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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방패에 관한 '아픈' 추억

Diary 2009/06/13 09:22 주인장
  6.10 기념집회에서 벌어진 경찰의 과잉진압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처음엔 일에 바빠서 뉴스에 보도된 영상을 보지 못하고 기사만 보고선 '뭐 매번 있는 일 아닌가'하면서 그렇게 큰 감흥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맞은 사람들의 조금 호들갑도 있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죠.

근데 그 영상을 보니 좀 심하더군요. 공권력이란건 원래 시민들의 폭력을 어느정도 용인되는 선까지는 받아주고 참아야 되는 건데 - 시민들이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세금내서 월급주고 보호장구 사주는 거니까요...- 사인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처럼 마구 때리더군요. 경찰의 변명으론 자신들의 간부가 시민들에게 둘러싸여서 보호하려고 그랬다는데, 그것도 변명이 안 됩니다. 경찰과 시민들은 서로 동일하게 치고 받고 싸우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경찰이 조금 억울하다고 바로 시민때리면 그건 경찰이 아니고...뒷 골목의 사람들이 되는 거죠.

아무튼 그 날으는 방패에 강타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저는 자연스럽게 제 턱을 쓰다듬게 되더군요. 그리고 머릿속으론 자그마치 15년전의 아픔이 떠올랐고요...

때는 제가 대학3학년이던 1994년 바로 이맘때 종로에서 집회가 있었고 저는 자연스럽게 선후배들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자연스럽게'라는 말을 좀 설명해야 할 텐데 저는 사실 운동권이라고 할 정도로 진취적이고 의식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옳다고 생각되던 당시 학생사회의 주류 분위기에 맞춰서 '성실히' 대부분의 시위에 개근하면서 그러나 마지막까지 있진 않고 대개 시위 막바지쯤 빠져서 과외알바 하러가는 그런 학생이었죠.

어쨌건 그날 시위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산재처리 촉구를 위한 집회였는데  대략 2만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겨우' 1개 공장 노동자들의 산재처리를 요구하는 집회였는데 대학생이 2만명 넘게 모였습니다. 취직준비와 데이트에 여념에 없는 지금의 20대 대학생들이 보기엔 미친 놈들로 보이겠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뭐든 모였다하면 만 단위였죠. 8.15 범민족대회나 전대협(이후 한총련으로 바꿨죠.) 출범식은 10만명씩 모였구요.

그런데 노동자들이 주인인 집회라 집회 분위기는 좀 살벌했죠. 경찰도 대규모 병력이 포진했죠. 결국 시위대의 안전을 위해 사수대가 조직됐고, 재수없게도 3학년이라는 이유로 저도 거기에 들어갔습니다. 사수대라고 해봤자 별개 없었습니다. 파이프 든 사람들 생각하기 쉬운데 대부분의 집회는 사수대라고 해도 비 무장이었습니다. 단지 사수대의 역할은 맨 앞에서 전경들이 밀어붙일때 같이 밀고 때론 맞아주면서 뒤에 있는 본대 사람들이 구호외치고 피켓팅하고 전단지 뿌릴 시간 벌어주는 일이었죠.

그 역할 충실히 전경대 앞에 나갔던 저는 더 재수없게도 맨 일렬로 전경과 마주서고 말았습니다. 제 기억엔 지금 보수신문의 기자하고 있는 동기놈이 나를 앞으로 밀었던 것 같기도 한데 15년 전이라 확실친 않네요.

그러나 그러나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하는건 바로 그때 내 앞에 섰던 전경녀석의 눈입니다. 약간은 겁먹은 그러나 그보다 조금은 더 분노의 기운이 셌던 눈.

드디어 시위가 시작되고 구호소리와 함께 외침이 커져갈무렵 전경대에서도 명령이 떨어지더군요. 그순간...

내앞의 그 전경녀석은 군화발로 내 발을 무자비하게 밟았습니다. 그리고 밟은채로 온 몸무게를 싣더군요. 발이 아파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놈의 몸무게에 발을 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허둥대는데 머리위로 해가 가려지더군요.

바로 그 놈아의 전경방패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 뒤는 그저 별 몇개가 하늘에서 왔다갔다 했던 기억뿐입니다. 어떻게 그놈의 군화발에서 빠져나왔는지 기억도 안나고 어찌어찌해서 같은 과 친구들과 후배들이 모여있던 곳으로 오긴 했는데 턱과 이마에 감각이 하나도 없더군요.  입이 잘 안 다물어졌고 말도 잘 안 나왔습니다. - 사실 그 때부터 제 발음이 이상해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다행인건 눈이나 입에 맞진 않은 거였죠. 물론 안경은 다 휘어지긴 했지만요.

그 전경녀석은 지금쯤 뭐 하며 살고 있을까요. 아무도 그 놈도 애아빠도 돼 있긴 할텐데, 자신이 때려줬던 얼빵한 대학생을 기억은 할지, 너무 때린 얘들이 많아서 아마 기억도 못할 것 같긴 합니다. 또 요새 강경진압 뉴스를 보면서 그 놈은 어떤 생각을 할지 조금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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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3 09:22 2009/06/1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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