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가 6.25 특집으로 방송한 백선엽 장군 다큐가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만주군관학교출신으로 간도특설대 대원이 돼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인물을 미화한 다큐를 내보낸 게 공영방송으로서 할 '짓'이냐는 거죠.

저 개인적으로서는 백장군의 친일행적보다 '백야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지리산 일대에서 마을들을 초토화했던 것이 이 양반의 더 큰 과오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이런 초토화작전들이 그자체로도 엄청난 민폐를 불렀고 이런 작전방향때문에 거창양민학살 같은 사건들도 일어나지 않았나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초토화라는게 집만 불태우는게 아니라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도 결국 '처리'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다큐소동을 보고 있으니 아주 옛날 제가 KBS에서 역시 6.25 특집으로 봤던 역사드라마가 생각납니다. 제기억으론 제가 초등학생이던 때 한 드라마인데 대략 1985년도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5성장군' 김홍일을 다룬 역사드라마였습니다. 우리나라에 5성장군 즉 원수는 아직 없는데 웬 5성장군이냐 하겠는데 이분은 해방전에 중국 국민당군에서 별 두개 즉 소장이셨고 해방이후 우리나라 군에서는 3성장군을 하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도합 별이 5개, 5성 장군이죠.

  이 드라마가 제 기억에 남았던 건 세계 현대사의 중요사건을 조금씩 다 다뤄 어렵고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미묘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다룬 젊은 김홍일 장군의 초기 전투는 엉뚱하게도 러시아내전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직후 혁명정부(소비에트정부, 즉 공산당이죠)의 군대인 적군(Red Army)과 혁명을 뒤엎고 다시 왕정을 복귀시키려는 보수파 백군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홍일은 일단의 독립군과 함께 소비에트적군의 지원을 받아, 백군 그리고 백군을 지원하는 일본군과 싸웁니다. 일본군 등과 싸우니 물론 독립운동이지만 러시아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것이죠. 어린 저로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더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80년대 중반이라 반공글짓기도 하던 시대였는데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사람을 '미화하는 드라마'라니...

  물론 이 당시 독립군을 지원한 외국은 사실상 소련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이 당시는 일본의 동맹국이었고 중국은 아직 대일투쟁을 시작하기 전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기억하기론 이 드라마에선 소련인들을 그다지 좋게 그리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고 묘사했고 그리고 바로 '자유시 참변'을 소개해 소련이 독립군을 배신하는 장면을 보여줘 균형을 잡았습니다. - 자유시 참변은 소련이 우리 독립군을 강제로 무장해제시킨 사건으로 당시 독립군의 손실이 무척 컸죠.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김홍일 장군은 대일투쟁을 시작한 중국 국민당 군대에 들어갑니다. 드라마는 김장군이 국민당군의 장교로서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고 장개석에 의해 별두개까지 다는 장면을 다루는데요. 여기서 또하나 중요한 대목이 그려지니 바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부분입니다. 김홍일 장군은 당시 중국군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김구의 임시정부에 무기를 대주는 중요한 역할도 했는데 윤의사에게 도시락 폭탄을 제공한 것도 바로 김홍일 장군이었던 거죠.  

  그리고 해방을 맞아 국내로 들어온 김홍일 장군은 6.25가 터지자 한강방어선의 사령관이 됩니다. 맥아더가 한강에서 3일만 북한군을 막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김홍일 장군은 일주일이상 북한군을 잡아두는데 성공합니다. 결국 이 덕분에 미군 증원부대가 부산을 통해 상륙하는데 성공해서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벌게 된 거죠. 여기까지만 보면 국군의 참모총장이 돼야할 분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나 드라마에선 바로 건너뛰어서 김장군의 전역식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이승만 대통령이 김장군에게 3성 계급장을 달아주면서 3성 장군으로 군생활을 마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중국별 2개와 한국별 3개를 합치면 5성장군 아니냐며 위로하죠.

  사실 까마득한 후배, 게다가 전쟁이 터지자마자 사단병력을 다 잃고 겨우 수백명의 병력을 데리고 후퇴했던 백선엽이 나중에 4성장군 참모총장이 된 것을 감안하면 한강에서 북한군을 일주일이상 막은 김홍일 장군이 3성 장군을 달자마자 전역한 건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이 드라마에선 물론 이런 사실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위로하는 장면을 다룸으로써 뭔가 김홍일 장군이 업적에 비해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아무튼 독립군출신으로 중국과 한국을 합쳐 5성장군을 달았던 장군을 다뤘고, 게다가 독립군 시절 시대상황때문에 소련의 도움을 받아 싸웠던 사실까지 다뤘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참 80년대로선 보기드문 역사드라마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지금의 백선엽 다큐 소동은 20여년전의 김홍일 장군 드라마를 회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80년대 방송선배들보다 지금의 방송제작진들이 더 한계를 가질 수 있다는...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우직하게 시대의 사명을 지키며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과 반대로 시대의 주류를 따라서 재빠르게 자신을 변화시키며 살아간 두 군인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기도 하고요.  사실 6.25전사를 자세히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백선엽장군의 벼락출세입니다.

  유일하게 개전초기 북한군에 타격을 가하면서 사단병력을 고스란히 데리고 후퇴한 김종오장군이나 한강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김홍일 장군을 제칠 만큼 백선엽의 공이 클까요. 백장군 스스로 회고록에서 밝혔지만 백장군의 1사단은 개전 며칠만에 병력 대부분을 잃었고, 나중엔 백장군 휘하의 령관급 장교들이 병력없는 백장군 밑에서 있기 싫다며 다른 능력있는 장군들과 일하겠다며 떠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백장군도 다부동 전투 등에서 스스로 일선에 나서 큰 전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그건 이미 미군이 본격 참전해 전선을 주도한 이후의 일이고 더 중요한 건 미군앞에서 보여준 전공이었다는 점이죠. 물론 이게 중요한 점이겠죠. 게다가 6.25전엔 군사영어학교를 다녀 영어에 능통했고 이후 미군과의 합동작전을 능란하게 구사했다는 점이 그를 한국군을 대표하는 장교로 만들었을 겁니다.

  아무튼 옛날 어린 시절 감명깊게 그리고 궁금증을 갖고 봤던 드라마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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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8 01:13 2011/06/2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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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임머신 2011/07/02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6.25 시절 장군 중에서 생존하신 분이 백선엽 장군밖에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연령때를 감안하면...) 필요이상으로 오버하면서 띄운다고 생각이 드네요. 친일의 과는 6.25 공으로 상쇄시킨 건지... 차라리 그럴려면, 김홍일 장군 같은 분을 먼저 재조명하고, 백선엽 장군은 나중에 했으면 어땠을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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