 깊었지만
아직까지도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분향소 주변을
여전히 차벽으로 가로막고
분향소로 가는 시민들의
행렬을 차단하고 있어
곳곳에서 충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시민과 경찰이 서로
대치한 채 몸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이 추모렬에 참여해 불법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곳
덕수궁 앞뿐만 아니라 서울광장, 청계광장 등을 92개 중대 8000여 명을 동원해
원천봉쇄했습니다.

또 지하철 시청역 출구도 일부 봉쇄해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분향소를 찾으려는 순수한 추모행렬마저 가로막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계속해서 항의하고 있지만 경찰은 불법시위자와 단순 추모자의 구별이 불가능해 모두
차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추모행렬은 점차 불어나고 있어 시민들과 경찰의 대치가 밤 늦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긴장은 고조되고 있습니다.

서울 덕수궁 앞에서MBC뉴스 송양환입니다.

<동영상>

-----------------------------------------------------------

   봉쇄하고 막고 또 막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목소리와 행동을 저렇게 하나하나 막으면서 열심히 국가기능을 불철주야 유지하고 있는 경찰들과 그들에 의지해서 열심히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분의 노고에 존경을 보냅니다. 그러나 아쉬운 건 그럴수록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격'때문에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우리의 정치체제와 일상민주주의의 수준이 이 정도일까요?

*****
  오늘 돌아가신 분께는 정말 애도를 표시합니다. 비록 그분에 대한 저의 감정은 복잡하고 미움만 남았던 건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 분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가 적어도 3년 반 정도는 겪어야 할 다른 고통에 대해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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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3 23:00 2009/05/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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