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첫날의 기억-3

Being reporter 2000/08/16 23:01 주인장
○ What the hell I'm doing here?

  그 전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수습기자시절 나의 일상은 보통 이

랬습니다. 새벽 3시 첫 순찰(원래 2시 30분이었는데 일주일 지나니

까 요령이 생겨서 조금 뒤로 갔죠.) - 5시 30분 일차보고 - 7시 2차

보고 - 아침 취재 - 10시 30분 신문 기사 마감 - 보통 기획기사류

의 오후취재 - 6시 회사복귀 - 12시 라인별 경찰서로 복귀.

  여기서 보면 회사에 복귀한 뒤 다시 경찰서로 돌아가기까지의 시

간이 많이 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일지쓰고 취재한

내용으로 습작기사를 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회식 또는 야간의 스

페샬프로그램이 마련된 경우가 많죠. 보통 3일을 주기로 하루는 그

냥 회사에서 기사쓰며 보낸다면, 그 다음날은 폭탄주가 한 다섯 잔

이상 씩 도는 회식이 있고 그리고 다음날은 특별취재거리가 떨어지

곤 했습니다.


  그 특별 취재들... 새벽시장 취재, 총선과 맞물려 한참 진행 중이던

시민단체 취재 등도 있었지만, 제가 가장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따

로 있습니다.

  2주 째로 접어든 첫날이었을 겁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정겹게 온

갖 욕들을 천연스레 하기로 소문난 관악서의 일진이 우리를 소집했

습니다.

  "너와 너는 영등포역 뒷골목, 너와 너는 청량리, 너, 너는 천호동,

그리고 너와 전봉기는 미아리‚"


  우리는 생각했다. 이 지명들의 공통점을... ? -> ! -> -_-.

  선배는 말했다.


  "그래 맞았다. 오늘 너희는 사창가로 취재를 나간다. 일차 인터뷰

대상은 그 곳의 아가씨들이다. 시간되고 돈되면 취재끝내고 자유행

동(?)도 무방하다. 단 개인경비로 충당토록. 이상.‚"


  기억하는 분도 있겠지만 당시는 종암서 김강자서장의 취임이후 매

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던 때였다. 마침 김서장 취임 한 달이 지

난 때라 달라진 윤락가의 모습„ 정도의 기사를 위한 취재로 우리가

투입 결정된 것이다. 하필 나는 가장 중요한 바로 그 미아리 텍사스

를 맡게 된 것이다. 중요한 곳이라 나 외에도 둘이 더 가게 되었다.

  비록 거기서 가까운 동네에 살고 바로 그 골목 건너편에 있는 S

고교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내게 그 곳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

미 TV등에서 여러 번 비춘 곳이었지만 내게는 참으로 새롭고 난감

한 취재대상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우선 그 골목 입구에 있는 월곡파출소부터

들러 그곳의 분위기 등에 대한 사전취재를 시작했다. 대충 취재를

마치고 나서는 우리에게 파출소장이 말했다.

"경관 몇 명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오. 됐습니다. 그러면 취재가 잘 안 되죠.‚

 하지만... 후회하실 걸요.‚"


  소장은 나서는 우리에게 의미 모를 웃음을 보냈다. 어쨌든 우리는

보부도 당당하게 그 골목으로 들었다. 그러자 아줌마들이 달려와 우

리를 이끌었다.

  어서 오세요. 우리 집 아가씨들이 예뻐요.‚ 아니오 우리집이...‚

  저희는 기잔데요...‚


  그러면서 우리는 이 아줌마들부터 인터뷰할 생각으로 취재수첩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아줌마들...


  진짜 기자잖아... 그래 너희들 잘 만났다. 니들 땜에 우리모두 굶

어죽게 생겼다. 이 놈들아...‚      


  그 이후의 기억은 내게는 마치 파노라마의 장면들처럼 떠오른다.

우리 셋은 앙칼지게 소리지르며 덤비는 아줌마들의 손과 깍두기머리

아저씨들의 주먹을 피해 그 골목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했다.

  김서장의 취임과 그에 이은 단속과 심지어 단전, 단수 그리고 혐

오시설 운운하는 기사와 TV의 고발성 보도에 그 곳 사람들의 언론

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그 판에 병아리 기자들이

나타났으니 정말 그들에게 찾고 있던 화풀이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에게는 그 아줌마 아저씨들 이상으로 일진선배

들이 무서웠다. 나와 동료들은 때리는 그 손과 주먹을 붙잡고 말했

다.


  "여러분들 심정 이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 이곳이 가지는

나름의 사회적 역할(?)과 여러분의 고충을 기사화하려는 겁니다.‚"


  대충 이런 식으로 달랬다. 아무튼 그 순간 내 머리속에 떠오른 것

은 이런 말이었다.

  "What the hell I'm doing here?'

  그런 끝에 그래도 좀 나이든 아줌마, 아저씨들을 대상으로 대충

인터뷰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그 곳에서 장사하면서 아이들을 모

두 대학보냈다는 한 아줌마의 포장마차에서 오뎅국물로 추운 몸을

덥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아가씨들의 인터뷰는 할 수가

없었다. 그 투명한 유리벽너머로는 절대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았던

것이고 우리는 단지 유리벽 너머의 그녀들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터덜터덜 그 골목을 나오는데 동료 한 명이 말했다.


  확실히 변하긴 변했어‚, 뭐가?‚

  물이 옛날같지 않아, 차라리 내 단골집이 있는 청량리가 휠씬 나

은 것 같아.‚,  -_-‚


 종암서의 골방으로 돌아와 나는 생각해 보았다. 저 사람들을 이

곳에서 싹 쓸어낸다면 문제가 끝인가? 어차피 수요는 있고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공급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혐오스럽고 무

엇이 깨끗한 것인가? 골치만 아프다. 맨날 이런 것만 취재해오라고

하지는 않겠지...

  어쨌든 그로부터 2주 뒤 나는 이런 고민에서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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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6 23:01 2000/08/1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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