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기자의 상상력

Inside newsroom 2010/01/20 14:42 주인장
이젠 한파가 한풀 꺾였지만 지난 연말부터 2주전까지 저를 괴롭힌 주제는 바로 전세계를 휩쓴 한파였습니다. 사실 전세계는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북극의 이상기후로 남하한 기단때문에 북미와 유럽, 동북아시아에 생긴 한파였죠.

아무튼 크리스마스부터 시작된 한파로 처음엔 유럽의 유로스타가 멈추고 항공기가 결항된 상황이 보도됐습니다.그런데 다음날도 같은 리포트를 편집부에선 다시 요구했습니다. 뭐 한파는 비슷하게 계속됐으니까요. 그러나 상황은 어제와 마찬가지여서 비슷한 기사에 동유럽의 동사자 속출을 추가해 제작했죠. 그런데 그 다음날도 역시 한파보도를 요구했고, 역시 또 비슷한 내용을 국제부에선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해첫날도 역시 한파보도제작을 요구했습니다. 이번엔 미국에도 한파가 왔다는 것, 해서 제작. 그런데 그다음날도 그다음날도 계속 한파보도를 해야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도 추우니 다른나라 뉴스도 필요하다는 것, 블럭편집을 위한 리포트가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요즘 들어 전례없이 국제뉴스의 양을 늘리고 있는 현상과도 맥이 닿은 것이었죠. 물론 국제뉴스의 비중확대는 반대로 국내뉴스의 비중축소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세종시문제, 실업대란, 경제회복, 정치권 여야갈등 뭐 이런 '골치아픈'뉴스는 줄고 대신 그림되는 국제뉴스는 늘어난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미국기자인가 미국과 유럽에 눈만 오면 리포트하게'하는 불만, 그리고 나중에 뉴스연성화의 한 주역으로 시민단체 보고서에 이름이 올라갈지도 모르겠다는 우려 또한 가슴에 묻고 제작에 임했습니다. 사실 지구온난화에 의한 이상기후라는 점에선 보도가치가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거의 하루도 안빠지고 근 열흘간 제작을 해야했던 가에 대해선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도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어쨌건 아래 기사는 지난 1월 5일 기사로 유럽과 미국, 중국 등의 한파를 종합한 기사입니다. 국제부기사의 전형적인 한 예로 각 지역을 종합한 기사죠.


<지구촌 곳곳 한파-1월 5일 뉴스데스크>

◀ANC▶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이 폭설과 한파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봉기 기자가 종합했습니다.

◀VCR▶

새해부터 유럽 각지에 폭설과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계속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잇따른 폭설로 스위스 알프스산에서는 대규모 눈사태가 두 차례나 일어나
5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습니다.

또 프랑스 쪽 알프스 산악지방에서도 3명이 눈사태로 숨졌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최대의 하천 비스와 강이 마치 남극 빙하처럼 변했습니다.

무려 영하 25도의 한파가 계속되면서 폴란드에선 새해 들어서만
벌써 13명이 동사했습니다.

영국도 30년 만의 한파로 전국의 도로가 결빙되고 산악지대에선 여행객들이
고립됐다가 구출됐습니다.

◀SYN▶ 트래이시 데비/고립됐던 주민
"30명이 이 여관에 3일간 갇혀있다 보니 식량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무서웠습니다."

대서양 너머 미국도 최고 80cm의 폭설이 내려 자동차들은 헛바퀴만 돌며 미끄러지고,
중장비가 걷어낸 눈은 산처럼 쌓였습니다.

미네소타와 사우스다코다주 등에선 30년 만에 최대 한파가 닥쳐
수은주가 영하 37도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중국에선 폭설이 내려 눈 속에 파묻힌 기차에서 승객 1400명이
25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구조대는 3.5m에 달하는 눈벽을 뚫어가며 현장에 접근해야 했습니다.

◀SYN▶ 구조된 승객
"무서웠지만, 승무원과 구조대원이 잘 도와줘서 괜찮았습니다."

인도에서도 수도 뉴델리 인근과 카슈미르 등 북부지역에서 1주일째
영상 10도 정도의 이상한파가 계속돼 동사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MBC 뉴스 전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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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시나 바로 그다음날(6일)도 또 제작지시가 왔고 그날은 다른 기자가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7일은 제가 또 제작해야 했습니다.

벌써 한 대여섯번 같은 주제로 제작되고 있는 기사, 뭔가 변화는 필요했죠. 그래서 처음엔 이번 한파의 원인을 제대로 언급이라도 해주자하는 생각에 북극기단의 움직임을 보다가(그렇습니다. 5,6번 같은 주제로 제작하면서 정작 원인을 제대로 풀어준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원인보도는 기상청 담당기자가 따로했기 때문이지만 뭔가 아쉬운 부분이었죠.) 플로리다지역까지 한파가 확장된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죠.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왔습니다.

폭설에 유로스타 멈춰‥열대 지역까지 얼음

play

◀ANC▶

유럽과 미국을 강타한 30년 만의 강추위로 영국은 나라 안팎을 잇는 대부분의 교통이 마비됐고, 미국에선 열대의 해변으로 유명한 플로리다마저 얼음으로 덮였습니다.

전봉기 기자입니다.

◀VCR▶

온통 하얗게 변한 도시.

영국은 최대 47cm의 눈으로 푹 덮였습니다.

런던 개트윅공항은 눈보라에 아예 폐쇄됐고, 히드로공항에서도 150편의 항공편이 결항됐습니다.

런던과 유럽을 잇는 유로스타는 폭설로 인한 사고 위험 때문에
지난 크리스마스에 이어 또 다시 운행이 중단됐습니다.

영국 남부 햄프셔지역에서만 차량 1000대가 눈 속에 고립돼
군대까지 출동해 운전자들을 구출했습니다.

병원의 응급실은 눈길에 미끄러져 다친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SYN▶ 데릭 카트라이트/구급대원
"이번 주 들어서 넘어져 다치는 사고가 평상시보다 4배나 늘어서
전력을 다해 모든 사고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유럽대륙에서도 한파가 계속되면서 프랑스 고속도로가 완전히 마비됐고,
폴란드에선 장갑차까지 동원돼 눈으로 고립된 마을에 비상식량을 날랐습니다.

노르웨이는 수은주가 무려 영하 41도까지 떨어져 지난 1987년 이후 최고의 추위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역시 북동부를 휩쓴 한파가 남부까지 확대됐습니다.

플로리다에서는 오렌지나무 가지마다 얼음이 맺혔고, 동물원의 원숭이들은 모포를 뒤집어썼습니다.

마이애미까지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져 플로리다 주정부는 한파 피해를 입은 오렌지 농가에
긴급지원을 시작했습니다.

◀SYN▶ 플로리다 주민
"너무 춥습니다. 너무 추워서 밖에 조금만 나와 있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남부에서만 6명이 동사한 가운데,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추위가 북극기단의 확장 때문에 생긴 것으로 쿠바 등 캐리비안해까지 한파가 몰아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MBC 뉴스 전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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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타방송사와 대동소이했지만 플로리다 한파는 CNN의 생방송을 보며 바로 캐치한 것이라 이날은 우리만 다뤘고 타방송사는 다음날부터 다루기 시작했죠. 그러자 편집부에선 좋아하며 또 제작하라더군요...-_-

유럽과 미국 등 여러 지역의 한파피해상황을 종합하는 포맷을 유지하되 써머리만 해서는 어제와 같은 기사가 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이번에 일종의 소제목 달기에 나섰습니다. 바로 '경제'였습니다.


<1월 11일 뉴스데스크>

전세계 폭설·한파에 동사자 속출

play

◀ANC▶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추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요.

유럽에서만 추위로 숨진 사람이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여기에 치솟는 난방비와 농작물 피해까지, 추위가 경제마저 얼어붙이고 있습니다.

전봉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VCR▶

수십 대의 자동차들이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눈보라 속에서
점점 파묻히고 있습니다.

독일 발트해 연안고속도로에선 160명이 밤새 차안에 고립됐습니다.

구조대는 2m 높이로 쌓인 눈을 치우고 운전자들을 겨우 구출해냈습니다.

◀SYN▶ 티모 자드케/지역 기상청 관계자
"정말 극적인 상황입니다. 계속되는 눈에 마을이 잇따라 고립되고 있고
자동차들이 파묻히고 있습니다."

도로마다 트럭들이 뒤집혔고, 제설차량마저 멈춰서
견인하는 일이 줄을 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60여 편의 항공편이 결항돼 승객들은 아예 공항 바닥에 누워서
잠을 청했습니다.

폴란드에선 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전선이 끊어지면서
무려 8만 명이 밤새 추위에 떨었습니다.

영국에서도 한파로 16명이 숨지는 등 이번 한파로 유럽에선 지금까지
100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남부지방까지 덮친 한파로 농작물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마치 폭포가 얼은 것 같지만 모두 오렌지 나무입니다.

◀SYN▶ 오렌지 농장주
"모두 버려야 합니다. 오렌지가 전부 얼음덩어리에요."

한 해 9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오렌지 농업이 존폐 위기에 몰렸습니다.

전력수요도 폭증해 지난 토요일 플로리다의 전력소비량이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고, 각 가정의 난방비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중국도 강한 눈보라가 신장지역을 덮치면서 가옥 800여 채가 무너지고
주민 5천5백여 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또 난방용 석탄수요가 폭증해 최대 석탄 산지인 산시성마저
석탄재고가 떨어져 가동을 멈춘 공장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폭설과 한파로 세계 곳곳에서 사고도 속출하고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지구촌 경제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습니다.

MBC 뉴스 전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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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하는 방식을 유지하되 기사 후반부분부턴 한파로 인한 경제적 피해에 초점을 두고 플로리다 농업과 전력사용, 중국의 석탄고갈 등을 이어서 결론을 지어버렸죠. 다만 한파로 인한 전세계의 경제 피해 추정액이 아직 나오지 않아 아쉬웠는데 공교롭게도 이 기사가 나간 다음날부터 유럽지역의 경제연구소들에서 피해 추정액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이 걸로 이제 끝이려니 했는데 편집부에선 이젠 타사 한파기사들보다 월등히 좋다며 나를 치켜세우더니 또 하라고 했습니다. 골치아팠지만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또한번 다른 소제목을 세워봤습니다. 그건은 바로 '생태계'. 사실 어떤 재해든지 그 여파를 생각할때 가장 쉽게 떠오르고 주요한 영향이 있는 분야는 경제와 함께 환경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스런 방향설정이었고 원래 따뜻한 동식물의 낙원에 가까운 플로리다가 한파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선 미국방송들의 그림들도 풍부했죠. 물론 주요 외신소스인 AP나 로이터로는 안됐고 미국 현지방송들을 적절히 이용해야 했는데 다행히 그림뉴스라서 리스닝의 장애는 그리 크진 않았습니다.


<1월 12일 뉴스데스크>

전세계 혹한, 생태계도 비상

◀ANC▶

미국에선 남부지방을 강타한 한파로 생태계에까지 전례 없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유럽도 폭설로 정전과 대규모 휴교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봉기 기자입니다.

◀VCR▶

플로리다의 한 숲.

이구아나가 그야말로 얼어붙어
쓰러져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갑자기 동면상태에 빠져 나무에서 떨어진 겁니다.

바닷가에는 얼어 죽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펠리컨들만 죽은 고기를 먹으며 신이 났습니다.

플로리다 인근 해역에선 만여 마리의 물고기가 한파로 죽었습니다.

◀SYN▶ 애런 아담스/어류학자
"이러다간 몇 년 뒤에는 알을 낳아 번식할 암컷 물고기가 모자라게 될 겁니다."

목축업도 위기상황에 몰려 텍사스에선 농장주들이 양들에게 옷을 입히며
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북극에서 시작된 찬 공기의 위력은 이제는 바다를 건너 쿠바까지 도달해
최저 8도까지 수은주가 떨어졌습니다.

난방장치도 없는 쿠바의 도시에 털모자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SYN▶ 여행객
"쿠바가 이렇게 추우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정말 추워요."

유럽의 한파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의 강에선 쇄빙선까지 등장했고, 중장비를 동원한 제설작업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SYN▶ 율리아
"모스크바 시민이라고 모두 강추위에 견딜 수 있게 태어난 건 아닙니다.
시베리아주민들이라면 몰라도요. 특히 여성들은 고통스러워요."

폴란드에선 폭설로 인한 정전이 계속돼 7만 가구가 고통을 겪고 있고,
남부 스페인에서도 휴교령으로 16만 명이 등교하지 못했습니다.

냉해와 교통두절 등 경제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추위가 1주일만 더 지속되면 유럽 전체에서 21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영국의 한 경제단체는 전망했습니다.

MBC 뉴스 전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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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이구아나가 마치 사람마냥 대자로 뻗은 그림으로 시작한 이 리포트에 대해선 다른 동료들도 재미있었다는 호평과 함께 이젠 뉴스를 동물농장으로 만드냐는 비아냥도 함께 들어야 했습니다. 뭐 저로선 환경문제도 중요하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뉴스를 'VJ특공대'처럼 만들어버린 책임을 슬쩍 피했죠. 그리고 이젠 정말 이런 주제로까지 만들면 더는 한파제작을 안 시킬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이젠 정말 당신 세계 한파 제작의 달인이야, 벌써 몇주째인데 매번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오잖아. 시간에 구애되지 말고 또 만들어" 라는 윗분들의 주문을 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하여 이젠 소제목 달 것도 없고 결국 방송뉴스 본연의 길에 충실한 제작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바로 '스펙타클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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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뉴스데스크>

북반구 혹한·남반구 폭염‥지구촌이 몸살

◀ANC▶

올겨울 북반구에선 한파가, 남반구에선 이상 폭염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결과적으로 한파 때문에, 땅이 꺼져내리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전봉기 기자입니다.

◀VCR▶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거대한 분화구가
나무와 집을 집어삼켰습니다.

플로리다의 한 이동식 주택 주거지에서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깊이가 무려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이 생겼습니다.

한파 때문에 인근 오렌지농장들이 따뜻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농작물에 뿌린 탓에
땅속에 구멍이 생겨 무너진 겁니다.

중부 미시시피에서도 도로 곳곳이 지진이 난듯 갈라지고 물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에 잭슨시에서만 수도관 70곳이 동파돼
물 공급이 끊겼고, 시장은 주정부에 비상사태 선포를 요청했습니다.

◀SYN▶ 하비 존슨/잭슨시 시장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 고치는 수도관보다 터져나가는 수도관이 더 많습니다."

그동안 한파가 비켜갔던 일본도 어젯밤부터 폭설과 강풍이 몰아쳐
니이가타에선 대형 태풍과 맞먹는 초속 40미터의 강풍으로 3만 가구가 정전됐습니다.

북부의 호쿠리쿠와 나가노 등에는 최대 80센티미터의 눈이 예상되고 있고,
눈이 귀한 큐슈에도 20년 만에 최대 적설량을 기록했습니다.

북반부와는 반대로 지구 반대편 호주에선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한밤중이지만 온도계는 37도를 가리키고, 갓난아기는 더워서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옷을 벗고 밤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SYN▶ 멜버른 시민
"이런 더운 날씨에 숨 막히는 아파트에서 잠자기는 거의 불가능하죠."

미국과 유럽은 주말부턴 기온이 오르면서 한파가 누그러질 것으로 보이지만
지구촌의 기상이변상황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습니다.

MBC 뉴스 전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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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때문에 땅이 꺼져버린 기현상이 발생했다는 통신기사를 접하고 나서 그 그림을 찾기위해 미국 로컬티비방송사의 사이트와 유튜브까지 뒤졌습니다. 결국 분화구같은 스펙타클한 영상을 앞머리에 내세우고 다시금 종합방식의 기사를 만들었죠.

참 저로서도 이렇게까지 '한파'라는 주제를 갖고 이렇게 무수한 변주곡을 만들어내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 다음날부터 한파에선 해방됐습니다. 그러나 그건 한파보다 휠씬 더 큰 자연재재때문이었고, 한파에서 이골 나버린 '동일 주제 변주'기법을 또 한번 인정사정없이 발휘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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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0 14:42 2010/01/2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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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야생토끼

camera obscura 2010/01/03 01:13 주인장
오늘 또 눈이 왔습니다. 지난번과는 달리 날씨도 따뜻해져서 야외에서 기분을 낼 수 있었던 눈다운 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남산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반가운 녀석을 만났습니다.

바로 이녀석, 색깔이 하애서 처음엔 몰라볼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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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몸에 귀와 눈이 검은 특이하면서도 잘 생긴 녀석이었습니다. 가을에도 봤던 녀석같기도 하고 그 녀석의 아들같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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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들네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제법 토끼가 얌전히 바라봐 주기까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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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이 끝나자 뭐가 바쁜지 토끼는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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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다. 먹어야 살죠. 겨울이라 이파리 대신 가지를 먹으며 힘을 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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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뛰는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올 겨울을 잘 나고 봄에 또 자주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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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3 01:13 2010/01/0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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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에서 보내준 포스터

Diary 2009/12/19 19:30 주인장
얼마전 CNN의 서비스부서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자기네 홍보포스터를 만든게 있는데 관심이 있으면 보내주겠다는 거였죠. 대충 관심이 있으니 보내달라고 답을 넣었는데 바로 배달돼 왔습니다.  요새 CNN이 가맹방송사에 대해 상당히 친절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해외취재시엔 자사의 지국인력을 이용해 지원을 해 주겠다는 것부터 작게는 각종 기념품을 자주 보내주고 있죠. 불경기때문인지 최근 시청률하락때문인지 둘다 때문인지는 모르겟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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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종류였습니다. 하나하나 보면 다음과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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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의 캐치프레이즈를 이용한 포스터로 가장 무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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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극복하자는 CNN의 일종의 연중기획프로그램인 'Road to Recovery'를 홍보하는 포스텁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좀 강렬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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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티 아만포가 맡은 대담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포스텁니다.  아만포는 이란태생으로 중동은 물론이고 동구권과 아프리카 등등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비며 현장리포트를 해 유명해진 기잡니다. 뿐만아니라 워싱턴 정가취재도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저널리스트죠. 사실 대담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은 그다지 참신하지도 않고 그녀의 강점이 묻어나진 않아서 아쉬운 점도 있죠.
 
그런데 이 포스트의 중앙엔 그녀의 언론관을 담은 문장 하나가 인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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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jectivity doesn't mean treating all sides equally.
  
   It means giving each side hearing"

이미 여러차례 제가 지적한 바 있는 내용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당시 방송보도에 대해서건 지난해 광우병사태때의 보도에 대해서건 해당되는 내용이죠. 언제나 편파를 지적하며 동등시간 배분을 외치는 사람들은 실은 항상 '편파'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 '편파'를 감추기 위해 객관성의 신화를 들고 나오고 대중은 양편을 똑같이 다룬다는 '평등'감이 주는 편안함에 현혹되죠.
  아만포는 치열한 갈등의 현장을 누구보다 많이 누빈 사람으로서 직관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가장 중요한 진리를 골라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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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9 19:30 2009/12/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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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도 한번 폭스뉴스의 문제를 말한 적이 있지만 오늘 또 흥미를 끄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320755

요약하자면 폭스뉴스가 전 공화당 부통령후보 페일린을 띄우기 위해 왜곡편집을 한 것인데요. 자서전출판회에 엄청난 지지인파가 몰렸다고 보도한 화면은 사실은 지난 대선때 유세현장 그림이었다는 겁니다. 참 어이없는 일인데 폭스의 이런 편집은 처음이 아니어서 오바마에 항의하는 시위를 보도하면서 그전에 있었던 다른 집회그림을 짜집기 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이 기사외에도 제가 아는 사항도 몇개 있는데 왜곡편집과는 좀 다른 것으로 보수단체 집회를 취재하던 폭스뉴스 피디가 군중들에게 건보개혁과 오바마 대통령을 반대하는 구호를 더 크게 외치라고 손을 흔들어 지시하면서 '바람'잡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또 놀라운 건 이런 왜곡편집이 일어나도 FCC가 나서서 사과명령 내리거나 하는 일은 미국에선 없습니다. 시민단체나 다른 경쟁사의 문제제기 같은 자율정화로 해결하죠. 물론 우리나라도 보수신문의 왜곡편집의 경우엔 이렇게 '자율정화'만 가능합니다. 단 그 반대편의 언론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자율정화가 아니라 방통위와 검찰, 경찰이 칼을 들고 경쟁적으로 달려들겠죠.

미국의 이상한 현실이 내년에는 바로 우리의 일이 될 것이란 점에서 이런 기사는 좀 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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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1 11:53 2009/11/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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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ama in my town

Diary 2009/11/20 00:26 주인장
집앞이 하앗트 호텔이다 보니 자주 외국정상들이 옵니다. 며칠전에도 페루대통령이 있다갔는데 골목너머 호텔주차장에 경찰 사이드카 2대가 서있는 걸 보고 알 수 있었죠. 사실 이렇게 우연히 조금 특별한 경찰의 모습을 보지 않는한 보통은 어느나라 대통령이 왔다 갔는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확실히 다른 존재였습니다.

그제부터 경찰들이 많아진다 싶더니 어제는 전경버스가 호텔 담벼락은 물론 남산순환도로 수백미터를 점령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우리집 대문앞에 전경 일개 분대가 방패를 들고 서 있더군요. 그들을 헤치고 골목입구로 가니 수십명의 전경소대병력이 진치고 있었고, 그리고 호텔담벼락을 따라선 경찰의 인의 장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출근을 하려고 나가던 저는 2번이나 검문을 당했고 그나마 오바마 행렬이 곧 지난다며 아예 호텔 정문쪽으로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로선 버스를 타려면 그쪽으로 가야햇는데 말이죠. 그런데 사실은 버스도 아예 막혀서 앞선 정류장에서 회차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해안되는 건 경찰도 아닌 정체불명의 노인들이었죠. 60대 정도의 노인들 수십명이 봉하나씩을 들고 나타났는데 주민들 말을 들어보니 어제부터 주민들의 차를 빼라 마라 윽박지르고 교통정리를 한다고 난리를 쳤다고 하더군요. 정체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흔히 말하는 '보수'단체쪽이 아닌가 싶은데, 오바마가 그 양반들이 생각하는 그런 보수주의에 맞는 인물인지는 저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반면 주민들로선 정말 불편한 하루였지만 그나마 덕본 사람들도 있으니 동네 수퍼와 식당들은 경찰 수천명이 올려준 매상으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

그나저나 작년 쇠고기 졸속협상으로 난리가 났을 때 정부쪽에선 쇠고기협상결과로 미의회의 한미 FTA 비준 가능성은 많아진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논리도 많았는데요. 오늘 이명박 대통령께서 '자동차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며 재협상의지를 밝힌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감이 안 옵니다.  
결국  '자동차재협상'기사들이 쏟아지자 통상교섭본부장이 나와서 재협상하자는 건 아니고 그건 '오해였다'고 또한번의 '오해'레퍼토리를 늘어놨습니다.

  이번 정부를 대표하는 공식적 멘트는 아마도  '그건 오해다!'라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하나 재밌는 건 의장대 사열을 받은 오바마대통령의 말에 대한 우리 대통령님의 조크였습니다.
오바마가 의장대가운데 조선시대 군인 복장을 한 사람들의 의상이 인상적이라고 하자 우리 대통령은 바로 '그러나 싸우기는 불편한 옷'이라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결국 우리의 전통의상 의상대는 단지 보여주기 위한 쑈에 가깝다는 건 우리 대통령이 자인한 건데. 굳이 그렇게 말해야 했는지...

아무튼 이외에도 몇개 더 생각해 봐야 할 말들이 많았습니다. 3년전쯤 같았으면 벌써 보수신문들이 들고 일어나 대통령의 망언이라고 규탄했을 텐데 올해는 역시 문제제기하는 곳이 한 곳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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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0 00:26 2009/11/2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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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의 추억-3

Record of travel 2009/11/13 00:23 주인장
좀 늦은 업데이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쓰나미 취재의 가장 중요한 얘기들은 아직 시작도 못했습니다.

할얘기는 많은 출장이었지만 사진은 한 장도 없습니다. 집에도 못가고 회사에서 바로 출발하느라 카메라를 못 챙겨서이기도 하지만 챙겨갔다고 해도 무엇을 찍을 수 있었을지 그리고 공개할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뒤부터의 얘기는 다소 거북스럽게 느껴질 수 있으니 감수성이 예민하신 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무방하겠습니다.

푸켓에 도착한지 사흘째 되는날부턴 저는 화상전화 엔지니어에서 취재기자로 돌아가 피해현장으로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 첫날 간곳은 '카오락'이라고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그 당시 새로 개발되기 시작했던 푸켓 인근의 리조트단지였습니다. 전에도 말했듯 피해가 집중된 곳이었죠. 그곳을 향해 출발한 봉고차, 위성송출시간에 대기위해선 도착해서 2시간 안에 취재를 마쳐야 해서 조금은 긴장하고 미리 상황파악을 위해 하루 일찍 온 동료와 선배기자에게 여러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현장으로 향하던 그 둘은 뭔가 단 하루만에 지친 표정을 지으며 건성건성으로 말했습니다. 무엇때문에 단 하루만에 지쳤을까? 궁금한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카오락, 차는 임시 시체안치소로 변한 절로 향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신수습현장을 스케치하고 사망자 통계를 취재하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한국인 사망자 발생여부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중요한 취재처는 바로 시체안치소였습니다.

그런데 차가 절앞에 멈추자 선배와 동기 기자 둘은 차안에서 나오려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어제 너는 안 했으니 봉기 너 혼자 들어가서 취재해라"라고 말했습니다.
뭐때문에 저러는지 저는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역시 절대 안 들어가려하던 카메라기자 - 저보다 후배였음 - 를 끌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저에게 닥쳐온 현장의 충격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냄새'였습니다. 한여름 노량진 수산시장의 쓰레기장에서 풍기던 그 냄새와 비슷한 그러나 강도가 10배는 세고 뭔가 기기묘묘한 음산함과 역거움이 동시에 제 몸을 감쌌습니다. 그 충격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몇번이고 흔들며 진정하자 그제서야 비닐포대에 싸인 4,5백 구쯤 되는 시신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숨진 사람들은 수천명 나중엔 5천명으로 확인됐죠. 그러다보니 병원의 냉동고는 이미 만원이 된 지 오래였고, 태국정부는 원래 태국의 전통대로 시신들을 절에 모았습니다. 그러나 절이란 곳은 원래 시신을 화장하는 곳이었지, 보관을 위한 시설은 없었습니다. 단지 마당에 비닐포대 깔고 '깔아놓았을 뿐'이었죠. 해서 그곳엔 동서양, 남녀노소의 시신들이 다 모였고, 그 각각은 천차만별의 부패상태를 보여주고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 나빴던 건 바닥의 흥건한 액체들. 그 정체를 알기에 안 밟으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결국 피할 길 없어서 밟아야 했고 그러면서 저와 카메라기자는 혹 있을 지 모르는 한국인 시신을 찾아 그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교민단체와 한국대사관에서 나온 이들과 함께였죠. 그러다 누군가가 여기를 보라고 외쳤고 가보니 비키니를 입은 한 동양여자의 시신이 있었습니다.

비닐포대위에 엎드려 있던 시신, 가스로 인해 부풀어있었지만 그래도 도저히 사람으로 안 보일 정도로 거대풍선처럼 부풀어있던 다른 시신에 비교하면 작은 체격의 동양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엎드린 상태라 얼굴을 볼 수 없어 확인이 어려운 상황.

해서 카메라기자와 저는 태국인 관리인들에게 시신을 뒤집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거의 기절할 듯 놀랐습니다. 그 여자의 얼굴이 움직였기 때문이죠. 하얀 얼굴이 물결치듯 움직였던 겁니다.

놀란 저는 다시 얼굴을 쳐다보고 그리고는 놀라움과 메쓰꺼움으로 몸서리를 쳐야 했습니다. 그 하얀물결은 바로 구더기떼였습니다. 얼굴전체를 하얀 구더기들이 촘촘하게 덮은채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눈, 코, 입 어느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구더기뿐이었습니다. 도저히 그 상태론 어느나라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우리는 다른 시체들을 보러 돌아다니다 대개 그 현장에서 스탠드업- 기자가 현장에서 상황을 설명하는 기사문을 읽으며 화자로서 나오는 것-을 했습니다. 마스크를 쓴채 하는 스탠드업이었는데 냄새때문에 나오는 헛구역질로 몇번을 다시해야 했습니다. 그날 리포트는 무사히 나갔지만 호텔로 돌아오자 저는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걸 느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장 그날밤, 겨우 4,5시간밖에 잘 수 없었던 상황에서 저는 그 잠마저도 설쳐야 했습니다. 꿈속에서 그 '구더기 얼굴'이 나왔으니까요. 그리고 그 다음날 꿈에도 구더기얼굴은 또 등장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 하얀물결 치던 얼굴은 아직도 제 뇌리에 남아 그날의 메스껍던 냄새와 함께 공감각적인 공포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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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00:23 2009/11/1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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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전 시험기억 -3번째

Being reporter 2009/10/25 19:54 주인장
언론사 시험에서 최종면접전 단계는 대개 합숙형태의 다면평가시험입니다.

 제가 시험봤던 2000년에는 합숙은 안 했지만 하루만에 거의 비슷한 분량의 시험을 봤습니다.HA(Human Resource)평가라는 건데 이 개념자체가 컨설팅사들이 만든거라 시험자체도좀 황당한 게 많았죠. 올해 우리 회사 시험에서도 짧지만 합숙이 있을 것 같더군요.

  아무튼 제가 봤던 2000년의 시험을 돌이켜보면 기자와 피디는 비슷한 틀의 다면평가가 있었습니다.  우선 기자 부문과 피디부문에서 공통적이었던 걸 보면 첫째와 둘째 시간에 '어린이 놀이터 설계와 그 설계안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각자 한 시간은 놀이터를 설계해 그 개념을 발표하고 그 다음엔 8명 정도로 구성한 한 조가 조원들의 설계도를 모아 하나의 설계를 도출해 내는 거였죠. 저는 푸코의 판옵티콘 개념에서 힌트를 얻어 놀이터의 어느 쪽 출구로도 나갈 수 있는 회전놀이기구가 가운데 있는 희안한 놀이터를 설계했죠. 우리 조에선 가장 특이한 설계였고 비교적 설명도 잘했는데... 사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짓이었습니다.

  나중에 인사부에 놀러갔다 우연히 채점기준표를 봤는데 1교시 설계는 기자들에겐 배점비중이 미미하더군요. 대신 2교시 토론시간의 태도를 평가하는 게 이 시험의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같은 시험을 친 피디부문은 설계가 대부분의 배점을 차지하고 토론은 거의 평가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그 토론 나름대로 처음엔 자신의 개념을 굳이 그대로 넣겠다는 몇몇 이들 때문에 시간이걸렸지만 각자 양보와 합의가 도출되며 시간내에 하나를 만들어냈죠. 나중에 보니 처음에 고집 피던 몇몇은 다음 최종면접에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내에 합의안이 안 나오면 그 조 모두가 감점이었죠.

  3번째 시간은 아주 골때린 '영희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시간...
 
  영희가 여행을 떠났다는 말을 시작으로 각 조별로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1분씩 다음말을 만드는 일종의 공동소설 창작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정말 각자의 개성이 나오더군요. 우리 조의 영희도 프랑스, 미국에도 유람을 가는가 하면 북한까지, 심지어 우주까지도 가야 했습니다. 특히나 어떤 이들은 다음 순번 사람이 말을 제대로 못 잇게 아주 엉뚱한 곳에 엉뚱한 상황으로 영희를 보내서 넘겨 버리더군요. 아무도 모르는 프랑스 파리의 어느 뒷골목 이상한 술집에서 전혀 알 수 없는 음식을 시켜는 상황에서 넘기기도 하고, 통일의 중요한 임무를 띠고 김정일을 만나는 상황에 갖다놓고 넘기기도 하고... 역시 채점기준상 이런 사람은 감점대상이었습니다. 여기선 창의성도 중요했지만 기자의 경우 논리성이 더 배점이 높았습니다. 물론 피디는 그 반대였고요. 저의 경우엔 남들이 외국에 보낸 영희를 계속 귀국시켜서 약간 사회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상황주기 시험.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게되는 몇가지 상황을 주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지 써내라고 했죠.

  한 문제는 '당신이 마포라인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 라인의 연세대에서 중요한 행사를 하게 돼 취재를 하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브란스 병원에 조폭으로 보이는 환자가 칼에 찔려 들어왔고, 동시에 은평구 주택가에 사상자 미상의 화재가 일어났다면 당신은 어찌하겠는가?'하는 문제였습니다.

   사안의 경중도 그렇지만 동시다발적인 이 사건들을 어떻게 커버하겠느냐를 묻는 시험이었죠.  기억은 안 나지만, 행사는 주최측에 부탁해 시작시간을 늦춰달라고 하고 조폭은 경찰을 통해 우선 상황을 파악한 뒤 그 사람이 도망갈 상황이 아니면 화재부터 취재한다는 식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어느 것 하나 버리지는 않돼 급한 것부터 한다는 식이었죠.

  그런데 제 동기가 된 한 녀석의 가장 기발했던 답은 한 줄의 다음과 같은 답이었습니다. "캡에게 보고해서 캡이 시키는 대로 한다." 

어이없는 답이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답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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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5 19:54 2009/10/2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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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의 추억-2

Record of travel 2009/10/24 00:12 주인장

좀 늦은 업데이트입니다.

골치아픈 위성전화기 세트를 끌고 푸켓 공항에 내린 저는 그래도 먼저 온 팀들이 보내준 차량을 타고 우리 팀이 자리잡은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푸켓수준으로 그다지 좋지않은 호텔이었지만 그래도 쓰나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뜨거운 태양아래 푸른 바다가 보이더군요.

당시 푸켓지역의 쓰나미 피해를 좀 설명해보면 제주도만한 섬인 푸켓섬과 그 주변에서 크게 4개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한 곳은 푸켓의 중심지인 빠통비치였는데 이곳의 피해는 크지 않아서 해변의 상가들이 부서지긴 했지만 인명피해는 수백단위가 안되었습니다.

반면 푸켓의 인근의 신흥 휴양지로 푸켓 중심지와는 2,3시간 거리인 크라비와 카오락 2개지역은 큰 피해를 입어 각각 수천명이 숨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켓섬에 붙은 또 하나의 섬인 피피섬도 큰 피해를 입어 섬 전체가 거의 초토화된 상황이었습니다.

취재진의 베이스캠프는 호텔들이 많은 빠통비치로 그곳의 메리엇트 호텔에 임시 위성송출센터가 마련됐고 세계 각국의 취재진 인근 호텔에 자리를 잡고 취재를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도착하자마자 그날 저녁뉴스부터 시작할 화상연결을 위해 위성전화기를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호텔 마당에다가 장비를 늘어놓은 뒤 우선 태국상공 어딘가에 떠있는 타이콤3 위성을 향해 나름 계산한 각도로 평면안테나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 안테나의 케이블을 대형 노트북처럼 생긴 본체에 연결하고 그 본체는 또 호텔 식당에서부터 끌어온 전원에 연결했죠. 또 오디오 콘솔에 마이크를 연결했습니다. 그리고는 영어로 된 매뉴얼을 보며 본체의 키보드를 두드려가며 세팅을 했습니다.
 
그러나... 잘 안되더군요. 1시간 가량 낑낑대서 연결해 서울의 본사와 화상은 연결됐으나 아무리 마이크로 외쳐도 소리는 전달이 안되는 거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뜨거운 태국의 태양아래 제 얼굴은 익어버렸고, 그리고 그 화상도 품질이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뭐 사실 가져올때도 회사의 기술자들이 여러명이 달라붙어 2,3시간 만지작 거린 끝에 제게 넘겼으니 잘 될리가 없었죠.  그렇게 고생하는 사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동료들은 까맣게 탄 제 얼굴과 위성전화기를 보더니 "집어치고 우리 일이나 도와"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회사에선 오늘도 다시 화상전화 연결을 해보라고 닥달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시작했는데 이번엔 무려 4시간 동안 고생한 끝에 소리가 연결이 됐습니다. 안 된 이유는 오디오 콘솔의 셋팅이 제대로 안돼 있었기 때문이었죠. 오디오 콘솔이란건 만져본 적도 없는 저로선 당연히 안 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는데  출발할 때 콘솔 조작법은 당연히 배우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무튼 연결이 되자 서울에선 바로 화상연결 생방송을 준비하라고 했죠. 그래서 하루전에 온 기자 2명(저보다 3기수 위 선배 1명과 동기 1명) 가운데 동기였던 박모기자가 생방송 타자가 됐고 저는 엔지니어로 방송을 뒷받침했습니다. 9시 뉴스데스크에 맞춰 연결을 하게 됐는데 시차때문에 푸켓은 8시가 한국의 9시였습니다. 화상연결의 배경을 호텔로 할 수는 없어서 호텔마당에서 해변쪽을 보이게 세팅을 했죠. 그러나 밤인지라 어두운 건 어쩔 수 없었고 카메라 조명으로 생방송 담당 기자만 보이게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데스크는 조명을 구해서 뒤에 해변도 보이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등하나 없는 광활한 해변을 보이게 하라니... 카메라 기자는 황당해하며 드라마 촬영 때 쓰는 조명트럭 10대는 필요하다고 드러누웠죠. 현지 상황을 전혀 모르는 데스크의 무모한 지시였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지시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쨌든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구한건 마침 파티준비를 위해 호텔식당에 있던 조명등과 크리마스 트리용 전구들이었습니다. 그 등과 전구를 역시 호텔에서 빌린 옷걸이에 걸어서 임시 조명세트를 만들어 설치했죠. 뭐 그래봤자 뒤에 모래사장이나 조금 보이는 정도였지만요...

어쨌든 고생끝에 시작된 생방송. 서울에선 큰 기대를 한 화상 연결이었지만 화상전화기로 연결된 동기기자 박모씨의 얼굴은 물에 불은 감자마냥 흐리멍텅하게 나왔죠. 뭐 그래도 방송자체는 긴박감있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해변 답게 갑자기 광풍이 불더니 박기자의 원고가 바람에 날아가려했습니다. 저는 번개같이 옆으로 돌아 화상전화기의 카메라에 안보이는 화각밖으로 '기어가서'는 팔만 내밀어서 원고를 잡아줬습니다. 기자가 취재는 안하고 참 별 짓 다한 하루의 마지막 마무리였던 셈입니다.

생방송은 사고없이 잘 마무리 됐습니다. 그러나 다음달 편집회의에선 '물에 불은 감자얼굴'얘기가 나오며 그런 화질 밖에 안되는 장비를 왜 가져갔냐는 말이 나왔죠. 그럴 걸 왜 그 고생시키며 가져가게 했는지......

결국 그 화상전화기는 그날이후 다시 사용되지 않았고 저는 바로 취재인력으로 전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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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4 00:12 2009/10/2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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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전 시험기억 2번째

Being reporter 2009/10/12 23:54 주인장
 지난 번에 논작문까지 얘기 했지요. 사실 논작문시험이 있는 날 또하나의 시험이 있습니다.
실무면접과 기자들의 경우엔 카메라테스트가 더해 지지요. 실무면접이야 차장급기자나 피디가 하는데 그냥 면접과 비슷합니다. 시사적인 질문 몇개와 '네가 들어와서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어떻게 할래'류의 조직문화에 관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다음으로  카메라 테스트는 자신이 작성한 기사 혹은 문장 세개 정도로 이루어진 방송용 단신기사를 카메라 앞에서 낭독하는 겁니다. 요즘 수험생들이야 의미나 발음상 편의를 위한 띄어읽기의 요령 정도는 알 것이라고 보고요. 한가지 중요한 것은 낭독전에 녹화를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 오는 ENG 카메라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는 겁니다. 낭독하는 도중에 눈이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특히나 티비화면으로 볼 때는 특히 더 합니다. 쉬는 부분에서 다음 읽을 부분을 눈으로 본뒤엔 다시 처음처럼 카메라렌즈를 응시하며 읽어주어야 합니다. 처음엔 카메라쪽을 봤다가 한번 쉬고나서는 면접관을 보고 그다음엔 또 딴데를 보거나 하든지, 카메라찾느라고 두리번 거리면 안 됩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읽는 것이 중요하죠. 가끔 사투리기가 있는 친구들도 붙는 걸 보면 역시 기자에겐 발음의 정확도보다는 떨지 않는 배포와 냉정함이 더 중요한 채점 척도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상식시험에 관해 조금 더 얘기해 볼까요. 2003년 당시 제가 속해있던 스포츠취재부에서도 두명의 기자가 상식시험을 출제했습니다. . 대학때 전공을 고려해 출제위원이 선정되고 한 10문제 정도 인사부에 보내면 인사부에서 다시 일부를 취사선택해 최종문제를 만듭니다. 우리 사무실에선 철학전공한 한 선배가 철학을 한 명이 스포츠분야를 맡았지요.

  이들은 어떻게 출제했을까요. 그 많이 본다는 스파책 사다가 뒤져서 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철학전공 선배는 자신이 공부했던 주요철학자의 핵심주장과 대표서, 논리학 등을 문제화했죠. 물론 철학개론정도 들었으면 10문제 중 8문제 정도는 풀 수 있는 난이도로...   제가 모르모트가 돼서 한번 풀어 봤는데, 정말 2문제정도 틀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포츠는 그해의 스포츠이벤트와 기록들을 중심으로 출제했지요. 사실 그바람에 스포츠가 차라리 가장 시사상식에 가까웠고 아주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다른 인문, 사회, 자연, 언어분야의 문제는 앞의 철학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럼 대충 어떻게 공부해야 될지 조금 감이 잡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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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2 23:54 2009/10/1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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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의 추억-1

Record of travel 2009/10/12 07:35 주인장

  얼마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강진이 있었습니다. 국제부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선 오랜만에 일거리하나 터진 셈이었는데, 그래도 현장에 가는게 아니라 전화취재를 하고 외신 그림 정리하고, 현장에 간 특파원의 취재를 지원하는 일이라 힘들었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겐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 바로 이 지진과 쓰나미 뉴스들입니다.

  처음엔 미국령 사모아에 강진에 이어 쓰나미가 덮쳤죠.  우리 교민 피해가 있어서 안타까왔지만 인구밀집지대는 아니었던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인도네시아에도 강진이 났습니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두려움이 앞서더군요. 바로 2004년말 동남아시아를 덥쳤던 쓰나미의 기억때문이었습니다.
 
  2004년 크리스마스때 인도양에서 발생했던 강진과 그에 이어서 동남아로 번져간 쓰나미.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태국, 몰디브 등에서 무려 24만명이 숨졌습니다. 당시 2004년 12월 24일 처음엔 로이터 등 외신의 1보는 쓰나미로 수십명 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2보 3보 갈수록 사망자 숫자가 몇백, 몇천 단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당시 야근하던 기자들은 여행사 등을 취재하기 시작해 결국 우리 여행객들의 피해까지 확인하게 됐죠.

  하여 크리스마스 당일 우리회사에선 기자들 몇명이 특별취재팀으로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로 파견됐습니다. 당시 제가 속해있던 기획취재부에서도 2명정도가 갔죠. 저는 그것을 피했다며 속으론 안도했는데...

  바로 다음날 26일 편집회의를 마치고 나온 부장이 제게 그러더군요. 너도 가야한다고, 그것도 지금 당장!.

  우리 여행객 피해가 난 태국 푸켓의 보도가 급한데 현지에서 간이로나마 생방송을 할 위성 화상전화기를 취재단이 안 챙겨갔다며, 그래서 제가 가지고 가서 현지에서 설치해서 방송하는 엔지니어 역할을 하라는 거였습니다. 결국 부랴부랴 여행사에 전화해서 표를 부탁하고 바로 집에 전화해선 와이프보고 '집에 갈 시간 없으니 바로 여행짐 챙겨서 회사로 오라'고 전했죠. 그리고 나선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그 화상전화기 설치를 연습했습니다.
  회사 기술팀에서 옥상으로 올라오라고 할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그놈의 화상전화기라는 놈을 펼쳐놓고 기술팀 사람들이 씨름하고 있더군요. 대형노트북 같은 본체에 펼치면 꽤나 커지는 평면 안테나 2개에 오디오콘솔, 그리고 각종 케이블 등 한 짐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술팀 사람들도 이 화상전화기를 몇달만에 창고에서 꺼내봤다며 그날 오후에 출발해야해 바쁜 저를 2시간 가량 세워놓고 계속 조작만 했습니다. 결국 2시간만에 화상전화기에 화면이 떴고 그걸 보더니 이제 됐다며 자기들이 한 대로 하면 된다며 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불안하기만 했지만 어쨌든 저는 이민가방 2개만한 크기였던 화상전화기 세트를 끌고 태국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일단 도착한 방콕 공항, 심야에 도착한 저는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해 푸켓행 비행기를 티켓팅할 때까지 아침까지 무려 8시간 가량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졸린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덩치 큰 화상전화기!
화상전화기 가방를 밀고 다니며 기다리다 몇 시간이 지나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죠. 그런데, 이 전화기 가방이 화장실 입구보다도 더 컸습니다. 다른 여행객들은 가방을 밀며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저는 이 비싼 장비를 밖에 두고 갈 순 없었죠. 그때부터 물도 안 먹고 참고 참으며 몇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7시간째 티켓팅 시간이 1시간 쯤 남았을 무렵 낯익은 얼굴 하나가 지나가더군요. 얼마전 관악경찰서 기자실에서 인사했던 CBS기자가 지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당장에 그 기자를 불러 화상전화기를 보고 있으라고 말하곤 장장 7시간 만에 생리현상을 해결했습니다.
  
  참 황당한 고생이었지만 사실 그 재해의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에 비하면 사소한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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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2 07:35 2009/10/1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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