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두 번째 편입니다. 이번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일화 중심으로 얘기해 보렵니다. 그때는 고생스러웠던 일도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것이 시간의 힘이죠. 하지만 시간의 수레 바퀴는 돌고 돕니다. 일편에서 말한대로 저는 다시 수습기자가 됐고 두번째 수습때는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도 안나고 기억하기도 싫군요...
○ 종암서의 2진기자실
나는 지금도 그 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종암경찰서의 종로라인 (종로경찰서, 성북서, 종암서 등의 경찰라인과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를 주요 취재처로 하는 서울 중심부의 영역) 2진 기자실에 처음 들어서던 때를...
수습생활 시작한 지 3일째. 비록 일진선배는 그 쪽으로 가라는 말은 안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형사계 쇼파가 아니라 기자실에서 잠다운 잠 좀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서던 그 때, 종암서 밤 12시 30분.
문을 연 순간. 나는 공감각적 체험을 해야 했다. 방가운데에는 빨간 내복을 입은 한겨레 B기자가 자고 있었고, 그 옆에는 몇 시간 전 총선시민연대 사무실에서 보았던 카키색 사파리 잠바의 깃을 세우고 멋있게 담배를 피던 연합뉴스의 여기자 C씨가 역시 한 이불을 덮고 세상 모르고 뻗어 있었다.
문가쪽에는 한국일보의 L기자가 정말 불쌍하게 노숙자 자세로 쪼그리고 자고 있었다. 그리고 냄새들... 누군가의 발 냄새와 찌든 담배냄새의 묘한 배합은 삽시간에 내 코를 마비시켰다.
방안 여기저기에는 담배꽁초가 굴러다녔고, 각종 사건조서, 일지, 기사문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가끔 늦게까지 술 혹은 스타크를 즐기다 막차시간 지나면 찾아가던 내 친구 황가네 자취방도 이거에 비하면 특급호텔이었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C기자를 발로 대충 밀고 L기자를 좀더 문가 쪽으로 밀어붙인 뒤 나는 그 틈에 자리를 잡았다. 눕자마자 몇 개인가의 굴러 다니는 볼펜들이 등에 배겼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자고 있는 그 들을 남기고 나는 출입처 순찰을 돌러 출발했다. 한시간 후에는 연합뉴스 C기자가 역시 나처럼 기자실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 또 1시간 후에는 조간신문기자 B와 L이 그 뒤를 따를 것이다.
그러면 서장이 선물했다는 TV와 각자의 핸드폰 충전기, C기자의 헤어드라이기만이 텅 빈 기자실이라는 이름의 골방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밤 11시부터 다시 아까의 역순으로 기자라는 이름의 방주인들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건 2000년 여름엔가 어느 동호회에 심심풀이로 썼던 글이죠. 이때는 문화일보를 그만두고 석사논문을 쓰고 있던 땐데 논문쓰기에 지쳐 어느 동호회에 심심풀이로 썼던 회고담입니다. 이당시만 해도 이렇게 힘든 생활을 스트레이트로 한달했는데 이젠 뭘 못하겠나 이보다 더 힘들수는 없으리라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반년뒤 지금 제가 다니는 MBC은 이런 착각을 여지없이 '태양계 너머'로 날려보내더군요.
첫 번째 이야기 : 형사계에서의 첫날밤
첫날, 드디어 우리 수습들은 각 라인별로 나눠져 본격적인 사건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편집기자 동료 한 명과 종로라인을 배당받았다.
( 사회부의 사건기자들은 서울시를 7개내지 9개로 나누어 각 지역을 각자의 취재책임영역으로 맡게 됩니다. 동대문, 중부, 종로, 마포, 영등포, 강남, 관악 등으로 이 명칭은 일진기자실이 있는 주요 경찰서의 이름과 같습니다. 각 라인별로 서너개의 경찰서와 법원, 대학, 대형병원 등의 주요출입처가 있게 되죠. 아 그리고 사건기자들은 서울시경에 주재하는 일명 시경캡을 우두머리로 각 라인별 일진과 이진기자로 구성됩니다. 마치 야쿠자조직같다구요? 네 맞습니다. 사실 라인이란 말보다는 나와바리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사건기자보다는 사츠마와리라고들 하지요. 사실 하는 행동도 거의 깡 패수준이죠...)
시간은 낮 12시 반. 1시쯤 종로경찰서와 도착해 드디어 일진선배와 대면. 첫 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1시간을 주겠다. 알아서 점심은 먹든지 말든지 하고, 너는 성북서, 너는 종암서로 가서 형사 3명 이상과 ...한 주제로 인터뷰를 해 오고 그곳 형사계의 인력구성을 알아와.”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인터뷰의 주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단지 훈련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나와 동료가 이 과제를 마치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5분. 그리고 나서 우리는 5분 늦은데 대해 약 5분간 육두문자로 구성된 선배의 연설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바로 공천부적격자 선정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던 총선시민연대 사무실로 투입되었다. 여기서 비로소 나는 다른 언론사의 수습들을 만난다. 이들의 모습은 조금은 충격이었다. 기껏해야 수습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였던 이들은 마침 항의하러 방문한 국회의원 등의 정치거물들을 마치 옆집 아저씨 대하듯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지고 필요한 정보를 캐내고 있었다. 한달 남짓의 수습기자생활은 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들을 능글맞은 사회인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서너명의 인사들을 인터뷰하고 근처의 집회현장을 취재한 후 6시까지 회사로 복귀했다. 비슷한 일들을 한 역시 지친 얼굴의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우리는 A4 한 장짜리 일지와 역시 한 두장 가량의 취재후기를 적어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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