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첫날의 기억-1

Being reporter 2000/08/16 22:12 주인장
이건 2000년 여름엔가 어느 동호회에 심심풀이로 썼던 글이죠.   이때는 문화일보를 그만두고 석사논문을 쓰고 있던 땐데 논문쓰기에 지쳐 어느 동호회에 심심풀이로 썼던 회고담입니다. 이당시만 해도 이렇게 힘든 생활을 스트레이트로 한달했는데 이젠 뭘 못하겠나 이보다 더 힘들수는 없으리라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반년뒤 지금 제가 다니는 MBC은 이런 착각을 여지없이 '태양계 너머'로 날려보내더군요.

  첫 번째 이야기 : 형사계에서의 첫날밤

첫날, 드디어 우리 수습들은 각 라인별로 나눠져 본격적인 사건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편집기자 동료 한 명과 종로라인을 배당받았다.

( 사회부의 사건기자들은 서울시를 7개내지 9개로 나누어 각 지역을 각자의 취재책임영역으로 맡게 됩니다. 동대문, 중부, 종로, 마포, 영등포, 강남, 관악 등으로 이 명칭은 일진기자실이 있는 주요 경찰서의 이름과 같습니다. 각 라인별로 서너개의 경찰서와 법원, 대학, 대형병원 등의 주요출입처가 있게 되죠. 아 그리고 사건기자들은 서울시경에 주재하는 일명 시경캡을 우두머리로 각 라인별 일진과 이진기자로 구성됩니다. 마치 야쿠자조직같다구요? 네 맞습니다. 사실 라인이란 말보다는 나와바리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사건기자보다는 사츠마와리라고들 하지요. 사실 하는 행동도 거의 깡 패수준이죠...)

시간은 낮 12시 반. 1시쯤 종로경찰서와 도착해 드디어 일진선배와 대면. 첫 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1시간을 주겠다. 알아서 점심은 먹든지 말든지 하고, 너는 성북서,  너는 종암서로 가서 형사 3명 이상과 ...한 주제로 인터뷰를 해 오고 그곳 형사계의 인력구성을 알아와.”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인터뷰의 주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단지 훈련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나와 동료가 이 과제를 마치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5분. 그리고 나서 우리는 5분 늦은데 대해 약 5분간 육두문자로 구성된 선배의 연설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바로 공천부적격자 선정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던 총선시민연대 사무실로 투입되었다. 여기서 비로소 나는 다른 언론사의 수습들을 만난다. 이들의 모습은 조금은 충격이었다. 기껏해야 수습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였던 이들은 마침 항의하러 방문한 국회의원 등의 정치거물들을 마치 옆집 아저씨 대하듯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지고 필요한  정보를 캐내고 있었다. 한달 남짓의 수습기자생활은 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들을 능글맞은 사회인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서너명의 인사들을 인터뷰하고 근처의 집회현장을 취재한 후 6시까지 회사로 복귀했다. 비슷한 일들을 한 역시 지친 얼굴의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우리는 A4 한 장짜리 일지와 역시 한 두장 가량의 취재후기를 적어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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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6 22:12 2000/08/16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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