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에 해당되는 글 48건
- 2009/05/28 주인장 그들이 광장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 (1)
- 2009/05/23 주인장 어떤 외침 'MB, 쥐새끼' (2)
- 2009/04/23 주인장 2006년 3월의 금강산 그리고 유모씨
- 2009/03/23 주인장 기자 노동자의 체포와 명예원수
- 2009/01/21 주인장 청와대에서 온 설 선물
- 2008/12/02 주인장 3재의 끝은 어디인지? (1)
- 2008/08/12 주인장 휴가를 끝내고
- 2008/07/18 주인장 블로그를 다시 열었습니다.
일선기자들이 만나는 남대문 경찰서장부터 서울지방경찰청장, 그리고 경찰청장의 입장은 정말 단호하고 집요합니다. 어떻게든 광장은 막을 것이고 추모건 뭐건 집회는 안된다는 겁니다. 왜 이정도로 집요할까요. 수만명의 분노를 느끼면서도 이렇게 철저히 막는 이유는 뭘까요?
얼마전 청와대의 사정에 정통한 한 경찰간부와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다 1년전 촛불집회에 관한 얘기가 나왔고,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이나 청와대 간부들은 촛불집회가 극심했던 때도 어느 정도 위기감을 느꼈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부의 문제로 본 것 아니냐?"
이 간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펄쩍 뛰더군요. 그야말로 자신들도 엄청난 위기로 알고 전전긍긍했다고 하더군요. 가장 대표적이었던 경우는 촛불 시민들이 경복궁 입구인 동십자각 앞에서 경찰과 대치했던 날이라고 했습니다. 동십자각 저지선이 뚫리면 바로 '청와대'로 이어지는 위기였고, 이때문에 이대통령 포함해 직원모두가 밤을 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청와대 외곽 경비를 맡은 수방사 예하의 30경비단 장병들이 출동태세를 갖추고 대기하는 초유의 상황이었고 게다가 .....
이대통령의 전용차는 엔진을 걸어놓고 이대통령 숙소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더군요. 바로 청와대 벙커 - 요새 한참 경제관련 회의를 열던 장소요. -로 대통령을 모셔가기 위해서였던 거죠.
그래서 이 만큼 엄청난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PD수첩방송의 편파문제를 그냥 두고 넘어갈 수가 없다는 게 이 간부의 말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론 이날 이후 정부가 촛불집회에 느낀 공포는 정말 엄청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대통령이 대피를 고려해야 할 지경이었으니 그날 기억은 이 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에겐 정말 악몽 그 자체였을 겁니다.
결국 그 엄청난 공포때문에 촛불집회, 혹은 시민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은 무조건 막아야하는 대상이 된거죠. 어찌보면 이명박 대통령도 가련한 것 같습니다. 하마트면 청와대가 침탈당할 뻔 했다는 공포의 기억,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을 지지하고 환호해 줘야할 국민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게 됐으니까요. 그러나 그보다 더 불쌍하고 안타까운 건 국가공권력으로부터 적대적인 대접을 받게 된 우리의 처지일 것이고 동시에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여줘야만 하는 우리나라의 손상된 '국격'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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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대한문에 시민들이 설치한 노 전대통령 분향소가 경찰들에 의해 봉쇄된 소식을 오늘 7시부터 특집으로 편성된 MBC뉴스에서도 전했습니다. 시민들은 모여들고 경찰은 막무가내로 막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어 당연히 중계차가 현장에 나가 생방송을 했죠.
8시 20분쯤 이 덕수궁 현장 리포트가 생방송으로 시작되고 기자와 현장을 잡은 샷이 끝나갈 무렵 기자 근처에 있던 시민이 외친 것으로 보이는 고함소리 하나가 방송에 잡혔습니다. 바로...
"이명박 쥐새끼!"
아마도 방송을 아는 시민이었던 것같습니다. 현장 생방송을 하는 기자들의 핸드마이크는 비교적 지향성이긴 하지만 스튜디오 마이크 처럼 완벽하게 다른 소리를 차단하진 못합니다. 방송중에 바로 옆에서 누가 소리치면 방송자체를 끊지 못하는 한 소리가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보고 있던 저는 한참 웃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제가 생방송할 땐 그런 일은 없으면 합니다. 심장 약한 저로선 만약 내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당황해서 낭독하던 원고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아마 더듬거렸을 겁니다. 오늘 방송한 후배기자 송양환기자는 정말 뻔뻔하더군요. 하나도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원고를 잘 읽었습니다. 평상시에 보기에도 좀 건방지고 담대해 보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계차의 재미는 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쥐새끼' 고함이 나간 8시대 방송이후 저는 9시대엔 또 어떤 시민이 뭐라고 외칠지 궁금해 계속 주시했고 9시 20분쯤 다시 덕수궁중계차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마이크를 줜 송양환 기자의 뒤를 전경들이 철통같이 에워쌌더군요.
바로 아래기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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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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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하고 막고 또 막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목소리와 행동을 저렇게 하나하나 막으면서 열심히 국가기능을 불철주야 유지하고 있는 경찰들과 그들에 의지해서 열심히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분의 노고에 존경을 보냅니다. 그러나 아쉬운 건 그럴수록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격'때문에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우리의 정치체제와 일상민주주의의 수준이 이 정도일까요?
*****
오늘 돌아가신 분께는 정말 애도를 표시합니다. 비록 그분에 대한 저의 감정은 복잡하고 미움만 남았던 건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 분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가 적어도 3년 반 정도는 겪어야 할 다른 고통에 대해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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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북한에 억류된지 20일이 넘었습니다.
이유도 제대로 안 밝히고 구금하고 있는 북한, 그리고 이에 대해 별뾰족한 수 없이 골머리만 앓고 있는 우리 정부. 참 답답한 일이지만 이러다 점점 장기화되고 아예 잊혀지는 건 아닌지, 당사자의 가족은 아니지만 저도 참 관심이 갑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경우를 당할 뻔 했습니다. 정확히는 아니 그때는 그렇게 까진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단지 그때는 지금과는 여러모로 다른 '시기'였다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이죠.
2006년 3월 1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취재하러 공동취재단의 일원으로 금강산에 갔을 때였습니다. 상봉한 이산가족 중에 20여년전에 서해에서 고기잡이하다가 북한경비정에 납북됐던 어부가 남쪽의 어머니를 만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어부가족의 만남도 한 사례로 넣어서 기사를 썼죠. 원래 납북자가족의 만남은 기사가치가 있어서 꼭 쓰는 편이었고 그때 같이 온 다른 방송사기자들 모두가 다 기사화했습니다. 그리고 그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납북된 어부' 혹은 '납치됐던 어부' 등의 단어를 넣어서 기사를 완성하고 녹음을 해서 남쪽의 방송사로 기사녹음테입을 송출하기 위해 송출차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엔 북측의 관리 2명이 나와 있더군요. 그리고 송출기 앞에 둔 테입을 가져가더니 송출하기 전에 보겠다며 돌려봤습니다. 그리고는 그랬죠.
"납북, 납치라니 공화국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아요. 빨리 기사 고치시오!"
그리고 하필 제가 방송기자 대표로 항의하게 되면서 - 당시 KBS기자는 똑같은 표현을 썼지만 녹음을 늦게해서 현장에 없었고 같이 온 SBS, YTN기자는 저보다 연차가 낮아 제가 결국 총대를 맺죠. - 사흘간의 악몽은 시작됐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납북'이란 표현을 쓰진 않고 '20여년전 서해에서 고기잡이 나갔다 북측에 나포(영해를 침범하거나 위법을 저지른 배를 정지시키고 선원을 조사하는 것)됐던 어부...'라는 식으로 보다 중립적인 '나포'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그래서 더 억울한 거였죠.
어쨌든 저는 북측관리들에게 "당신들은 지금 검열을 하고 있는 것이고 더구나 데스크만이 고칠 수 있는 기사를 고치라는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기사와 방송은 남측으로 송출돼 남측에 방송되는 것이지 북측인민들이 보는게 아니다, 그런데 왜 북측의 법을 우리에게 강요하느냐'는 식으로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북측관리들의 입장은 확고했죠. 금강산은 북한땅이나 무조건 우리 법에 따라야 하고 공화국엔 납북이란 말은 없고 의거월북은 있다는 거였죠. 그렇게 언쟁을 하다 결국은 '당이 시키면 시킨대로 쓰는게 기자지 뭔데 시끄럽게 하느냐'는 식의 남측기자에겐 엄청난 모욕을 가했고 (물론 공산주의 언론관에 따르면 지극히 정상적인 말입니다만...) 서로 고성만 오가게 됐죠.
그리고 나서 다음날 저에겐 다음과 같은 통지가 날아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취재기간(3일)간 절대 방밖으로 나오지 말 것. 어기고 취재활동을 하면 공화국 법으로 처리하겠다."라는 거였습니다.
가장 무서운 말은 바로 이 '공화국법으로 처리한다'는 말입니다. 북한 형법은 범죄를 중대범죄와 일반범죄로 나누는데 우리 상식과는 달리 연쇄살인도 중대범죄가 아닌 일반 범죕니다. 중대범죄는 바로 제가 저지른(?) 것과 같이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지요. 중대범죄에 대한 처벌은 바로 가끔 뉴스로 나오는 것과 같은 뭐 무시무시한 것들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취재왔다가 내가 이산가족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지만 그래도 그 당시론 북측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느껴서 마지막날 상봉장에 취재를 나갔습니다. 물론 동료기자들이 옆에서 도와주기로 했고. 그리고 그날 저는 북측 참사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몸싸움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촬영돼서 그 뒤 몇번이나 방송을 탔습니다.
그러나 사실 북측도 이렇게 몸싸움을 하고 말만 심하게 했지, 실제로 '행동'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북측으로선 앞으로 있을 납북자문제에 대한 남측과의 대화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도였지, 괜히 불쌍한 기자를 억류하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죠. 그때는 남북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단지 얻을 것을 좀더 얻겠다는 협상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고 싸움에서 이기기위한 방법으로 '가끔' 대화를 하는 상황입니다.
돌이켜보면 금강산에서의 3일간 그래도 '조금' 무서웠고 그보다 많이는 억울했습니다. 지금 억류된 유모씨는 그때 저와는 비교도 안되게 힘든 처지입니다. 무엇보다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싸우기만 하는 남북사이에 낀 공이 되버렸다는 거 큰 차이죠.
유씨의 조속한 귀환을 바랍니다.
** 저는 그 금강산 사건뒤로 북한 취재를 금지당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금지한게 아니라 북측이 금지시킨 거였습니다. 입북신청을 넣기만 하면 '거절'당했죠. 외교용어로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되 버린 거였는데 결국 1년 8개월만에 풀렸습니다. 그 풀리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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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유를 대지만 결국은 파업을 이끌었다는게 죄고 긴급체포하게 된 건 주소지가 불분명해서랍니다. 옛날 90년대초반 대학신입생 시절에 '이전에 이런 탄압도 있었다'며 선배들로부터 70년대 동아일보 해직사태의 전말을 배우고 공부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시계는 참 빨리도 뒤로 돌아갑니다.
그 체포된 선배들... 몇몇은 출입처에도 있어봤지만 다른 기자들과 비교해서도 저런 얌전한 사람들이 있나 싶게 기자답지 않게 순진하고 선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뭔가 불합리한 일이 벌어질때 오히려 그 순진함때문에 물러서지 못했고 다른 사람대신 자신이 그 자리에 나갔을 것 같습니다.
사실 남의 일도 아닙니다. 우리회사도 몇몇 사람들은 출두요구를 받고 있고 8월이후론 많은 것이 바뀌 나갈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또 '색다른'뉴스로 군원로인 백선엽씨를 명예원수로 추대하자는 소식도 있더군요. 일제시대에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토벌대의 일원으로 일했던 분. 그리고 6.25 땐 혁혁한 전공을 세운 영웅이었지만 그 영웅적 작전 중 하나로 '백야작전'을 창시하고 실천했던 분.
빨치산이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도록 주변의 모든 것, 즉 마을이든 사람들이든 모두 청소해 버리는 백야전술. 결국 그분때문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 백야작전을 충실히 따랐던 부하지휘관들에 의해 많은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봐야했던 사실들...
역사의 시계가 워낙 빨리 뒤로 돌고 있어서 저도 정신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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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온 것은 표고버섯과 김. 집엔 별로 먹을 사람도 없어서 근처 사는 친척어른께 바로 갖다드렸더니 '대통령이 보내주셨다'며 좋아하시며 상자안에 있던 카드는 기념으로 가지라며 제게 돌려주셨습니다.

'대통령이 주는 선물'. 그야말로 사심없이 나라의 최고 어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좋아하시는 친척어른을 보니 새삼스럽고 당연한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국민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이렇게 뭔가 작게나마 베품 혹은 돌봄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는다면 모두가 감격하고 기뻐할 수 밖에 없으리나는 것 말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그래야 할 일인데...
용산의 참사현장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어떤 이의 관점에서 보면 법질서의 파괴자들이고 어떤 구청의 관점에서 보면 '집단으로 몰려와서 생떼를 쓰는 민주시민 대우를 받기 힘든 사람들'일 것이고 또 어떤 점에서 보면 정당하게 받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일 수 있고 일면 그런 면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이 나라의 대통령에겐 자신이 지키고 섬겨야할 국민들이었습니다. 비록 대통령의 설선물을 받을 사람들 안엔 들어갈 수 없더라도 보호를 받을 자격은 가진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수단에 불과하는 '법질서'의 수호를 위해 희생된 셈이 돼 버렸습니다.
'국민들을 섬기겠다'던 대통령의 다짐이 언제쯤 현실로 느껴지는 날이 올지... 앞으로 남은 4년안엔 올 수 있을지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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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방송을 끝내고 나서 다시 아이템 고민을 시작하던 차에 희소식이 들려왔죠. 바로 이라크 아르빌에서 완전 철수하는 자이툰 부대를 취재하는 출장을 가지 않겠냐는 데스크의 지시.
비교적 안전하지만 그래도 가끔 폭탄 터지는 아르빌, 그러나 아이템 고민에 비하면 그까짓 폭탄은 사소하다는 심정으로 바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원래 취재협조 요청을 했던 국방부가 오히려 발을 빼더군요. 자이툰 부대가 지금은 철수직전이라 자체 방호능력이 없어서 아무런 대외활동없이 그냥 몸만 빠져나오게 된다며 안 오시는게 낫겠다고 하는 통에 출장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4년전 우여곡절끝에 파병된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해외파병부대가 그렇게 썰렁하게(?) 군장만 꾸려서 나온다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올해 이미 몇차례 해외출장이 무산됐던 경험이 또 한번 반복된다는 점도 힘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지난번 관상아이템 하면서 만난 역술인들이 저보고 내년까지 3재라며 '집에 가져다 주는 돈이 거의 없을 것이다, 사업만 하면 쫄딱 망한다, 건강이나 대외활동 모두 잘 안 된다' 등의 거의 저주스러운 전망을 했던 터여서 그 암울함이 현실화되는 것이 더 씁쓸하더군요.
그리고 지난 주말... 집에만 있으면 뭐하냐 해서 춥다고 반대하는 식구들을 데리고 파주 영어마을로 나들이길을 나섰는데 그만 차사고를 당했습니다. 삼거리에서 신호대기하고 있는데 뒷차가 그냥와서 들이박더군요. 브레이크도 전혀 밟지 않고 그냥 냅다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길이라서 나도 신호를 안 지킬 것이라 믿고 직진했다는 게 상대편 운전자의 변명이었죠.
물론 100퍼센트 그쪽 잘못으로 처리됐지만 제차는 범퍼는 거의 떨어지고 트렁크문도 안 닫힐 정도로 고물차가 돼버렸고, 저는 병원에 가서 허리 사진을 찍어봤더니 경악스럽게도 척추가 옆으로 약간 휘어더군요. 뼈가 다친 건 아니지만 근육이 충격으로 경직된 결과라는 의사의 설명이었습니다. 아무튼 쑤시는 허리를 안고 다음 방송 아이템을 찾아야하는게 올 한해의 마지막 액운이기를 빌어야 할 밖에요.
아래 사진들은 사고이후 그래도 놀러간 영어마을입니다. 그날따라 바람도 강하고 추워서 정말 썰렁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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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다녀오니 역시 즐거웠던 시간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올림픽에다 어수선한 방송가의 여러 상황들 때문에 일이 쉽게 손에 잡히진 않네요. 어쩌면 그런 어수선한 때에 휴가를 간 게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녀왔던 곳은 괌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간 첫 외국여행이어서 기대가 컸는데 아이가 무척 즐거워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저도 무서워서 겨우 겨우 운전한 제트스키를 저와 같이 타면서도 무서워하기는 커녕 마구 몸을 흔들면서 제트스키의 스릴감을 즐기더군요. 그러나 대신 수영장에선 녀석의 무릎에나 오는 유아용 풀에서만 노는 안전제일주의의 모습을 보였고요. 뭐 그래서 미래의 박태환으로 키워 볼까 했던 부모의 헛된 꿈을 태평양으로 날려버렸지만요.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게 우리 자신이 즐기는 것보다 더 즐겁게 느껴졌으니 이젠 저도 늙은 거겠지요. 그래도 그만큼 즐거운 휴가였습니다. 물론 앞으로 몇달은 굶고 살게 생겼지만요.
사진을 올려봅니다. 날씨가 흐린 편이었는데 이 덕에 오히려 뜨거운 햇볕 없이 놀 수 있었지만 바다 빛깔은 괌 바다 특유의 푸른 빛깔이 100퍼센트 나오지 못해 아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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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즉슨 한달 전 쯤이었죠.
블로그에 스팸 댓글들이 마구 붙은 걸 보고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겠다 싶어 시도했는데...
그만 데이터가 다 날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 텍스트큐브 홈피보고 그대로 햇는데 제 불찰이겠죠... 해서 한달간이나 실의에 빠져 그대로 방치했뒀다가 지금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몇분 안되지만 방명록과 댓글을 남겨주셨던 방문객들에겐 정말 죄송하게도 그 글들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제가 쓴 글의 텍스트들은 백업화일에 남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살릴 수 있을 지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블로그가 언제쯤 제 모습을 갖출지 모르겠지만 노력을 해봐야지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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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갈라고 엔진 걸어놓고 있었다니...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