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공원의 왕인박사 비석, 타사 특파원 C형의 친절한 해설을 듣고 간 곳이었는데 설명대로 인상적이었던 건 비석건립 후원회 명단이었다. 일본에 한자를 전한 왕인박사의 존재는 내선일체의 좋은 근거였던 것 같고 그래서 당시의 재력가 즉 친일파들은 일제지침대로 돈을 냈다. 가장 맨앞에 있는 건 ‘창덕궁’ 즉 창덕궁에서 살던 조선왕조의 이왕(아마도 영친왕)이고 나머지는 당시 쟁쟁했던 사람들인데 창씨개명한 이름이라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친일파들이 한 일 가운데선 그래도 결국 가치있게 된 몇 안 되는 일인 듯 하다.
그리고 방문한 인근 도쿄 국립박물관, 일본관과 동양관, 서양관으로 건물이 다 별개인 큰 규모인데 서양관은 휴관중이었고 동양관의 중국이나 서남아시아 유물은 솔직히 그렇게 다채롭지 못했다. 그러나 역시 일본관은 일본미술에 친숙치 않은 내게는 새롭고 인상적이었다. 대체로 고대유물은 특히 금속공예품은 역시 여러모로 경주에서 본 부장품들을 연상시켰다. 해설들도 “...한반도에서 출토된 동시대의 백제, 신라 유물에 비해 기술적으로 ‘거의 동등한’ 유물들로서...“라는 문구가 반복되고 있었다. 중국과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빠르게 동등한 수준이 됐다는게 자신들의 고대문화에 대한 일본의 평가라 할 수 있겠다. 반대로 보면 우리 고대유물에 익숙한 눈으로 봐서는 일본 고대유물은 유사품 같은 느낌이어서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역시 가마쿠라막부실절부터 에도막부까지 미술과 공예품들은 정교하고 화려한 기교로는 막눈으로봐도 대단했다. 이때부터는 밑에 해설에 ‘한반도와 동등한’ 따위의 문구는 바로 사라졌다.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본관의 마지막은 유럽인상파에게도 깊은 영향을 준 우키요에들이 당당히 자리한 건 그래서 더 당연해보였다. 그런데 반면 동양관 맨위에 자리한 한국관에선 묘한 대비가 엿보였다. 시대순으로 보라는 안내와 함께 우리의 도자기들이 고대토기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초기, 조선후기의 분청사기 순으로 쭉 진열돼 있었다. 고대와 삼국을 거쳐 바로 고려청자들의 세련된 화려함이 잠깐 나오다가 조선 백자에서 “좀 덜 화려하네” 싶은 느낌에서 분청사기나 그 정도도 안되는 듯한 장독대 수준의 자기들로 넘어가면서 보통의 관람자가 보기엔 그야말로 ‘한국 도자문화의 퇴행‘이란 제목 붙이기 딱 좋은 작품진열이었다. 의도가 있어보였지만 그러나 달리보면 조선의 국제화나 경제력이 결국 고려시대보다 낫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리라. 그에 비하면 일본은 중세부터 이모작도 했고 네덜란드와 교류에다, 에도시대엔 시골의 노동자들이 수도로 와도 임노동을 하고 고향에 돈을 부치는 절반 자본주의사회였으니...
미술사지식이 좀 많았다면 개별작품도 잘 이해했을텐데 그러진 못했다. 모리미술관도 가봤지만 동남아 특별전이라 더 어려웠고 그래도 여행이란 기회에 다른 세계를 접하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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