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 일본회의가 요즘 보도의 소재가 되길래 한번 사서 읽어보았다. 내용자체는 전직 저널리스트가 행한 인터뷰와 자료 모음이라 평이한 편. 아베정권의 의원들 대다수가 산하 정치단체에 소속돼 있고 자신들의 목표 대부분을 정책으로 만들어 정권의 배후세력으로 평가받는 일본회의를 분석한 건데...
결론은 근본이 의심스런 신흥종교단체인 ‘생장의 집’이 중심이 되고 전국 8만여 신사의 집합체인 신사본청이 지원하는 종교우파단체라는 것. 그런데 지향점은 일본을 전쟁전의 제국주의에 가부장적인 천황중심 국가로 돌려놓자는 극우반동주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주권와 정교분리같은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가정에서 남성중심질서복원 등 생활에서 정치까지 완벽한 복고주의운동을 의외로 풀뿌리방식으로 지방에서 중앙정치권까지 착실히 벌인다는 것. 이들이 벌인 운동들을 보다보면 헌법개정이나 야스쿠니신사참배운동은 그러려니해 보이는데 자학적 역사관 교과서 개정운동이나 부부별성제도 반대(즉 결혼하면 무조건 남편성 따르게 하자 제도 유지하는 것), 천황가의 여성계승반대,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반대운동 등 깨알같은 우파운동들은 어째 우리나라의 극우단체나 보수적교회목사님들 설교의 주제들과 씽크로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들도 전세계 공통 보수반동 혹은 종교단체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티파티나 우리나라의 보수기독교교회 등. 이 책에선 일본회의의 뿌리는 1960년대 일본을 휩쓸던 좌파운동에 반대하던 종교단체와 그 산하 학생단체 등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80년대 들어 공산주의가 붕괴되자 일본중심 복고주의로 옷을 갈아입고 도구로는 당시까지 좌파의 전유물로 보이던 풀뿌리조직운동을 장착해 지방으로 선전대를 보내고 지역단체들을 결성하면서 성장했다는 것. 자유민주주의 VS 공산진영의 양극체제가 무너지자 자유민주주의 자체는 마치 당연한 공기처럼 묽어지고 대신 극우민족주의가 대두하며 소수자들을 배제해간 전세계적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부분은 분석하지 않지만 이데올로기의 생성원리란 점에서 봐도 설명이 된다. 이념도 언어로 표현되고 언어의 구성원리는 차이와 배제다. 원래 A가 A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건 B가 아니어서 A가 된다는 언어의 논리. 이데올로기란 것도 결국 반대되는 타자가 있어야 구성된다. 즉 공산주의가 아니어서 민주주의였는데 공산주의가 없어지니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들의 이념성이 약해지고 대신 가장 단순한 이념구성원리인 ‘원래 우리가 최고야’란 자기민족 우선주의로 빠진 것이다. 일본은 이게 자신들의 자랑스런 메이지제국주의가 패전과 평화헌법으로 부정당했다는 역사 때문에 복고주의로 나온 것이고...
그러고 보면 우린 아직 민주 대 반민주, 반북내지 북한붕괴통일론 대 남북교류와 평화적 통일 등 대립하는 양극들이 많은 덕에 오히려 민주주의 이념이 강하게 남은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일본의 우파는 대외적인 적과 대립이념이 없어지다보니 오히려 인위적으로 차이와 배제로 이념을 만들기 위해 적을 만들어간 것인데 대외적으론 위안부나 남경대학살을 들고나와 자학적 역사관을 강요하는 한국, 일본이 적이 되는 것이고 내부적으론 자민족우선주의에 해가 되는 재일한국인들, 천황중심가부장제에 반기를 드는 진보단체나 여성단체 등이 배제될 대상이다. 이들 외부의 적내지 내부의 소수들이 말하는 역사의 진실, 진보적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면서 자신들의 보수반동 이념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도 적이 되는데 그건 납치문제 때문이다. 위대한 국가 일본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국민들을 보호하는 건 국가의 첫 번째 책무인데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해가서는 돌려주지도 않고 그런 일 없다고 하고 있으니 이 문제 해결 안 되면 ‘위대한 일본’이 안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베정권의 의외의 아킬레스건은 ‘일본인 납치문제’이고 북한은 일본의 주적인 상황이다.
아무튼 이 일본회의의 이념은 이렇게 공산주의 같은 꾸준한 타자가 없다보니 매번 바뀌는 여러 적을 만들어 가야하는 점에서 불안정적이어서 약점이 많다. 숨겨진 납치피해자가 또 드러나는데 북한이 대놓고 발뺌한다든지 미국에 밀려 수그러든 중국의 민족주의가 다시 불거져 항일로 번진다거나 하면 일본도 외적으로 힘들어질 것이다. 내적으론 시대에 뒤떨어진 천황중심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다면 일본회의의 세력도 줄겠지만 일본에선 미투운동이 전혀 안통하는 걸 보면 아직인 것 같고. 물론 이런 폐쇄적 보수반동주의가 힘을 얻고 있으니 반대로 참여민주주의니 다원주의니 페미니즘 같은 현대사회의 특징적인 이념들은 밀려나있다. 이렇게 이념적 지형으로 보면 권위주의 국가같은 일본이 경제적으론 세계 3위권 대국인 것도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작가도 좌파가 사라진 사이에 하던 일 계속하던 우파만 남은 상황이고 이렇게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이념바이러스가 주류가 된 일본사회 전체가 병에 걸렸다고 진단하긴 한다. 그런데 일본은 항상 10년쯤 뒤의 한국인 경우가 꽤 많다. 언젠가 대한애국회의 같은 단체가 생겨나 그들이 미는 정치인들이 의원, 대통령되고, 그들의 이념이 일요일마다 설교로 방방곡곡 울려퍼질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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