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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3 주인장 2006년 3월의 금강산 그리고 유모씨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북한에 억류된지 20일이 넘었습니다.

이유도 제대로 안 밝히고 구금하고 있는 북한, 그리고 이에 대해 별뾰족한 수 없이 골머리만 앓고 있는 우리 정부. 참 답답한 일이지만 이러다 점점 장기화되고 아예 잊혀지는 건 아닌지, 당사자의 가족은 아니지만 저도 참 관심이 갑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경우를 당할 뻔 했습니다. 정확히는 아니 그때는 그렇게 까진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단지 그때는 지금과는 여러모로 다른 '시기'였다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이죠.

2006년 3월 1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취재하러 공동취재단의 일원으로 금강산에 갔을 때였습니다. 상봉한 이산가족 중에 20여년전에 서해에서 고기잡이하다가 북한경비정에 납북됐던 어부가 남쪽의 어머니를 만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어부가족의 만남도 한 사례로 넣어서 기사를 썼죠. 원래 납북자가족의 만남은 기사가치가 있어서 꼭 쓰는 편이었고 그때 같이 온 다른 방송사기자들 모두가 다 기사화했습니다. 그리고 그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납북된 어부' 혹은 '납치됐던 어부' 등의 단어를 넣어서 기사를 완성하고 녹음을 해서 남쪽의 방송사로 기사녹음테입을 송출하기 위해 송출차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엔 북측의 관리 2명이 나와 있더군요. 그리고 송출기 앞에 둔 테입을 가져가더니 송출하기 전에 보겠다며 돌려봤습니다. 그리고는 그랬죠.

"납북, 납치라니 공화국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아요. 빨리 기사 고치시오!"

그리고 하필 제가 방송기자 대표로 항의하게 되면서 - 당시 KBS기자는 똑같은 표현을 썼지만 녹음을 늦게해서 현장에 없었고 같이 온 SBS, YTN기자는 저보다 연차가 낮아 제가 결국 총대를 맺죠. - 사흘간의 악몽은 시작됐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납북'이란 표현을 쓰진 않고 '20여년전 서해에서 고기잡이 나갔다 북측에 나포(영해를 침범하거나 위법을 저지른 배를 정지시키고 선원을 조사하는 것)됐던 어부...'라는 식으로 보다 중립적인 '나포'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그래서 더 억울한 거였죠.

어쨌든 저는 북측관리들에게 "당신들은 지금 검열을 하고 있는 것이고 더구나 데스크만이 고칠 수 있는 기사를 고치라는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기사와 방송은 남측으로 송출돼 남측에 방송되는 것이지 북측인민들이 보는게 아니다, 그런데 왜 북측의 법을 우리에게 강요하느냐'는 식으로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북측관리들의 입장은 확고했죠. 금강산은 북한땅이나 무조건 우리 법에 따라야 하고 공화국엔 납북이란 말은 없고 의거월북은 있다는 거였죠. 그렇게 언쟁을 하다 결국은 '당이 시키면 시킨대로 쓰는게 기자지 뭔데 시끄럽게 하느냐'는 식의 남측기자에겐 엄청난 모욕을 가했고 (물론 공산주의 언론관에 따르면 지극히 정상적인 말입니다만...) 서로 고성만 오가게 됐죠.

그리고 나서 다음날 저에겐 다음과 같은 통지가 날아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취재기간(3일)간 절대 방밖으로 나오지 말 것. 어기고 취재활동을 하면 공화국 법으로 처리하겠다."라는 거였습니다.

가장 무서운 말은 바로 이 '공화국법으로 처리한다'는 말입니다. 북한 형법은 범죄를 중대범죄와 일반범죄로 나누는데 우리 상식과는 달리 연쇄살인도 중대범죄가 아닌 일반 범죕니다. 중대범죄는 바로 제가 저지른(?) 것과 같이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지요. 중대범죄에 대한 처벌은 바로 가끔 뉴스로 나오는 것과 같은 뭐 무시무시한 것들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취재왔다가 내가 이산가족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지만 그래도 그 당시론 북측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느껴서 마지막날 상봉장에 취재를 나갔습니다. 물론 동료기자들이 옆에서 도와주기로 했고. 그리고 그날 저는 북측 참사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몸싸움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촬영돼서 그 뒤 몇번이나 방송을 탔습니다.

그러나 사실 북측도 이렇게 몸싸움을 하고 말만 심하게 했지, 실제로 '행동'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북측으로선 앞으로 있을 납북자문제에 대한 남측과의 대화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도였지, 괜히 불쌍한 기자를 억류하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죠. 그때는 남북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단지 얻을 것을 좀더 얻겠다는 협상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고 싸움에서 이기기위한 방법으로 '가끔' 대화를 하는 상황입니다.

돌이켜보면 금강산에서의 3일간 그래도 '조금' 무서웠고 그보다 많이는 억울했습니다. 지금 억류된 유모씨는 그때 저와는 비교도 안되게 힘든 처지입니다. 무엇보다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싸우기만 하는 남북사이에 낀 공이 되버렸다는 거 큰 차이죠.

유씨의 조속한 귀환을 바랍니다.


** 저는 그 금강산 사건뒤로 북한 취재를 금지당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금지한게 아니라 북측이 금지시킨 거였습니다. 입북신청을 넣기만 하면 '거절'당했죠. 외교용어로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되 버린 거였는데 결국 1년 8개월만에 풀렸습니다. 그 풀리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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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0:04 2009/04/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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