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3/15 주인장 무상급식논쟁을 보며
  2. 2009/07/24 주인장 부자들의 잔치와 서민들의 설거지

무상급식논쟁을 보며

분류없음 2010/03/15 17:15 주인장
무상급식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뜨겁지만 사실 저로선 전혀 논란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의료보험보다 오히려 보편성이 더 큰 국가적 책무라고 보는데 마침 이준구 교수님의 좋은 글을 읽고 옮겨왔습니다.

명확하게 정부의 지출행위라는 재정학적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특유의 꼬장꼬장함도 보이십니다. 예를 들어 '부자에게 도움을 주는 정책이 어떻게 좌파정책이고 그렇게 맘에 안들면 누구나 좌빨로 모냐'고 하시는 부분이나 '멀쩡한 강에 20조씩 퍼부으면서 얼마 안되는 무상급식비가 아깝냐'고 비판하시는 부분은 정말 강렬한 호통 같습니다.

비록 선생님의 강의에 도전했다가 중간고사보다 말고 나와서 수강취소한 엉터리 수강생이었지만 이런 분의 강의를 일부라도 들은 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언론정보학전공자에게 미시경제학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무상급식 논쟁을 보며 - 이준구

초등학교의 전면 무상급식 실시 문제가 다가올 지방선거의 중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전면 무상급식을 추진하려는 경기도 교육감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기도 의회
사이의 갈등을 통해 이미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상태다. 이 문제가 새삼스럽게 지방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정책대결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줄곧 침묵을 지켜왔다. 글을 써서 의견을 발표한 적이 없었
음은 물론, 강의실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말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우선 내 생각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와 관련된 논쟁에서 양측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
문에 무 자르듯 어느 편의 논리가 맞는다고 단언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에서 문제의 본질을 찬찬히 뜯어보기로 결심
했다. 재정학을 전공하고 있는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책임 회피
에 해당하는 일일지 모른다. 재정학은 정부의 경제적 행위에 대한 분석을 주요한 연구대상
으로 삼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재정학의 고유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재정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의당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관찰해 보면, 논점 그 자체의 설정이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
을 받는다. 양측 모두 초등학교생에 대한 무상급식을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데, 그것은 잘못된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무상급식이 사회복지와 관련을 갖는 것은 사
실이지만, 사회복지정책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 문제에 개입
해야 하는 당위성의 주요한 근거는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현대 정부는 다양한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국방
서비스나 경찰서비스 같은 공공재를 생산, 공급하는 일이다. 아무리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공공재와 관련한 정부 개입의 당위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
다. 공공재와 더불어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치재
(merit goods)라는 상품이다.
가치재와 공공재가 가끔 혼동되기도 하나 그 둘은 엄연하게 다른 개념이다. 가치재라는
것은 특정한 상품의 경우 모든 국민이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혜택이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부가 직접 생산, 공급하는 상품을 뜻한다. 의료, 주택, 교육서비스가 그
좋은 예로 공공재의 성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의무교육은 교육이 가치재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무료급식을 사회복지정책의 일종이라고 보면 부유층에게 무료급식의 혜택을 주는 것은 부
당한 일이다. 정부가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에게만 혜택을 제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기 때
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치재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순
간 결론은 180도 달라진다. 공공재나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 상품의 경우에는 무상 배분이
원칙이다. 따라서 부유층 자제에 대한 무상급식이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
게 된다.
초등학교 교육을 의무화한 것은 그것이 가치재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그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가 그 밑에 깔려 있다. 급식도 초등교육의 일부라고
할 수 있고, 그렇다면 그것이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모든 아동이 균형 잡힌 식단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 볼 때도 급식은
가치재의 성격을 분명하게 갖고 있다.
부유층의 자제가 초등학교 수업료를 내지 않는 데 대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교육
이 가치재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의무교육이란 제도를 만들었고,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제
공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부유층이든 서민층이든 정
말 공짜로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내는 세금으로 의무교육과 관
련된 비용이 충당되는 것이니만큼 공짜라고 말할 수 없다.
공공재나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 상품의 배분은 거의 모두 이와 같은 기본구도하에서 이루
어진다. 즉 소득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상으로 배분을 받는 대신 세금으로 그
비용을 충당하는 기본원칙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부유층이 급식에 대해 직접적 대가를 지불
하지 않더라도 그만큼 세금을 더 내면 형평성의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면
무료급식이 형평성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런 방안은 생각
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부, 여당 일각에서는 전면 무료급식을 ‘좌파포퓰리즘’으로 몰아가고 있다. 비록 적은 금
액이지만 부유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좌파로 모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 아닐 수 없
다. 진정한 좌파라면 부유층에게 한층 더 무거운 부담이 돌아가게 만들 방법을 궁리해야 마
땅한 일이 아닐까? 본질적으로 전면 무료급식의 실시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좌우의 이념대
립과는 무관한 문제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모두 ‘좌빨’로 모는 나쁜 버릇이 도져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다.
빈곤층의 자제에게만 무료급식의 혜택을 제한하면 그들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
는 그냥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티 없이 맑게 자라야 할 어린 아이들이 인생의 출발점부터
그런 정신적 부담을 안고 자라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부유층의 자제에게도 무상급식의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빈곤층의 자제가 그런 정신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에 드는
추가적 비용은 가치 있는 투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이 사업에 천문학적인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면 경우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상식적
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 것 같지 않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학생의 한 끼를
해결해 주는 데 무슨 비용이 그리 많이 들겠는가? 정부가 1년에 몇 백조 원이나 되는 돈을
쓰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에만 돈을 쓰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일례로 멀쩡히 흐르는 강을
보로 막아 물을 썩게 만들려고 2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고 있지 않은가?
전면 무료급식의 실시가 전반적인 정책 우선순위의 틀 안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
정하지는 않는다. 이것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사업이 있다면 정부의 예산이 그것에 우
선적으로 투입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렇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면 무료급식의 실시가
바람직한지의 여부가 논의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말도 되지 않는다는
둥 좌파포퓰리즘이라는 둥 비판을 위한 비판에만 골몰해서는 바람직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
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무료급식을 사회복지정책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
니다. 그것이 가치재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데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를 파악한 다음, 전반적인
정책 우선순위의 틀 안에서 그것의 실시 여부를 냉철하게 고려하는 게 올바른 길이다. 이런올바른 길을 걸어야만 진정으로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구태여 강조할 필요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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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 17:15 2010/03/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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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님의 홈피(www.jkl123.com)에서 퍼온 글입니다.

저도 학창시절 이 분의 미시경제학 강의를 들었죠. 정확히는 듣다가 다운(수강취소)해 버렸습니다. 중간고사를 보다가 문제들을 그야말로 어찌해보지 못하고 두 손을 들었죠. 지금도 조금 기억하는 문제 한 토막은 이런 거였죠.

'마추피추 공화국의 국민들은 알파로인 마약과 베타카인 마약을 사먹고 있다. 각 국민 개인은 두 마약을 3:2의 비율로 먹을 때 가장 큰 쾌락을 얻는다고 한다. 두 마약의 공급과 수요곡선은 아래와 같다. 국민들 모두가 최대의 쾌락을 얻을 때의 두 마약의 공급량과 가격을 계산하라...'

뭐 머리 속으로 '최대쾌락', '수요공급곡선', '예산' 등을 머리를 짜내다 당당하게 강의실을 나와서 과사무실로 가서 수강취소신청서에 싸인을 하고 말았죠...

그래도 가끔 생각나는건 틈만나면 관악산을 오른다는 선생님이 서울대가 저지르고 있는 자연파괴현장을 비판하신 것과 연비에는 전혀 신경안쓰고 충성스런 국내소비자에만 안주한 우리 자동차회사의 문제를 강조하신 대목들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론 시장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로서 보수적인 시각은 당시의 저로선 좀 맘에 안 드는 대목이었는데...

그 보수적이던 이준구선생님이 지금은 현 정권에 대한 비판자로 명성이 높아지셨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변한 건 절대 아니고 선생님의 보수성보다 사회가 더더 보수화 되었기 때문이죠. 선생님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읽을 만한 글들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를 퍼와서 올려봅니다. 이제 이런 글은 인터넷을 뒤져야만 볼 수 있습니다. 방송과 신문에선 절대 다루지 않으니까요. 물론 오늘 내일 하면서 겨우 신문찍어내고 있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예외지만요.
  애석하게도 제가 일하고 있는 MBC도 그전에도 그랬지만 이젠 이렇게 현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시각'이 담긴 기사는 보기 힘듭니다. 다음달부턴 보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해질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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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잔치 뒤 설거지를 왜 서민이?
       
 
경제학의 제1법칙이란 것이 있다면, 단연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것을 꼽을 수 있
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진리지만 실제로 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공짜라는 것이 존재하는 듯 착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착각은 여지없이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따져보면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 가
운데 이런 성격의 잘못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공짜가 있다는 착각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철저하게 합리성의 원칙을 따라야 할 정부도 때때로 그런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정부가 선심을 쓰듯 세금 깎아주고 쓸모없는 사업 벌이는 것이 그 좋
은 예다. 그와 같은 비합리적 행동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겨진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감세를 핵심적 정책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
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감세정책이 별 효과를 거두지도 못하면서 조세수입만 축내는 결과
를 가져올 것임을 지적해 왔다. 많은 전문가들이 나와 비슷한 우려를 표명했는데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감세정책을 밀어붙였다.
감세정책이 조세수입 감소라는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자명한 진
실이다. 하늘에서 몰래 정부의 곳간을 채워주는 것도 아닌데, 세금 깎아주면서 어떻게 곳간
이 더 채워지기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이렇다 할 대책 없이 감세정책을 밀
어붙였다는 것은 공짜가 존재한다는 착각을 했다는 뜻이다.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래퍼
곡선’(Laffer curve)의 신화를 맹신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금을 깎아주면 결국 더
걷힌다는 래퍼곡선의 신화는 이미 지적인 사기로 판명된 지 오래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면 무작정 감세정책을 밀어붙이지 않았을 것
이다. 깎아준 세금을 다른 데서 더 거둘 계획 정도는 마련해 놓고 감세정책을 추진해야 한
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지출을 줄이려는 계획이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조세수입을 종전의 수준에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점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감세정책을 밀어붙여 문제의 씨앗을 뿌렸다.
더군다나 정부의 돈 씀씀이는 그 어느 정부보다 훨씬 더 헤프니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경기부양을 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씀씀이가 너무나 헤
프다. 한 예로 도대체 뭐가 그리 급하다고 4대강 정비사업에 수십 조 원이나 되는 돈을 퍼
부으려 드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갑자기 서해 바다에서 엄청난 유전이 발견되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라도 한가는 말인가?
지속적으로 수입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는 가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구태여 말
할 필요조차 없다. 조세수입은 줄어드는데 마치 ‘조자룡이 헌 칼 쓰듯’ 지출을 늘리는 정부
의 앞날이 어떨 것인지도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추세대로 간다면 이 정부는 재임 중
재정운영의 건전성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떠났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이와 같은 평가를 피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을 발견한 정부는 세금 더 거둬들일 방법을 찾느라 야단법
석을 떨고 있다. 뒤늦게나마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단순한 귀결조차 예견하지 못했다면 정책담당자
로서의 자질을 의심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뒤늦게 부산을 떠는 모습이 시험 때가 다가오는
데도 태평스럽게 놀기만 하다가 당일치기 한다고 밤을 새우는 학생을 연상케 한다.
나는 또 한 가지 점에서 정부의 뒤늦은 야단법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요즈음
언론보도를 보면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조세수입 증가 방안이 대체로 중, 저소득층의 조세
부담을 늘리는 성격의 것들이다. 나는 애당초 정부의 감세정책이 ‘부자들의 잔치’로 끝날 것
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쿠오바디스 한국경제』에 실린 「사이비 이론
의 화려한 부활」 참조) 이 부자들의 잔치 뒤 설거지를 왜 중, 저소득층이 떠맡아야 하느냐
고 묻고 싶다.
애당초 내가 감세정책에 반대했던 이유는 결국 중, 소득층이 그 부담을 안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자들에게 베풀어진 감세 혜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로 충당될 리
없다. 누군가는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고, 그렇다면 그것은 중, 저소득층일 수밖에 없다. 그
렇지 않아도 양극화가 심해지는 판에 잘못된 조세정책으로 인해 불난 데 부채질을 해댄 격
이 되었다.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망각한 탓에 이런 불상사가 빚어진 것
이다.
만약 정부의 호언장담대로 감세정책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중, 저소득층
은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경제 활성화로 인해 받은 약간의 혜택과 더
무거워진 조세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모두가 다 알고 있듯, 감세
정책으로 인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제는 여전히 낙관 불허의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서민의 삶은 한층 더 팍팍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무거운 조세부담을 짊어지려고 할 리 없다.
이 세상에 세금을 깎아준다는데 싫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저런 개발사업으로
돈을 뿌려대면 주머니가 두둑해져 신나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 동안 정부는 이런 돈 잔치를
벌이느라고 부산을 떨어왔다. 그렇지만 즐거움은 잠깐이고 파티가 끝난 후의 숙취는 피할
방법이 없다. 곧 숙취가 닥칠 것을 예상한 정부가 서둘러 세금 더 거둘 방법을 찾느라 고심
하는 눈치지만 서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나는 세금을 더 거두려고 애를 쓰기 전에 쓸모없는 지출부터 줄이는 것이 순리라고 믿는
다. 정부는 그 동안 재정운영의 건전성을 해칠 정도로 방만하게 지출 프로그램을 확장해 왔
다. 몇 조 원 정도는 우습다고 생각될 정도로 확장 일변도의 재정기조를 유지해 온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만 하더라도 예산을 슬금슬금 얼마나 올려 왔는지 모른다. 이런 방만한 재정
기조를 그대로 둔 채 서민들의 조세부담만 늘리면 누가 이를 달갑게 받아들이겠는가?
만약 조세수입을 꼭 늘려야 할 상황이라면 서민들의 삶에 더 이상 주름이 가지 않도록 생
각하고 또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현 정부 들어온 후 이루어진 감세정책을 완전히
백지화하지 않는 한, 증세는 어차피 서민의 조세부담 증가를 뜻하게 된다. 그러나 최대한
머리를 짜내 서민들의 추가적인 조세부담이 가능한 한 작아지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다. 이
런 노력은 잘못된 감세정책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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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4 19:30 2009/07/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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