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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의 추억-3

Record of travel 2009/11/13 00:23 주인장
좀 늦은 업데이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쓰나미 취재의 가장 중요한 얘기들은 아직 시작도 못했습니다.

할얘기는 많은 출장이었지만 사진은 한 장도 없습니다. 집에도 못가고 회사에서 바로 출발하느라 카메라를 못 챙겨서이기도 하지만 챙겨갔다고 해도 무엇을 찍을 수 있었을지 그리고 공개할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뒤부터의 얘기는 다소 거북스럽게 느껴질 수 있으니 감수성이 예민하신 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무방하겠습니다.

푸켓에 도착한지 사흘째 되는날부턴 저는 화상전화 엔지니어에서 취재기자로 돌아가 피해현장으로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 첫날 간곳은 '카오락'이라고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그 당시 새로 개발되기 시작했던 푸켓 인근의 리조트단지였습니다. 전에도 말했듯 피해가 집중된 곳이었죠. 그곳을 향해 출발한 봉고차, 위성송출시간에 대기위해선 도착해서 2시간 안에 취재를 마쳐야 해서 조금은 긴장하고 미리 상황파악을 위해 하루 일찍 온 동료와 선배기자에게 여러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현장으로 향하던 그 둘은 뭔가 단 하루만에 지친 표정을 지으며 건성건성으로 말했습니다. 무엇때문에 단 하루만에 지쳤을까? 궁금한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카오락, 차는 임시 시체안치소로 변한 절로 향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신수습현장을 스케치하고 사망자 통계를 취재하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한국인 사망자 발생여부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중요한 취재처는 바로 시체안치소였습니다.

그런데 차가 절앞에 멈추자 선배와 동기 기자 둘은 차안에서 나오려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어제 너는 안 했으니 봉기 너 혼자 들어가서 취재해라"라고 말했습니다.
뭐때문에 저러는지 저는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역시 절대 안 들어가려하던 카메라기자 - 저보다 후배였음 - 를 끌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저에게 닥쳐온 현장의 충격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냄새'였습니다. 한여름 노량진 수산시장의 쓰레기장에서 풍기던 그 냄새와 비슷한 그러나 강도가 10배는 세고 뭔가 기기묘묘한 음산함과 역거움이 동시에 제 몸을 감쌌습니다. 그 충격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몇번이고 흔들며 진정하자 그제서야 비닐포대에 싸인 4,5백 구쯤 되는 시신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숨진 사람들은 수천명 나중엔 5천명으로 확인됐죠. 그러다보니 병원의 냉동고는 이미 만원이 된 지 오래였고, 태국정부는 원래 태국의 전통대로 시신들을 절에 모았습니다. 그러나 절이란 곳은 원래 시신을 화장하는 곳이었지, 보관을 위한 시설은 없었습니다. 단지 마당에 비닐포대 깔고 '깔아놓았을 뿐'이었죠. 해서 그곳엔 동서양, 남녀노소의 시신들이 다 모였고, 그 각각은 천차만별의 부패상태를 보여주고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 나빴던 건 바닥의 흥건한 액체들. 그 정체를 알기에 안 밟으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결국 피할 길 없어서 밟아야 했고 그러면서 저와 카메라기자는 혹 있을 지 모르는 한국인 시신을 찾아 그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교민단체와 한국대사관에서 나온 이들과 함께였죠. 그러다 누군가가 여기를 보라고 외쳤고 가보니 비키니를 입은 한 동양여자의 시신이 있었습니다.

비닐포대위에 엎드려 있던 시신, 가스로 인해 부풀어있었지만 그래도 도저히 사람으로 안 보일 정도로 거대풍선처럼 부풀어있던 다른 시신에 비교하면 작은 체격의 동양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엎드린 상태라 얼굴을 볼 수 없어 확인이 어려운 상황.

해서 카메라기자와 저는 태국인 관리인들에게 시신을 뒤집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거의 기절할 듯 놀랐습니다. 그 여자의 얼굴이 움직였기 때문이죠. 하얀 얼굴이 물결치듯 움직였던 겁니다.

놀란 저는 다시 얼굴을 쳐다보고 그리고는 놀라움과 메쓰꺼움으로 몸서리를 쳐야 했습니다. 그 하얀물결은 바로 구더기떼였습니다. 얼굴전체를 하얀 구더기들이 촘촘하게 덮은채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눈, 코, 입 어느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구더기뿐이었습니다. 도저히 그 상태론 어느나라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우리는 다른 시체들을 보러 돌아다니다 대개 그 현장에서 스탠드업- 기자가 현장에서 상황을 설명하는 기사문을 읽으며 화자로서 나오는 것-을 했습니다. 마스크를 쓴채 하는 스탠드업이었는데 냄새때문에 나오는 헛구역질로 몇번을 다시해야 했습니다. 그날 리포트는 무사히 나갔지만 호텔로 돌아오자 저는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걸 느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장 그날밤, 겨우 4,5시간밖에 잘 수 없었던 상황에서 저는 그 잠마저도 설쳐야 했습니다. 꿈속에서 그 '구더기 얼굴'이 나왔으니까요. 그리고 그 다음날 꿈에도 구더기얼굴은 또 등장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 하얀물결 치던 얼굴은 아직도 제 뇌리에 남아 그날의 메스껍던 냄새와 함께 공감각적인 공포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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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00:23 2009/11/1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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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의 추억-1

Record of travel 2009/10/12 07:35 주인장

  얼마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강진이 있었습니다. 국제부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선 오랜만에 일거리하나 터진 셈이었는데, 그래도 현장에 가는게 아니라 전화취재를 하고 외신 그림 정리하고, 현장에 간 특파원의 취재를 지원하는 일이라 힘들었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겐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 바로 이 지진과 쓰나미 뉴스들입니다.

  처음엔 미국령 사모아에 강진에 이어 쓰나미가 덮쳤죠.  우리 교민 피해가 있어서 안타까왔지만 인구밀집지대는 아니었던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인도네시아에도 강진이 났습니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두려움이 앞서더군요. 바로 2004년말 동남아시아를 덥쳤던 쓰나미의 기억때문이었습니다.
 
  2004년 크리스마스때 인도양에서 발생했던 강진과 그에 이어서 동남아로 번져간 쓰나미.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태국, 몰디브 등에서 무려 24만명이 숨졌습니다. 당시 2004년 12월 24일 처음엔 로이터 등 외신의 1보는 쓰나미로 수십명 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2보 3보 갈수록 사망자 숫자가 몇백, 몇천 단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당시 야근하던 기자들은 여행사 등을 취재하기 시작해 결국 우리 여행객들의 피해까지 확인하게 됐죠.

  하여 크리스마스 당일 우리회사에선 기자들 몇명이 특별취재팀으로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로 파견됐습니다. 당시 제가 속해있던 기획취재부에서도 2명정도가 갔죠. 저는 그것을 피했다며 속으론 안도했는데...

  바로 다음날 26일 편집회의를 마치고 나온 부장이 제게 그러더군요. 너도 가야한다고, 그것도 지금 당장!.

  우리 여행객 피해가 난 태국 푸켓의 보도가 급한데 현지에서 간이로나마 생방송을 할 위성 화상전화기를 취재단이 안 챙겨갔다며, 그래서 제가 가지고 가서 현지에서 설치해서 방송하는 엔지니어 역할을 하라는 거였습니다. 결국 부랴부랴 여행사에 전화해서 표를 부탁하고 바로 집에 전화해선 와이프보고 '집에 갈 시간 없으니 바로 여행짐 챙겨서 회사로 오라'고 전했죠. 그리고 나선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그 화상전화기 설치를 연습했습니다.
  회사 기술팀에서 옥상으로 올라오라고 할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그놈의 화상전화기라는 놈을 펼쳐놓고 기술팀 사람들이 씨름하고 있더군요. 대형노트북 같은 본체에 펼치면 꽤나 커지는 평면 안테나 2개에 오디오콘솔, 그리고 각종 케이블 등 한 짐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술팀 사람들도 이 화상전화기를 몇달만에 창고에서 꺼내봤다며 그날 오후에 출발해야해 바쁜 저를 2시간 가량 세워놓고 계속 조작만 했습니다. 결국 2시간만에 화상전화기에 화면이 떴고 그걸 보더니 이제 됐다며 자기들이 한 대로 하면 된다며 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불안하기만 했지만 어쨌든 저는 이민가방 2개만한 크기였던 화상전화기 세트를 끌고 태국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일단 도착한 방콕 공항, 심야에 도착한 저는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해 푸켓행 비행기를 티켓팅할 때까지 아침까지 무려 8시간 가량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졸린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덩치 큰 화상전화기!
화상전화기 가방를 밀고 다니며 기다리다 몇 시간이 지나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죠. 그런데, 이 전화기 가방이 화장실 입구보다도 더 컸습니다. 다른 여행객들은 가방을 밀며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저는 이 비싼 장비를 밖에 두고 갈 순 없었죠. 그때부터 물도 안 먹고 참고 참으며 몇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7시간째 티켓팅 시간이 1시간 쯤 남았을 무렵 낯익은 얼굴 하나가 지나가더군요. 얼마전 관악경찰서 기자실에서 인사했던 CBS기자가 지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당장에 그 기자를 불러 화상전화기를 보고 있으라고 말하곤 장장 7시간 만에 생리현상을 해결했습니다.
  
  참 황당한 고생이었지만 사실 그 재해의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에 비하면 사소한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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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2 07:35 2009/10/1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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