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하는 분도 있고 해서 어제 얘기에 이어서 서사학으로 본 북한핵을 좀 더 얘기해보자면 나는 지금의 북한사회체계가 유지되는 한에선 100% 비핵화는 북한 스스로가 준비하진 않고 있다고 본다.
역시 이유는 북한에게 핵무기는 영웅이 가진 절대비급이기 때문이다. 일본을 물리쳐 북한을 해방시킨 영웅(김일성)과 선군으로 미국에 맞서 나라를 지킨 장군(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은 핵무기개발로 미국을 ‘굴복’시킨 가장 훌륭한 영웅으로 신화지워져 있으니 핵무기는 그 신화의 가장 중심소재인 것이다. 영웅신화가운데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이야기의 적용가능성이 넓은 신화로 생각되는 아더왕이야기에 빗대보면 북한의 핵무기는 딱 아더왕의 엑스칼리버인 것이다. 아더왕아버지가 죽으면서 바위에 꽂은 엑스칼리버를 아더왕만이 빼낼수 있어 왕이 된 것처럼 김정일이 처음으로 했던 핵실험을 사후에 다시 했고 부러졌던 엑스칼리버가 다시 호수의 요정에 의해 다시 붙어서 돌아온 것처럼 실용성이 의심받던 핵무기를 김정은이 수소폭탄급실험 성공에 핵을 실을 수 있다는 ICBM으로 다시 완성시킨 것이다.
그러니 엑스칼리버 없는 아더왕은 존재하지 않고 핵무기 없이는 김정은은 북한의 지도자 영웅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북한은 절대 핵무기를 버릴 수 없을 것이나..그러나 영웅신화도 반드시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고 의미의 변화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아더왕 이야기는 엑스칼리버로 전쟁을 이기고 원탁의 기사단을 이끌게 아더왕으로 그냥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왕국이 이뤄졌지만 왕국은 내외부에서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한데 그러던 중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배’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원탁의 기사들은 성배를 찾아 다들 흩어져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 모험과정에서 원탁의 기사들에 아더왕도 결국 죽게 되지만 마지막에 성배를 찾은 덕에 아더왕의 영혼은 하느님에 구원받고 성령 충만한 진정한 영웅이 되는 것이다. 결국 아더왕 신화의 전반부는 요정들이 만들어진 엑스칼리버를 갖고 영웅된 아더왕이란 켈트족 영웅신화였는데 갑자기 뒤편에선 기독교의 종교신화로 바뀌어 버린다.
북한의 경우도 핵무기가 국가의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있는 한은 폐기가 어렵겠지만 그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다른 형태로 바뀌고 핵무기 대신 엑스칼리버의 위치를 가져갈 무언가가 들어온다면 핵은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독재하는 영웅이 지키는 나라라는 영웅신화에 의지해 국가를 경영하는 참 요상한 나라 북한이 어느 순간 대단히 혁신적인 보물을 갖게 돼 그에 맞춰 능률적으로 나라를 경영하는 보다 현대적인 이야기를 가져야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도 그런 변화가 조금은 시작됐지만 결국 그 보물은 ‘경제발전’이 될 것이다. 경제특구가 됐건 자원개발이 됐건 북한주민 모두가 체감할 경제적 이익을 갖다줄 대단한 경제적 성과가 나오고, 북한 주민들 스스로도 핵무기로 자신들을 가난하게 지켜주는 장군님보다는 배불리 먹여주고 부강한 앞날을 보여주는 실용적 지도자에 익숙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되는 것.
물론 이건 김정은에겐 큰 모험이다. 영웅신화에 의해 떠받쳐져 사실상의 왕으로 나라를 다스리다가 그보다는 약하게 이전 등소평처럼 국민을 배불리 먹고 살게 해줬다는 경제발전의 정당성에 의지한 그저 권위주의 독재자급으로 내려와야하는 것이니...
아무튼 북한이란 사회의 특징을 생각하면 비핵화는 단순히 군축이 아니고 북한의 국가신화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이념으로 바뀌는 국가정신의 탈바꿈이고 김정은의 지도자 위치도 교과서적인 분류가 완전히 바뀌는..어찌보면 봉건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바로 바뀌는 역사의 점프가 필요한 일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비핵화는 북한의 사회구조까지 다 바꿔야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 북한의 비핵화문제를 영웅신화를 가져와 설명해본다는게 이상해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인류학적 틀로 북한문제를 보는 분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전문가들이 보기엔 어설퍼 보이는 잡글이지만 나중에 한번 제대로 풀어보고 싶은 주제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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